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변두리의 허름한 호텔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 외젠 다비는 가정부, 대장장이, 인쇄공, 마차꾼, 여공, 폐병 환자, 수문지기… 등 파리의 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생활상을 담담한 필체로 서술해냅니다. 1929년 프랑스 포퓰리스트상을 수상작입니다.
<< 에밀 르쿠브뢰르의 시선 >> - 주인공입니다. 파리의 빈민 노동자로 살아가던 중, 처남에게 돈을 빌려 오래된 북호텔을 임대하게 됩니다. 새벽 시간에 수시로 들어오는 투숙객들 때문에 잠을 설치지만 모든 투숙객들을 성심껏 관리해나갑니다. 그러나 땅이 수용되고 호텔 주인이 '모던 피혁'에 북호텔을 팔아버리자 상실감에 빠지고 맙니다.
* 에밀 르쿠브뢰르는 이 정도의 궁핍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전쟁 통에 그보다 더 심한 궁핍을 겪어 보지 않았던가? 창고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웃으면서 말하듯 '별 밑의 여관'이라는 들판에서 노숙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아닌가. 글쎄 그 가격으로 더 이상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중략) 숙박인에게 방이란 무엇인가? 잠을 자기 위한 곳 아닌가. 그 이상은 아니다.
* 새벽 2시였다. 그는 운하의 가스등이 희미하게 밝혀 주는 가게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때때로 사람 그림자가 카페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중략) 맞은편에서 감시 초소의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가로등에는 "물에 빠진 사람 응급조치!" 라는 붉은 게시판이 걸려 있었다. 르쿠브뢰르는 그것을 꿈에 볼까 두려워했다. 불안정하고 덧없는 인간들이 의지할 곳을 찾고 있는 마흔 개의 방들 한가운데 선 르쿠브뢰르의 주위는 온통 침묵이었고 휴식이 있을 뿐이었다.
래플스 호텔 르 로열<프놈펜>
* 그들은 단꿈에서 깨어나며 "망할놈의 일!" 하면서 생활을 저주한다. 때때로 그들은 의자 위에 펄썩 주저앉으며 기지개를 켰다. 단조로운 운명이 그들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엔 일찍 자야겠어!" 그들은 대단치 않은 직업에 못 박힌 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북호텔에는 가지각색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 회사원들, 회계원 한 사람, 급사들, 전기공들, 인쇄공이 둘 있는가 하면 건설 계통의 일꾼으로는 미장이, 벽 칠장이, 석수장이, 목수 등 만약 파리가 지진으로 파괴되어 버리면 재건에 필요할 인간들이었다. 아침 7시가 되면 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 가구들을 팔아 정리하기 위해 그는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렇게 해서 하찮은 것과 리넨 제품들은 낮은 값에 팔았다. 그러나 굵직한 물건들, 말하자면 의자라든지 테이블이라든지 장롱 같은 것은 사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고물상에게 넘겨 주고 말았던 것이다. 40호실의 '침실 중앙'침대, 14호실, 21호실, 25호실의 '미국산 소나무'로 만든 가구들. 구리 공이 달린 침대들, 전체가 '떡갈나무'인 테이블들, 그리고 그가 자랑으로 여기던 카운터, 루이즈의 카운터, 그런 것들은 '벼룩시장'으로 실려갔던 것이다.
<< 드보르제 영감의 시선 >> - 인쇄공이었으나 지금은 창고지기입니다. 첫 번째 아내는 도망가버리고 두 번째 아내는 신혼 때 장티푸스로 죽고 맙니다.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살다 북호텔에 정착하게 됩니다.
* 테라스에 앉아서 '보르도 와인 한 잔'을 앞에 놓고 테이블 위에 양쪽 팔꿈치를 올려놓은 채 드보르제 영감은 마부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늙은 마부의 걸음걸이의 굽은 양어깨는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중략) 고독이란 것은 그를 숨 막히도록 쓰라리게 하는 것이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마자 "드보르제 영감, 그것은 옛날이야기에요. 당신 젊었을 때 이야기지!" 하고 들어 주지도 않는 것이다.
래플스 호텔 르 로열<프놈펜>
* 매주 일요일마다 그는 그 여자가 잠들어 있는 무덤에 꽃을 놔주러 갔다. 단 5년 동안만 묘지 사용 허가가 지속되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그는 무덤이 파헤쳐진 것을 발견했다. 마리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이름뿐이었다…….
