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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May 13. 2024

어느 날 문득, 시칠리아-다섯

시칠리아와 뗄 수 없는 이름, 마피아

몬레알레를 출발할 때는 다행히 버스를 일찍 타게 되어서 편안히 앉아 팔레르모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버스 티켓이 환승 가능한 것이라, 마시모 극장행 버스로 갈아탔다.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은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빈의 슈타츠오퍼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오페라 극장이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오페라 극장이다. 내가 있었던 시기는 새해 첫 주라 공연이 없었고,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극장 내부 가이드 투어도 참여하지는 못했다. 마시모 극장의 공연 관람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오늘은 극장 주변을 돌아다녀 본다. 영화 <대부 3(1990)>의 마지막 장면,  딸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마이클 코를레오네(알 파치노 분)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 극장이 익숙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 유명한 영화를 모르지는 않는다. 특히 니노 로타가 작곡한, 이 트릴로지의 첫 번째 영화 <대부 1(1972)>의 유명한 주제곡 <Love Theme>은 모를 수가 없다. 미국 가수 앤디 윌리엄스가 영어로 개사한 그 곡, <Speak softly, love>를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음악을 떠올리며 이 아름다운 극장 주위를 돌아보았다. 영화 속 비극이 일어난 계단은, 아마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축하 장식이었을 포인세티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극장 앞 베르디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추억을 남기고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스 신전처럼 아름답고 당당하게 서 있는 마시모 극장. 다음번에는 저곳에서 아름다운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기를.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마피아 본거지인데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기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에 관해 굳이 내가 무엇을 설명하지 않아도 조금만 검색해 보면 엄청난 자료들이 뜬다. tvN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74회)'에서도 자세히 다룬 적이 있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었다. 팔레르모나 시칠리아가 아니라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러나 시칠리아와는 뗄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린 '마피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팔레르모 사람들이나 시칠리아 사람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이자 사랑하는 곳이 단지 마피아라는 이름으로만 기억된다면 그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테니까. 물론 마피아가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팔레르모 공항의 이름을 보면 이곳 사람들의 의지를 조금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피아를 잡는 검사로 활약했지만 결국 마피아에 의해 암살당한 조반니 팔코네와 파올로 보르셀리노의 이름을 따서 팔코네 보르셀리노 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그렇지만, 생각은 그렇게 했어도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마피아라는 단어는 계속 맴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고 정도의 차이-물론 그 차이가 엄청날 수도 있겠지만-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마피아에 대한 언급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나처럼 짧은 방문을 하는 여행객 입장에서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마시모 극장에서 부치리아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야시장의 삼겹살 파말이, 곱창구이인 스티기올라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야시장이 열리기엔 너무 이른 저녁이어서 그런 것일까. 시장은 너무나 한산했고 그래서 오히려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큰길 가의 성당은 예뻤지만.

부치리아 시장

시내 쪽으로 향했다. 저녁이 다가오는 콰트로 칸티와 프레토리아 분수, 그리고 프레토리아 분수 뒤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성당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 카탈도 성당을 보러 간다.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성당은 라 마르토라나(마르토라나 교회)라고도 불리며, 그 앞 광장도 같은 이름이다. 이 성당은 12세기 중반에 세워진 노르만 양식의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다.  저녁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함부로 사진 찍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밝고 환한 교회의 내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산타 마리아 델라미랄리오 성당(라 마르토라나)

라 마르토라나 옆, 세 개의 붉은 돔예쁘장하게 서있는 작은 성당은 산 카탈도 성당이다. 이곳은 7세기 아일랜드 수도사 산 카탈도를 기리기 위해 1154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잔틴 양식에 아랍-노르만 양식이 가미된 독특한 성당이라 한다. 라 마르토라나보다는 훨씬 간결하고 검소한 느낌을 주는 이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입장료가 있다. 10세기에 만들어진 대리석 세례단을 비롯해 천년에 걸친 가톨릭 종교 물품과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자그마한 성당은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검이불루(儉而不陋)]' 느낌이다.

