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니아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작은 도시 타오르미나. 기차역은 이오니아 해를 접하고 있어서 구도심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카타니아에서 타오르미나에 갈 때는 버스를 타는 편이 좋다. 타오르미나 버스 터미널에서도 도심은 약간 거리가 있다. 숙소를 도심 부근에 잡았기에 캐리어를 끌고도 꽤 걸었다. 그 덕에 메시나 쪽으로 향해 난 성문인 포르타 메시나를 지나 타오르미나의 중심 거리인 움베르토 거리를 다 돌아보게 되었다는...!
숙소에 짐을 풀고 동행과 함께 다시 시내로 나왔다. 우리의 목적지는 타오르미나 그리스 극장.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었고, 그래서 극장을 돌아보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극장 부근 성당 앞 광장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더 생각할 필요 없이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해산물 리소토와 라자냐를 시켰다. 익숙하지 않은 라자냐의 모양에 조금 당황했지만 식사는 좋았다.
타오르미나 그리스 극장은 버스터미널에서 움베르토 거리로 들어오는 포르타 메시나에서 가깝다. 오후 햇살이 부드러운 길을 따라가니 매표소가 눈에 들어왔다. 표를 구매하고 들어서다 뒤돌아보니 아치문 너머로 에트나 화산이 그림처럼 솟아있었다.
타오르미나 그리스 극장은 그 앉음새가 너무나 멋지다. 객석에서는 이오니아 해와 에트나 화산을 바라볼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 극장은 주연배우가 함께 나오는 듯한 분위기를 가득히 뿜어내고 있었다. 비록 군데군데 부서지고 폐허가 된 부분이 많으며 아직까지 복원 중인 곳이 많기는 하더라도 이 당당하고 멋진 위치는 어느 극장도 흉내 내지는 못할 것 같다.
극장 관객석 끝까지 올라가면 다시 바다가 보이는데, 섬의 기찻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 기찻길의 끝에는 메시나 역이 나올 것이고 그곳에서 기차는 나뉘어 배를 타고 본토로 들어가 다시 합쳐져서 로마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 길의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펼쳐진 푸른 이오니아 해는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평화롭게 만들어준다.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의 끝자리, 햇살을 가득히 받으며 길게 다리를 뻗고 앉아 있다가, 결국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누웠다.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타오르미나의 겨울 햇살은 따스했고 그대로 받고 있기에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리스 극장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극장을 나와 타오르미나 시내를 조용히 거닐어본다. 타오르미나 시내를 걷다 보면 예쁜 풍경들이 자주 나타난다. 식당의 표지판으로 보이는데, 이곳을 찾아가 보니 비수기인지 문이 닫혀있다. 유명한 그라니따 가게도 비수기라 휴업이어서 이곳의 그라니따를 맛보지는 못했다. 시칠리아를 한번 오고 말 것이 아니니까 다음번에는 오면 꼭 그라니따를 먹어보는 것으로.
타오르미나 시내를 걷다 보면 작고 소박한 성당들이 나타나곤 한다. 크고 화려한 성당보다는 깔끔하고 조용한 그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에 나는 가끔씩 성당에 들어가 앉아 있어 보는 편이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사람머리화분을 자주 보게 된다. 예쁜 모양의 화분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사람 머리 모양의 화분을 쓸까. 시칠리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는데 여기에는 오싹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시칠리아 여인이 무어인 머리 모양의 화분에 바질을 심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잘 자라서 차츰 이웃들이 같은 모양의 화분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그녀가 바질을 심은 화분은 화분이 아니라 진짜 무어인의 머리였다고 한다. 그 무어인은 그녀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 그러나 그는 고국에 처자식이 있었던 유부남이었고 그가 그녀를 떠나게 되었을 때에야 그녀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과 배신의 상처가 똑같이 깊었던 그녀는 그를 영원히 자기 옆에 두고자 그를 죽이고 머리를 잘라 화분으로 쓰며 바질을 키웠다고 하는 후덜덜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야기는 엽기적이지만 이것은 시칠리아 여인의 이야기였고 그리하여 이 화분은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화분이 되었다고 한다.
