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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n 30. 2022

적막의 해변

흩어져 버리자


 바닷가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더운 것을 원체 싫어하여 뙤약볕 아래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짠 물 냄새와 특유의 소란스런 분위기도 바닷가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덥지 않은 봄날, 우연찮게 바다에 갈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만난 제주였다. 기분 좋은 바람에 몇 없는 사람들 속 바닷소리만 들리던 고요함이 내심 좋았다.

 어느덧 해가 질 무렵, 밀물 때가 되자 저 멀리 파도가 다가왔다. 넘실 넘실. 파도가 조금은 지친 듯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찬란히 빛나는 햇살을 뒤로하고 너울진 파도는 넘실넘실 해변으로 다가와 흩어졌다. 져가는 노을의 맹렬한 타오름을 묵묵히 뒤로한 채 파도는 잠잠히 해변에서 먼 길의 발걸음을 정리한다.


물감 같은 바다


 파도를 보며 새삼 위로를 느꼈다. 지친 일상을 살다 도망치듯 나온 어딘가에서 만난 파도는 그저 잠잠히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밀물과 썰물을 따라 조용히 들어왔다 조용히 나간다.

 삶에선 때로 무의미한 것들이 큰 의미를 가진다. 무거운 가치와 부담감, 끝없이 품어야 하는 앞날을 향한 비전에 매몰될 것만 같은 순간에 만나는, 별 볼 일 없지만 항상 해야 할 일을 하는 무의미한 것들이 오히려 삶의 작은 기쁨을 준다. 그날 만난 파도의 잔잔한 흩어짐이 그러했다.



 바쁘게 살아온 일상 속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게 달려갔으나 마주한 결말은 꿈결 같지만은 않았다. 태평양의 한가운데에서 요동치던 거대한 물결이 육지에 이르러선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 띄워 보내는 것처럼. 그저 그런 결말과 기대에 못 미치는 나의 모습에 실망할 뿐이었다.

 만약 내가 넓은 대해의 한가운데서 요동치던 파도였다면 물어봤겠지.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이렇게 흔들려서 결국 어디에 도착하느냐고. 하지만 그 답은 해변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별 볼일 없이 고요한 해변에서 흩어지는 파도는 질문의 답을 찾았을까.




 바다 위에서 요동치는 파도는 영원히 수평이 될 수 없다. 영원히 넘실넘실 대며 흔들릴 것이다. 쉼 없이 흔들거리던 파도는 결국 해변에 이르러서는 차분히 흩어지며 수평의 모습으로 소멸된다. 평생 동안 수평의 형태를 가질 수 없었던 파도는 수평이 되는 순간 그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파도를 닮아있다. 인간은 평안을 바란다. 흔들림도 없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불안함도 없는. 하지만 인생은 우리를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바다를 요동치게 하고 땅이 흔들리며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그런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인력을 잃고 그저 떠밀려갈 뿐이다.


 그런데 그 고된 여정의 완성이 흩어짐이라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먼바다 끝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르는 채 약간의 설렘과 무수히 많은 두려움을 안고 흘러온 길에 끝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뿐이라면. 나는 약간의 서운함이 느낀다.

 그러나 파도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대로 흩어져 사라진다. 맹렬히 자신의 머리 위에서 타오르던 햇빛을 뒤로한 채 해변에서 꼬리가 말리며 소멸한다. 나는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버겁기만 하던 여정의 마무리를 가볍게 훌훌 털어버린 채 사라질 수 있음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분수는 하늘로 솟구치다 결국 자신의 꼭대기에서 무수히 많은 물방울로 흩어진다. 그것이 중력을 거스른 의지의 결말이다.

 그러나 그 찰나의 흩어짐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사력을 다해 하늘로 솟구친 물줄기에게 후회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최선을 다한 과정의 열매고 삶의 평등한 결말이다.


 나는 파도가 도착할 해변이나, 분수의 꼭대기가 죽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파도는 흩어져 다시 바다로, 분수는 흩어져서 발 및에 분수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다시 해변으로 분수의 꼭대기로 향해 나아갈 것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난 자는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다시 만난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생각한 것보다 별 볼일 없는 잔잔한 해변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 왔을 일의 결말이,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 이와의 엔딩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적막뿐인 해변에서도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그날 나에게 위로를 건넨 노을 지는 해변에서 파도처럼.


 영원히 요동칠 것만 같던 파도가 수평이 되는 곳은 해변이었다. 파도가 수평이 되는 해변. 결국 바다에서 시작된 파도가 자신의 모태인 바다에게 물어본 질문, 자기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그 답은 해변에 도착한 자신이 알고 있었다.

 파도가 말없이 흩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후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 했기에, 그 끝을 보았기에, 더 이상 사랑해줄 수 없을 만큼 사랑을 주었기에 후회 없이 도착한 해변에서 맘 편히 쉴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의 하루가 보잘것없이 힘들고 마음에 풍랑이 인생을 요동케  , 결국 도착한 해변에서는 그저 흩어져 버린 것만 같을 , 그것은 당신이 삶 바다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수많은 세월, 억겁의 길이를 요동치며 인고 파도를 기다리던 적막뿐인 고요의 해변은 나의 지나온 길을 이미 알고 그저 품어줄 것이다.



 잠시만 쉬자. 그리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자. 그리고 또 다른 해변을 향해 격동의 바다를 흘러가자.











Tony Bennett -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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