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마음들을 읽을 때 이상하게 행복하다
<새 이야기>를 읽다 말고.. 심각해져버렸다.
"청둥오리가 인간에게 가서 고백을 하고 함께 살려면
천 일 동안 노동을 해야 한다."
강쥐는 얼마나 걸릴까. 오리를 키우는 사람보다 강쥐와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강쥐들은 변하고 나서 인간 생활에 적응하기가 조금은 더 수월할까. 오리보다 몸집이 크다고 더 오래 일해야 하는 건 아닌가. 다 읽고 나서도 이런 고민을 낮이 다 가도록 하고 있다. 이런 나 괜찮을까.. 그치만 이내 털어 넘긴다. 괜찮지 않으면 또 뭐 어때. 내 장점은 나야!
'못생긴 마음들을 쓸 때' '이상하게 행복하다'는 화진 작가님. 사무실 자리에 앉아 작가의 말을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양발을 서로 가로지르기도 하고, 너무 좋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아차 싶어 작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런 못생긴 마음들을 읽을 때 이렇게나 행복하다, 고.
좋지 않은 말은 입 밖으로 내지도 감히 마음에 담아두는 것마저 죄스러워한다. 누구한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싫다는 소리를 못하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것만 보고 담기에도 모자란 것도 사실이고, 사실 나고 자라기를 싫은 것보다 좋은 게 많았다.
모두가 알 만한 단점이라면 내가 아니라도 말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에게만 해당하는 단점이라면 그건 나만이 불편해하는 부분이니까 굳이 상처 줄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발화 의도가 찜찜하게 느껴질 때 있더라도 기분 탓이 아닐까, 하고 곧잘 넘어갈 때가 많다. 설사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잖아. 돌려 돌려 씹는 소리를 애써 곱씹을 여력도 없었고, 사실 대부분 눈치가 없고 안 봤다.
스스로 생각하는 '못생긴 마음들'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회피형 애착 상태였는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들여다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솔직하다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회피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은) 아니까 더더욱 용기를 주는 글쓰기가 부러웠다.
내가 부럽다고 말하는 앞사람이 사실 누가 나랑 바꿔준다고 해도 서로를 바꾸지 않을 걸 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나의 장점이 나를 애매하게 아는 사람에게는 때로 같잖을 수도 있을 거다. 세상만사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둡고 애매한 것들 투성이겠지만, 그럼에도 곧잘 웃고 심지어 지금 여기 나라서 다행일 순간들이 함께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화진 작가님의 첫 단편집 <나주에 대하여>는 내가 나대로 글을 적어보고 싶게 만든다. 싫은 것보다 좋은 게 훨-씬 많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구구절절 늘여놓기를 자랑하는 내가 쓰는 글.
이를테면 이런 글.
너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멋지다, 였다. 멋지구나. 한눈에 봐도 알 만큼 멋지다. 기다란 몸과 곧은 등에서, 서둘지 않는 말투에서 알 수 있었다. 말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정직하게 움직이던 눈동자와 고갯짓에서 알아봤던 것 같기도 하다. 옷차림 역시 누가 봐도 말끔했다. 착실한 모습. 단정한 분위기. 이어 생각했다. 나와 다르구나. 몸보다 마음이 앞서 자주 우왕좌왕거리는 나와는, 너는 다르다.
<해태에 대하여>
민희는 해태의 마르지 않는 귀여움을 기대하는 게 즐거웠다. 해태의 많은 부분이 둘이 보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앙증맞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앙증이라니……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었지만, 민희가 보기에 그것은 항상 두 개씩 짝을 이뤄 그려지는 체리 같은 귀여움이 있었다. 이를테면 해태의 선물이 그랬다. 해태는 작게라도 꼭 꾸며 선물을 했는데, 희민은 해태의 선물 포장에서 항상 그런 마음을 느꼈다. 최고심이나 토이스토리 같은 것. 누구라도 알 만한 캐릭터지만 실제로 관련된 물건까지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스러운 것. 각 잡고 좋아해 본 적은 없지만 누구라도 쉽게 마음이 열릴 만한 것들. 민희는 하다 못해 손편지가 적힌 포스트잇 하나마저 어쩜 이렇게 본인처럼 따숩고 사랑스러운 것을 고를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막상 만나면 그런 것들은 까먹었다. 귀엽게 살고 있구나.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 해태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귀여운 스티커를 무리 지어 붙인다는 점에서, 세로와 가로가 엇비슷하게 정사각형을 이루는 손글씨가 아기 새 발자국 같다는 점에서 앙증맞음 그 자체였다.
<선물과 귀여움>
오늘의 마무리.
박혜진 평론가의 말씀처럼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다".
화진 작가의 인터뷰처럼 "좋은 걸 좋다고 느끼는 거 중요"하고, "나만 아는 내가 있다는 사실이 좋"다.
영화관에서 너무 바삭바삭거리지 않을 과자를 고르는 세심함이 좋다.
마음을 너무 붙이는 은영 씨가 나는 좋다.
끝까지 잠가야 예쁘다고 그랬다고 단추 잠근 모습 자랑하는 귀여움은 너무 좋아서 가짜 같을 지경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진짜 정말 격하게 진심으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