골목을 걸어 나와 조금 걷다 보면 타오르미나 시민공원에 닿는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성된 이곳에서는 이오니아 해를 좀 더 크고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에트나 산의 자락이 펼쳐지고 그 꼭대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이오니아 해와 에트나 산의 풍경은 매일 보아도 전혀 질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지다.
공원을 나오니 벌써 늦은 오후, 동행은 카타니아로 가서 밤기차를 타야 한다. 물론 그 기차는 타오르미나를 지나가지만, 타오르미나 기차역은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하고 캐리어를 맡기기에 적절하지 않았기에 동행은 카타니아에 짐을 맡기고 가볍게 타오르미나로 나와 함께 왔었다. 시민공원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꽤 돌아서 가는 길이라 구불구불한 찻길을 한참 따라가야 했다. 버스터미널이 가까워지는 곳에 타오르미나 동쪽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은 일출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이 전망대에서는 영화 <그랑블루>의 촬영지 이솔라벨라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이솔라벨라까지 내려가는 케이블카는 수리 중이었는지 운행중단이어서, 일정이 짧은 나는 그저 이렇게 이솔라벨라를 내려다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무리 따뜻한 지중해라 해도 겨울에 바다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까.
저녁햇살이 길어지며 해는 조금씩 지고 있었다. 동행의 버스는 어느새 타오르미나 버스터미널에 대기하고 있었고, 시칠리아 여행의 처음부터 이곳 타오르미나까지 나와 함께 한 동행은 버스를 타고 카타니아로 가서 로마행 기차를 타게 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동행이 떠나고 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나는 움베르토 거리를 천천히 걸어 노베 아프릴레(4월 9일) 광장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나의 시칠리아 여행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 하루 온전히 타오르미나에서 보내고 내일 새벽 버스로 카타니아 공항으로 가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물론 기차를 타고 로마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오랜 기차 여행을 하기에 체력적으로도 힘들기에 일찌감치 비행기를 선택했다. 동행 없이 온전히 혼자 있었던 밤은 오히려 익숙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여행하던 사람이라, 숙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게 오늘 하루의 일정을 생각해 본다. 타오르미나는 워낙 작은 곳이라 어제 하루 둘러본 것이 거의 다이다. 물론 이솔라벨라 쪽으로 내려가는 일이 남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려니 조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솔라벨라로 내려가는 대신 카스텔몰라로 올라가기로 했다. 타오르미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한 옛 카스텔몰라 성과 작은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버스터미널에서 카스텔몰라행 버스티켓을 왕복으로 구입했다.
카스텔몰라행 버스는 포르타 메시나 앞에서 탈 수도 있었다. 그걸 알지 못하고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긴 했지만, 뭐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카스텔몰라는 타오르미나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버스가 천천히 올라간다. 타고 있는 사람들도 몇 안되어서 자리에 앉아서 저 아래로 펼쳐지는 이오니아 해를 바라보며 올라간다. 가까운 곳에 섬도 보인다. 메시나 부근도 아니니 보이는 저것은 분명히 본토는 아니다. 버스는 그렇게 천천히 올라가 이윽고 카스텔몰라 마을에 도착했다.
카스텔몰라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지다. 버스정류장 자체가 하나의 전망대이고 마을의 시작점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카스텔몰라는 영화 <아쿠아맨>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마을 쪽으로 살짝 들어갔다가, 표지판을 보고 카스텔몰라의 성인 카스텔로로 향했다.