* 그게 인생이야…… 인생이란 말이야……
* 그는 북호텔에 자리를 잡기 전에 여기저기 가구가 딸린 아파트들을 오랫동안 전전했다. 그런데 이곳의 가족적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르쿠브뢰르 부부는 친절했고 카드놀이 상대가 모자랄 때는 사람들은 그를 불러 한 축에 끼워 주었다. 젊은 식자공들은 예전에는 어떻게 일을 했는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바로 그러한 것, 말하자면 자기가 예전에 하던 일에 관해서는 카드 놀이를 그만두고라도 자세한 조언을 해 주는 것이었다.
* 드보르제 영감은 3층에 살았다. 높은 곳이다. 그는 가뿐 숨결을 내쉬느라 올라가는 도중에 자주 발을 멈춘다. 드디어 자기 방으로 왔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불이 반짝거리는 가게가 그리웠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그 자신을 잊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호텔 안은 온통 조용하다. 잠이 들 수만 있다면, 그의 온몸을 괴롭히는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안 있어, 목숨을 견지하려면 없어서 안 될 몇 푼 안 되는 돈조차 벌 힘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뭐라고? 양로원이라고……?
래플스 호텔 르 로열<프놈펜>
<< 루이즈의 시선>> - 북호텔의 안주인입니다. 낡고 지저분한 북호텔을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바쁘게 살아갑니다. 동거하던 남자에게 버림받아 홀로 아기를 낳게 된 르네를 보살펴주고, 성폭행을 당한 잔느를 보호해주는 등, 투숙객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따뜻한 성품입니다.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쓸고 닦았던 북호텔의 철거가 시작되자 무너져가는 호텔의 방들을 보며 힘들어합니다.
* 그녀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실직하지 않고 병 없이 한 가족이 함께 지내는 그런 것이었다. 호텔을 산다고 하자. 하지만 사고 난 다음에는? 남편도, 자기도 호텔 경영을 해 본 경험이 없다. 그것은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운명에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여태껏 남에게 부림을 받았으나 남을 부려 본 적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일이 구체화되자 루이즈도 어느덧 안심을 하게 되었다. 그녀도 이제는 희망과 신뢰를 갖게 된 것이다. 방에서 씻고 닦고 '조그만 창에 무명 천을 고쳐 걸고' 하는 자기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 아닌가?
* 어떠한 생활이라도 살아볼 만한 값어치는 있는 것이야. 그리고 미지의 세계란 노상 재미없고 해로운 것도 아니니까. 우리들은 여태껏 지나칠 만큼 경멸을 당해 왔다. 왜냐하면 지붕 밑 셋방에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친척 친지라곤 아무도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변할 거야. 이제부터는.' 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 루이즈는 별안간 여태껏 자기를 즐겁게 해 주었던 자신감이 죽어 사라지는 것같이 느껴졌다. 바로 저 집에서 앞으로 살아야 한다니……. 그녀는 머리를 돌리고 몸을 떨었다.
래플스 호텔 르 로열<프놈펜>
* "그렇게 서둘러서 떠날 것은 없어요. 집은 아직도 튼튼하니까요." 하고 루이즈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녀는 우울한 기분으로 이 집단 이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목적도 없이 목이 말라서 복도를, 방들을 배회했던 것이다. 방들 속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지난날 자신의 노력을 생각나게 했다. 그 모든 것이 벌써 먼지로 덮여 있었다. 바람에 삐걱이는 문소리에 그녀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러자 외로움이 그녀를 불안에 몰아넣었다.
* 인부들은 샹송을 부르며, 곡괭이와 철추들로 장비를 하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는 벽면들을 헐어 냈다. 벽토 부스러기는 안뜰에 떨어져서 라투슈가 버리고 간 두 대의 짐마차 위에 마치 눈처럼 덮였다. 계단과 복도들은 침침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28호실을 하고 있군. ……이번엔 27호실." 하고 루이즈는 중얼댔다. "자 이젠 페리캉의 방이다." 그녀는 자기가 선택해서 바른 벽지 색깔로 각각의 방들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호텔은 마치 벌집처럼 좁은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 곳에 예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았다는 점에 놀랐다. 그녀는 가까운 몇 해 동안의 노력이 없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가 조각조각 사라져 버렸다. 숙박인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들 하나하나에 덧붙여진 추억이 되살아오는 것이었다.
* 루이즈는 잠잠히 있었다. '마치 북호텔이 존재치 않았던 것 같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사진 한 장조차.' 그녀는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다. 창들이 뚫린 4층 회색 건물, 자기 옛집을 애써 다시 생각해 내려고 했다. 그리고 더 먼, 그녀가 알지 못하는 때 호텔이 단지 뱃사공들의 여인숙이었던 모습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