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 고어 비달(Gore Vidal)은 "나는 열일곱 살 때까지 셰익스피어를 다 읽었고, 몸의 작품도 다 읽었다." 라고 서머싯 몸의 작가적 위치를 말해줍니다. 이 작품은 자신을 둘러싼 내적, 외적 굴레를 극복해가며, 세상에 눈 떠가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려낸 교양소설의 일종입니다. <달과 6펜스>로도 유명한 작가는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는 주인공 필립처럼 심한 말더듬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 필립의 시선 >> - 고아이며 불구로 다리를 접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사제가 되기를 원하는 백부의 뜻에 거부하고, 옥스퍼드에 장학생으로 입학 가능한 촉망받는 학생- 독일 유학생 - 파리에서의 화가 지망생 - 회계사 - 의학도 - 노숙자 - 상가안내원 - 다시 의학도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의사가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사랑해 돈과 정성을 쏟아붓고, 마지막 돈마저 주식으로 탕진하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 시간이 지나면서 필립의 불구도 관심을 끌지 않게 되었다. … 대부분의 시간에 그는 외톨이였다. 전에는 말이 많은 편이었으나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필립은 자기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갓난아이는 자기 몸이 자신의 일부임을 알지 못한다. 주변의 사물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 발가락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것이 옆에 있는 딸랑이가 아니고 제 몸의 일부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점차 고통을 통해서 제 육체의 실재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과정에도 같은 체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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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 그는 털썩 무릅을 꿇고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불구의 발을 온전하게 만들어달라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기도한다. (···) 하느님이 하시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리라.
* 그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 아름다운 경치에 취한 필립에게는 눈앞에 펼쳐진 것이 온 세상 같았다. 어서 내려가서 그 세상을 즐기고 싶었다. 이제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편견에서도 벗어났다. (···) 자기가 한 일은 자기에게만 책임을 지면 된다. 자유였다! 마침내 제 자신의 주인이 된 것이다. 굳어진 버릇 때문에 저도 모르게 필립은 신을 믿지 않게 된 것마저 신에게 감사드렸다.
* 그에게는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불행한 재능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꿈꾸던 이상과는 전혀 달랐다. 필립은 인생의 나그네가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그전에 메마르고 험준한 세상을 얼마나 넓게 돌아다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안띠구와 북까페
* 거리는 한산했고 행인들은 바쁜 표정으로 지나갔다. (···)다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듯했으며, 혼자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들 행복하게 보였다. 필립은 이때처럼 고독감을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 그는 머리로 그림을 그렸다. 가치 있는 그림은 마음으로 그린 것뿐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세상이 왜 존재하는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까닭이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크론쇼의 페르시아 양탄자 비유를 생각했다. 크론쇼는 수수께끼의 해답으로 그것을 주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본인이 스스로 찾지 않는 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 한때 그는, 사랑이란 사람의 넋을 빼앗아 온 세상을 봄처럼 느끼게 해주는 어떤 황홀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그런 행복한 도취를 체험할 수 있기를 고대했었다. 그런데 이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이것은 예전엔 미처 몰랐던 어떤 영혼의 허기, 고통스러운 갈망, 쓰라린 고뇌였다.
안띠구와 북까페
* 사람들은 그더러 무감정하다고 했다. 하지만 필립은 자신이 감정의 노예임을 알고 있었다. 우연한 친절에도 쉽게 감격해 버렸고, 때로는 목소리가 떨려나올까봐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통스러웠던 학교 생활, 참아내야만 했던 그 굴욕, 창피스러운 꼴을 당하지 않으려는 병적인 강박 관념을 낳게 한 학우들의 조롱이 떠올랐다. 그 뒤로 세상과 부딪혀 살면서 겪었던 외로움,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세상에 기대했던 것과 실제로 겪은 현실의 격차가 주었던 환멸과 실망도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즐겁게 미소지을 수 있게 되었다.
* 남들과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두터운 책을 읽어보았자 쓸모가 없다. 필립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었다. 이제는 주변의 의견에 영향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살아가기는 해야 했다. 그래서 행위의 이론을 수립하기까지 그는 임시적인 규준을 세웠다. < 모퉁이 저편에 경찰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되,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르라.>
메이드 인 안띠구와
<< 크론쇼의 말 >> - 꿈을 이루지 못하고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시인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필립에게 페르시아 융단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으라고 말해주는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죠. 지병으로 죽기 직전 주변의 도움으로 시집을 내게 되지만, 필립의 보호하에 죽게 됩니다.
* 예술이란 일종의 사치야. 인간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자기 보존과 종족 번식이지. 이 본능이 충족될 때라야만 인간은 작가나 화가, 시인이 제공해 주는 오락에 빠질 수 있는 거지.
* 난, 내 시작품에 대단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네. 인생이란 쓰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있는 것이니까. 내 목표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네. 삶의 순간순간에서 그 순간의 정서를 음미하면서 말야. 난 내 글쓰기를 말이지, (···) 거기에 기쁨을 부여하는 아름다운행위라고보네.
* 자네 스스로 답을 발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 선이라든가 악이라는가 하는 말은 내게 의미가 없어. 나는 칭찬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아. 받아들일 뿐이야. 만물의 척도는 나 자신이니까. 세계의 중심은 나니까. (···) 난 나 자신만을 위해 말하네. 타인은 내 행위를 제약하는 존재들로서만 인식하지. 그야 세상은 그 하나하나의 타인을 중심으로 하여 돌기도 하지. 누구에게나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야. 타인에 대한 나의 권리는 내 힘이 미치는 범위에 국한되네.
* 자넨 타인에게 이기적이 아니기를 요구하는데 (···)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메이드 인 안띠구와
<< 무슈 프와네의 말 >> - 필립이 그림을 그만둘 수 있게 일침을 가해주는 파리의 미술학교 스승입니다.
* 세상에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
* 자네보다 못한 화가들도 수백 명이 되고, 자네 정도 그리는 화가들도 수백명은 되네. 자네가 내게 보여준 그림들에는 재능은 없네. 열성과 지성은 있어. 자넨 보통 이상의 화가는 되지 못할 거야. (···) 이렇게 말하고 싶네. 용기를 내어 딴 일에 운을 걸어보라고 말일세. (···) 때가 너무 늦은 뒤에 자신의 범용을 발견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