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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pr 12. 2022

오삼 불고기에 대하여

먹는 것으로 쪼잔하게 굴지 말자 - 우리 아빠

      

  가훈까지는 아니지만 꼭 지켜야 할 우리 집의 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먹을 것으로 쪼잔하게 굴지 말자.’다.      


  그 옛날 어렵게 자란 우리 아빠는 먹는 것으로 서러울 일이 많았고, 어릴 적 서러운 기억은 평생 간다며 저 말을 내게 해주셨다.  


   아빠의 설움은 온 가족이 알았기에 우리는 인정했고, 저 말대로 나는 집에서는 모자람 없이 먹으며 자랐다. 부모님은 어딜 놀러 가면 장난감은 안 되지만 먹고 싶다는 것은 꼭 사주셨고 동생과 먹을 것으로 다툼은 종종 있었지만 얼추 초등학생을 지나자 그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 것 하나만큼은 모자람 없던 내게 큰 시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급식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크게 모자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녔던 학교는 급식이 대부분 자율배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아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 혹은 급식 직원분들이 정해진 량에 따라 배급을 했다. 메뉴도 영 아니었고 그렇다고 양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조금, 아주 조금 아쉬워졌다.

      

  사실 학교 급식 메뉴 중 좋아했던 것들은 많았다. 돈가스나 데리야끼 치킨, 제육볶음같이. 하지만 너무 아쉬워서 숟가락으로 식판을 긁게 했던 메뉴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삼불고기! 

  지역이 바닷가라 그런지 가성비가 좋아서 그런지 우리 학교는 유난히 오삼불고기가 자주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이 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독 그 메뉴만큼은 아주 조금 줬다.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을지 몰라도, 대부분 양념 국물이라 그 안의 오징어와 고기, 채소는 숟가락 위에 모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어보려 건더기와 국물 모두 밥에 싹싹 비벼 김자반을 뿌려 먹었다.


  (참고로 고등학교 시절 나는 김자반을 들고 다녔다. 급식 메뉴가 별로인 날이면 나는 김자반으로 나와 내 친구들의 식판을 널리 이롭게 했다.)                




  그렇게 졸업하고 어언 4년. 자취를 시작하면서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먹고살았다. 그래서 한동안 오삼불고기를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반찬가게에 들렀는데, 불고기가 있는 것이다! 나는 홀린 듯 오삼불고기를 포장했다. 처음에 직원이 기다리라 길래 조리된 상태로 주는 줄 알았는데 비조리 상품이라 집에 와 볶아야 했다.


  2~3인분이라던 용량은 매우 푸짐했다. 양파와 양배추가 듬뿍 있었다. 그리고 야채를 들추자 아래에 깔린 오징어와 삼겹살이 보였다. 이 또한 나름 넉넉했다. 처음에는 프라이팬에 볶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야채의 부피가 커 냄비로 옮겼다. 냄비에 올리고 보니 고등학교 때처럼 국물을 자작하게 해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물을 추가했다. 짜게 먹는 게 건강에 좋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요알못 (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 때는 이런 양념류를 구우면 무조건 끄트머리는 태웠었다. 하지만 난 이제 자취 4년 차, 양념류를 구울 때는 대체로 물을 조금 넣어주면 타지 않고 속까지 잘 익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종종 뒤적여 주며 오삼불고기를 볶아냈다. 해산물에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 만큼 혹시나 하는 맘에 충분히 익혀줬다. 익히면서 야채 숨이 죽었는데도 큰 그릇에 다 담기지 않아서 반절만 떠서 책상으로 가지고 왔다.




  다 조리돼서 촉촉한 오삼불고기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집어먹은 것은 오징어였다.

  오징어의 몸통과 다리, 모두 들어가 있었는데 다리를 먼저 먹었다. 따뜻하고 오독오독해 맛있었다. 그 후에는 양배추에 고기를 싸 입에 넣고 곧바로 밥을 한 술 떠먹었다. 후후 불지 않고 먹어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야 했다.

                

  오징어는 정말로 최고였다. 사실 나는 익힌 오징어보다 생물을 좋아한다. 특히 죽도시장에 가서 오징어를 바로 회 쳐 먹는 걸 좋아한다. 초장에 푹 찍어 먹으면 맵고 새콤달콤하고, 끝에는 오징어의 은은한 단맛과 쫄깃함이 입을 맴돈다. 그래서 ‘역시 오징어는 삶은 것보다는 생으로지~’ 생각했었는데. 오삼불고기의 오징어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비교적 덜 쫄깃쫄깃하지만 씹기 쉽고, 양념이 매콤 달콤한 게 참 담백했다.

     

  그렇게 몸통은 담백했고, 다리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아쉬움을 모두 보상할 만큼 컸다. 손톱만 한 다리를 찔끔찔끔 먹다 손가락만 한 다리를 마주한 내 심정. 아마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다리를 입에 넣자 특유의 오독오독한 식감도 좋았지만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내 볼따구니를 꽉 채웠다. 오징어만 먹으면 아무래도 밥과 간의 조화가 맞지 않기에 흰쌀밥에 양념을 쓱 묻혀 입에 넣었다. 역시 동네 반찬가게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징어 외에도 삼겹살, 양배추, 양파 모두 물을 더 넣어 푹 끓였더니 모두 야들 야들한 게 보드라웠다. 개인적으로 삼겹살은 양파에 싸서, 오징어는 양배추에 싸서 먹는 게 맛있었다. 

  오징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불고기 양념에 기름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삼겹살을 먹는데도 일반적인 제육과 달리 텁텁함이 없었고, 양파와 함께하니 육즙과 양파에 밴 양념이 함께 느껴졌다. 양배추는 더 쥬시 했다. 양배추는 잘 익혀져 양념을 듬뿍 빨아들였고 동시에 달달한 맛이 극대화되어 있었다. 그런 부들부들 촉촉한 양배추에 오독 쫄깃한 오징어를 싸서 먹으니 당장 차가운 소주 한 병을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맛났다. 사실 내심 술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를 뽑은 자리가 덜 아물어 마시지 못했다. 마침 술도 한라산이었는데…  


        

  아쉬움은 남았지만 술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남은 오삼불고기를 어떻게 알뜰히 해치워 볼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고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미 마음을 정했다. 내일 중으로 한 번은 남은 것을 데워 밥에 얹어 덮밥을 하고, 한 번은 남은 양념을 이용해 밥을 볶은 뒤 김자반을 뿌리고, 고소한 계란 국을 끓여 곁들일까 한다.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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