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어만 바꾸라며?… 내 인생에서 제일 비효율적인 하루였다”
돌쟁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시급이 낮더라도 재택이 가장 좋겠더라. 어차피 대구는 최저시급도 안 지키기로 유명한 도시다! 최저시급 정도 주면 아주 좋은 직장이고, 그 이상을 주는 곳을 찾기 힘들다. 그럴 거면 출퇴근 시간 안 들고 프리하게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를 찾아보자고 결론 냈다.
그래서 알바몬들 뒤져가며 ‘문서작성’, ‘간단 업무’, ‘재택 부업’ 같은 키워드로 하루 종일 찾아봤다. 그런데, 정말 하나같이 수상했다. 그중 유일하게 ‘해볼 만하겠다’ 싶었던 게 하나 있었다. “문서작성 아르바이트. 영화 줄거리 유의어 바꾸기. 편당 15,000원.”
이 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국어는 전국 1등이었고, ‘유의어 바꾸기’ 쯤은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존감은 높았다. 그리고 현실은… 참혹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면접을 먼저 봤다. 대구의 공단 지역에 위치한 한 사무실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잡다한 생활용품부터 건강식품, 전자기기까지 온갖 걸 파는 인터넷 쇼핑몰 느낌이 났다. 허술한 분위기였고, 회사에서 이 일을 왜 하는지 납득도 되지 않았다.
영화 줄거리 유의어 바꾸기? 왜? 도대체 이걸 왜 시키는 걸까? 물어보니, 네이버 검색 때문이라는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꼬치꼬치 캐묻기엔 분위기가 애매했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도 난 모른다. (아시는 분 제보 좀...)
내용은 이랬다. 이미 쓰인 영화 줄거리를 받아서, ‘의미를 바꾸지 않고 유의어로만 재작성’하는 작업. 처음 공 들여서 썼던 영화 '해바라기'.. 난 안 본 영화인데 마치 본 것 같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원문: "고교 중퇴 후 맨주먹으로 거리의 양아치들을 싹 쓸어버렸던 오태식."
이런 식으로 한 문장을 서너 가지 방식으로 바꿔야 했다. ‘의미는 같아야 하고’, ‘표현만 달라야 하고’, ‘문맥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무엇보다 원문이 너무 엉망이었다. 주술이 안 맞거나 문맥이 이상한 문장이 많아서, 하나하나 고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한 문장도 대충 못 넘기고, 의미 하나 바꾸는 데도 몇 분씩 썼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붙잡고 겨우 한 편.
처음에 물어봤다. 한 편 할 때마다 받을지, 10편씩 모아서 받을지. 나는 괜히 호기롭게 “모아서 받을게요” 했다. 줄거리 대본을 10편 넘게 받아놨고, 3편까지 했다. 그런데 도저히 못 하겠어서 그냥 포기한다고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까지는 OK. 하지만 진짜 못 써도 너무 못 쓴 그 원문을 마주하고 있자면 멘탈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완성한 3편은 보내드렸지만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맡은 일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돈 받을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앉아 있었지만 2만 원도 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거 GPT가 있었으면 단 10분이면 했을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을 통해 딱 하나 확실히 배운 게 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다음 이야기 예고
이번엔 진짜 돈 좀 되는 줄 알았던 ‘협찬 콘텐츠 만들기’ 이야기다. 템플릿이 있어도, 사진을 찍어도, 왜 결국 흐지부지 됐는지. 궁금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