카스텔로로 올라가는 길은 한적한 계단이었다. 조금 오르다 보면 탁 트인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에트나 산이다. 타오르미나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봉우리를 눈높이에서 멀리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엄청나게 화려하지는 않은 전망대이지만 눈 덮인 에트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시라쿠사에서부터 카타니아를 거쳐 타오르미나에서까지 계속 보아왔던 에트나 산이지만 그 모습은 늘 새로웠다. 그래서 계속 스마트폰으로, 잘 익히지는 않았지만 액션캠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카스텔로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래쪽 전망대보다 더 탁 트였다. 아무래도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보니 먼 지중해까지 눈에 들어온다. 어제처럼 맑은 날씨였다면 아마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푸른빛을 보여주었겠지만, 오늘은 살짝 구름이 끼었다. 그래서 오히려 다니기에는 편하다.
카스텔로를 내려와 카스텔몰라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고풍스럽게 포석이 깔린 골목길과 오래된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들은 옛날 감성으로 가득하다. 카스텔몰라도 타오르미나처럼 골목골목마다 예쁜 상점과 식당이 숨어 있다.곳곳에 커다란 화분이 놓여있어서 골목을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하고.
걷다 보니 어느새 카스텔몰라의 두오모 앞이다. 두오모는 작고 소박하지만 정갈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곳은 두오모의 소박한 아름다움도 있지만, 두오모 옆의 작은 광장에서 바라보는 에트나 산의 모습이 또 다르다. 시라쿠사를 출발하면서 계속 봐왔던 에트나 산이지만, 보는 장소에 따라 조금씩 그 느낌이 다른 에트나를 보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다. 두오모 광장의 야트막한 담장 위에 놓인 화분과 에트나를 담으니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왔다. 에트나 산 위로 솟은 동그란 먹구름이 독특한 모양새를 자랑하며 하늘을 떠가고 있었다.
카스텔몰라를 대략 다 둘러보고 나서 내렸던 버스 정류장에 왔더니 어느새 버스가 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타오르미나로 내려오다가 포르타 메시나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오는데 어느 골목에서 한 외국인 커플이 무엇인가를 유심히 읽고 나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일까 궁금해서 그 앞의 표지판을 읽어보니 타오르미나 오데온 유적이었다. 찾아보니 타오르미나 오데온은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건축물이 세워진 로마 건축물이라 한다. 전날 보았던 그리스 극장이 대형 무대와 객석을 갖추고 있었다면, 오데온은 음악과 문학 공연을 위한 작은 극장이었다고 한다. 주택가가 둘러싼 이 오데온은 낡았지만 꽤 운치 있는 유적이었다.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목적 없이 걸어 다니기 좋은 날이다. 노베 아프릴레 광장으로 뻗어있는 움베르토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이번엔 또 무엇일까 하고 가보니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 골목 안에는 식당이 있었고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노베 아프릴레 광장. 어제부터 주야장천 지나거나 쉬어갔던 이 광장은 이오니아 해와 에트나 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전망대이다. '노베 아프릴레 광장(Piazza IX Aprile)'을 우리말로 옮기면 '4월 9일 광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나온 안내서에는 4월 9일 광장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1860년 4월 9일 타오르미나 대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의 부르봉 왕가로부터 시칠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마르살라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퍼졌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광장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만, 그소식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리발디가 마르살라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인 5월 9일이었다고. 원래 이 광장의 이름은 광장 한 편의 작은 교회였으나 지금은 시립도서관이 된 산타고스티노 교회의 이름을 따라 산타고스티노 광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광장에서 이오니아 해를 바라보는 교회는 17세기에 지어진 산 주세페 교회로, 내부의 옥색 기둥이 아름다운 예쁜, 정갈한 곳이다.
이 교회의 뒤쪽으로 타오르미나 성이 있다고 하는데 가는 길은 찾지 못했고, 겨울이어서인지 아니면 위험해서인지 폐쇄되어 있다고 한다. 커다란 모자이크로 장식된 광장의 끝, 난간에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본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에트나 산이 눈에 들어온다. 광장에서 포르타 카타니아 쪽으로 가는 문 위로 오래된 고풍스러운 시계탑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타오르미나의 동쪽 문은 포르타 메시나, 서쪽 문은 포르타 카타니아이다. 메시나 쪽으로 난 문과 카타니아 쪽으로 난 문 사이의 도시 타오르미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포르타 카타니아를 나오면 다시 아름다운 정원처럼 보이는 전망대가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역시 에트나 산이다. 눈 덮인 높은 화산이 뭐 그리 장관이겠냐고 하겠지만, 에트나는 여전히 멋있었다. 어디에서 보든지.
