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내린 비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화창한 오후, 보도 위를 반짝반짝 곡선들이 헤맨다.
햇빛에 잘 비추어야 얼핏, 얼핏 제 모습을 드러내는 가느다란 실타래.
어떤 것은 이어지고 어떤 것은 끊어지며, 서로 엉켜 미로를 만든다.
헤매이는 선들은 달팽이들이 남긴 점액의 궤적.
나는 종종 달팽이였으면, 생각한다.
어디든 꼭 가야 한다면, 꼭 나가야 한다면, 달팽이처럼 집을 지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사를 했다. 집을 지고 다녔다.
까스래미는 집 떠나왔다는 신호다. 집을 나선 지 이삼일이면 손톱마다 까스래미가 부대낀다.
첫날이 지나면 엄지에, 둘째 날은 검지에, 셋째 날엔 중지에……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보다가 결국 피까지 낸다.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셨다. 한동안 입원해 계시다 집에 돌아오시던 날, 아버지는 유독 기뻐하셨다.
익숙한 욕조에서 목욕을 하시고는 살 것 같다고 하셨다. 병원에선 죽을 것 같으셨나보다.
식구들은 요양원에 가기 싫다시는 아버지를 설득했고, 아버지는 결국 집을 떠나 낯선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 손가락에도 까스래미가 있었을까.
쨍쨍한 햇빛 아래 반짝반짝, 쉴 곳을 찾아 헤맨 흔적들.
반짝반짝 빛나는 곡선의 한쪽 끝은 이미 말라 희미해지고, 다른 끝엔 죽은 달팽이가 붙어 있다.
끝내 말라버린 달팽이 한 마리.
얼마나 목이 타고, 얼마나 아팠을까. 가여워라, 가여워.
하지만, 너는 네 집에서 죽었잖니. 평생을 지낸 그 익숙한 곳에서.
평생 집을 이고 살았던 나도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
내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내 손톱깎기로 까스래미를 잘라내며.
또각,
또각.
Shell
/ʃel/
껍데기, 껍질. 연체동물의 외피(달팽이나 조개)
사람에게 쓰면 비유적으로 자기 방어의 외피를 뜻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껍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