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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May 10. 2024

어느 날 문득, 시칠리아-하나

그렇게 시칠리아가 내게 찾아왔다

여행은 떠나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었다. 박물관과 미술관, 유적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무작정 유럽으로 떠나야지 하는 마음이 늘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결정이 어려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녀오는 서유럽의 유명한 곳은 두어 번 이상은 다녀왔고, 또 겨울이라는 계절 요인은 선택에 장애를 갖게 했다. 이럴 거면 사치스러운 인도여행 패키지를 다녀올까도 생각했다. 인도를 다녀온 것도 너무 오래전의 일이었으니까. 낮 시간 동안 내내 고민하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다. 그런데 마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아마 <제인 에어>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구절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친절한 요정이 머리맡에 답변을 갖다 놓은' 듯한 여행지가 뇌리에 박혔다. 그래, 시칠리아로 가자. 목적지가 정해지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다음날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졌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알아본 것은 항공권. 직항이 없기 때문에 일정에 따라 경유 편 항공권을 구입해야 했다. 시칠리아를 시계방향으로 돌 것인가 반시계방향으로 돌 것인가에 따라 들어가고 나오는 곳이 달라진다. 나의 경우에는 반시계 방향을 선택했고 그래서 들어가는 도시는 팔레르모, 나오는 도시는 카타니아로 정했다. 그런데 시칠리아까지 가서 로마를 들르지 않고 오는 것은 조금 섭섭한 마음도 들었고, 그래서 마지막 사흘은 로마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최종 항공권은 팔레르모로 들어가서 로마에서 나오는 것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여행 떠나기 약 석 달 전에 구입한 항공권은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팔레르모로 들어가고 로마에서 다시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항공권을 구입하고 나서 일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략 커다란 일정은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로 정했다. 이 일정으로 검색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일정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고, 특히나 팔레르모에서 아그리젠토로 가는 방법이 잘 검색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는 시칠리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턱없이 적었던 탓이기도 했다. 게다가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이 편한 시칠리아의 교통 사정을 알 수가 없었던 것도 그 이유가 되기도 했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 제주도의 14배에 해당하는 이 섬을 쉽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필요한 책을 사서 읽으면서 겨울 시칠리아 여행을 준비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여행은 날이 가까워질수록 현실로 다가왔다.


비행기는 자정을 약간 넘은 시간에 출발하기에 지방에 사는 내가 인천 공항으로 낮에 이동하기에는 충분했다. 저녁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카드사와 연계되는 라운지에서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밤 비행기 시간까지는 오랜 시간이 남았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여행의 시작부터 지치기 쉽다.

이윽고 비행기 게이트가 열리고 승객들이 탑승을 시작한다. 항공권을 확인하고 탑승 후 찾은 내 자리는 복도 쪽. 유럽 여행 같은 장거리 비행에서 아예 열 시간 움직이지 않고 자겠다는 사람들은 창쪽을 택할 테지만, 내 경우는 다리가 아플 때 움직인다거나 양치를 위해 화장실을 가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무조건 복도 쪽 자리를 선택하는 편이다. 다행히 내 자리가 있는 3개의 좌석 중 가운뎃 좌석은 비어 있었다. 나와 같은 줄 반대편 복도자리 승객은 그래서 조금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이륙 후 터키 항공에서 제공한 버섯 불고기 덮밥을 먹으면서 하이네켄과 레드와인 한잔을 주문했더니 승무원이 살짝 웃으면서 영어로 '괜찮겠냐'라고 묻는다. 당연히 괜찮다. 가벼운 음주(?)는 불편한 자세에서도 쉽게 잠들게 해 주니까.

이제 이스탄불로 가는 열 시간 여의 비행이 남았다. 비행기의 규칙적인 소음이 자장가처럼 들리고, 이코노미석의 불편한 자세이지만 잠이 쏟아진다. 나는 지금 시칠리아로 가는 첫 번째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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