다시 포르타 카타니아를 통해 들어오면 타오르미나 두오모 광장에 이르게 된다. 노베 아프릴레보다 조금 작은 듯 보이지만 오히려 다정한 느낌이다. 노베 아프릴레가 전망을 위해 존재한다면 두오모 광장은 사람들과 가게의 편안한 만남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광장이다. 두오모 광장 한가운데에도 분수가 있는데, 분수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은 반인수인 켄타우로스 또는 미노타우로스이다. 타오르미나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소'를 의미하는 '타우로(tauro)'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저 반인수를 세워놓은 것이라 한다. 그래도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보다는, 영웅들의 스승이자 현자인 켄타우로스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타오르미나 골목골목은 예쁜 기념품들로 가득하다. 다정하고 예쁜 골목길을 돌아보며 기념품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을 놓쳤다.
보통 이탈리아 요리는 3개의 코스에 디저트로 이루어진다. 전채요리인 안티파스토, 곡물로 만들어지는 첫째 요리인 프리모 피아티, 육류나 해산물로 이루어진 두 번째 요리인 세콘도 피아티에 디저트가 그것인데, 혼자서 저것을 다 시켜 먹기에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나는 안티파스토 중 하나인 브루스게타와 채소 샐러드를 시켰는데 이것은 성공. 그러나 하우스 와인을 아무 생각 없이 맥주 시키 듯 500 ml를 시킨 것은 나의 실수. 그래도 하우스 와인이 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절반 이상은 다 마셨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니 겨울 햇살이 저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타오르미나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식사를 끝내고 바로 갈 수 있는 곳도 노베 아프릴레 광장이다. 오늘 하루 종일 구름이 끼어 조금 흐렸는데, 서쪽 하늘에 햇살이 조금 비치고 있다. 내일부터는 날씨가 좋아지려나.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다시 시민공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이곳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되니 조금 섭섭하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이곳에는 군데군데 오래된 건물들이 서 있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돈다. 그래도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난간 끝에서 바라본 이오니아 해와 그에 이어지는 에트나 산이다.
어제 동행을 배웅했던 것처럼 오늘도 동쪽 전망대까지 걸었다. 동쪽 전망대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구름이 점점 더 걷히고 서쪽하늘에 노을이 잡히려고 한다. 지금쯤 다시 걷기 시작하면 노베 아프릴레 광장에서의 해지는 모습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솔라벨라에 작별을 고하고 천천히 걸어서 포르타 메시나에 들어서서 움베르토 거리로 들어섰다.
움베르토 거리를 걷다 보니 노베 아프릴레 광장 쪽으로 저녁 햇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보는 햇살이다. 그래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루종일 흐렸던 하늘, 구름 사이로 저녁해가 빛나면서 움베르토 거리를 그리 밝게 비췄던 것이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내일은 날씨가 좋으려나.
해가 지면서 산과 바다를 아름답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에트나를 감싼 노을도 극적이었지만, 오묘한 보랏빛을 던지는 바다가 오히려 더 신비로웠다. 스마트폰으로 그 사진을 찍다가 그만두었다. 그 환상적인 보랏빛을 스마트폰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바로 앞에 있던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원한다면 사진을 찍어주겠다 했더니 그는 괜찮다며, 이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말했다. 해가 지면서 바다에 떨어지는 이 환상적인 보랏빛은 동쪽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시칠리아의 마지막은 타오르미나의 석양이었던 것.
이 모습을 오래오래 마음속에 간직해야지. 언젠가, 분명히 다시 오게 될 이곳 타오르미나, 시칠리아.
차오. 아리베데르치, 미아 타오르미나(Ciao, Arrivedercci, mia Taorm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