산 카탈도 성당

팔레르모의 마지막 밤이다. 일정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이곳에서의 사흘은 너무나 짧다. 그리고 팔레르모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 적었다. 시칠리아의 주도이자 제1의 도시라는 것 이외에는 '마피아'의 그림자가 너무나 크게 드리워져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속에 팔레르모보다 체팔루나 몬레알레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였을까. 팔레르모를 더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프레토리아 분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콰트로 칸티와 마찬가지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프레토리아 분수도, 오늘밤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더 다정하게 다가왔다.

프레토리아 분수

숙소로 들어오면서 아란치니 두 개와 작은 카놀리  두 개를 사 왔다. 카놀리는 단수형이 카놀로 이지만, 아란치니의 경우에는 팔레르모와 카타니아에서 부르는 단수형이 각각 다르다. 팔레르모에서는 아란치나, 카타니아에서는 아란치노라 부른다고. 어떻게 불리든, 이 작은 오렌지 모양-이탈리아어로 오렌지가 아란치아(arancia)이다-의 따스한 튀긴 주먹밥은 먹기에 좋다. 달달한 카놀리도. 그렇게 팔레르모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튿날의 날씨는 좋았다. 팔레르모의 일정을 무사히 끝내고 이제 두 번째 도시 트라파니로 떠난다. 사흘 밤낮을 편안하게 지냈던 꼭대기층의 숙소를 나와 기차역을 향해 걷는다. 팔레르모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은 바로 붙어 있어서 길이 낯설지가 않다. 숙소를 나와 역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콰트로 칸티와 프레토리아 분수에 안녕을 고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올 것을 기대하면서.

프레토리아 분수

 버스 시간이 조금 넉넉하여 발라로 시장에 다시 들렀다. 시장은 언제나처럼 활기차다. 그래서 시장 구경하는 것이 심심하지는 않다. 물론 나는 시장의 생기 넘치는 풍경보다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유적지나 박물관을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트라파니로 가는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용 과일을 사 나오다가 시칠리아 길거리 음식인 파니 카 메우사(Pani ca Meusa)를 판매하는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파니 카 메우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내장 버거'로 알려진 음식이다. 두툼한 빵 사이에 소의 지라, 즉 비장(spleen)을 기름에 튀기듯 졸여 넣고 그 위에 치즈를 뿌려주는 음식이다. 원래 내장류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리고 혼자라면 절대로 먹지 않을 음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시도를 해보았다. 만드는 장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리하시던 분이 튀기고 있던 내장 한 조각을 내밀더니 먹어보라 신다. 친절은 감사하지만 내가 즐기는 음식이 아닌지라 정중히 사양. 다행히 혼자가 아니라서 동행이 흔쾌히 먹어본다. 갓 튀겨낸 것이라 냄새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고. 내장버거를 받아서 버스 타러 가는 동안 동행이 조금 뜯어준 내장 버거를 한입 먹어보았다. 역시,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입이 좀 짧은 편이고 비위가 좀 약한 편에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해야 할까. 새로운 음식 도전은 항상 조금씩 두렵다. 시장을 나와 기차역 부근의 카페에 들렀다. 내장버거로 놀란 나의 입을 카푸치노와 크라상으로 달래고 잠시 휴식. 역시 커피는 언제나 정답이다.

파니 카 메우사, 내장 버거

팔레르모 기차역에 들어가면 버스 터미널 표시가 양쪽에 다 있다. 왼쪽 표지판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커다란 주차장에는 버스 회사 표시가 하나도 없었다. 직원이 근무하는 사무실도 없었고 그저 버스들이 있는 것으로 이곳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다시 기차역 정문 쪽으로 와서 이번에는 오른쪽 표지판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 아까와는 달리 각종 버스 회사 부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트라파니로 가는 세제스타 버스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2번 플랫폼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시칠리아 여행의 첫 일정이 끝나고 이제 두 번째 도시로 떠난다.

차오, 팔레르모. 아리베데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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