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72번.
1992년 10월부터 일본 문예 잡지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1995년에 완간됩니다. 하루키는 이 소설로 47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아내를 되찿으려는 남자의 이야기와 폭력의 역사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모험이 되는 작품, 대담하고 관대한 책."이라고 극찬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실업자인 오카다 도루는 집안일을 하며 편집자인 아내 구미코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고양이가 사라진 후, '나'의 주변에 미묘한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합니다.
* 어젯밤 내가 거기에 담아 놓은 마른 멸치는 한 마리도 줄지 않았다.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 역시 좋아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다. 고양이는 절대 멍청한 동물이 아니다. 고양이가 없어졌다면, 그건 고양이가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는 뜻이다. 굶주리고 지칠 대로 지치면 언젠가는 돌아온다. 그러나 결국 나는 구미코를 위해 고양이를 찾으러 나가기로 했다.
* "십 분이면 돼. 나를 위해 십 분을 쓴다고 해서 당신 인생에 치명적인 손실이 오는 것도 아니잖아?" (···)십분이면 돼 하고 전화 속 여자가 말했다. 아니지 그건, 하고 나는 생각했다. 때로 10분은 10분이 아니다. 시간은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나는 그걸 알 수 있다.
*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한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니까,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고 진지하게 노력하면, 그 결과 우리는 상대의 본질에 어느 정도까지 다가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잘 안다고 여기는 상대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나랑 같이 살고 있지만, 정작 내 생각은 거의 안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은 자기 생각만 하면서 살았던 거야."
* 우리가 사는 곳이 '흐름이 저지된' 장소라는 게 고양이의 실종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노 마르타의 지적에 대해서는 말을 않기로 했다. 하게 되면 구미코가 그 말에 몹시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 이상 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가 좋지 않은 장소라 하니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하자는 말을 그녀가 꺼내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 나는 늘 일종의 마비 같은 것을 느꼈다. 자신이 지금 대체 뭘 원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점점 알 수 없어졌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느 나무 위에선지 태엽 감는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하고 울었다. 나는 신문을 놓고 일어나, 기둥에 기대어 마당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새가 또 울었다. 이웃집 마당의 소나무 위에서, 그 끼이이익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찡그리고 보았지만, 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우는 소리뿐이다. 늘 그렇듯이, 아무튼 이렇게 해서 세계의 하루치 태엽이 감겼다.
* 구미코는 한참이나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무슨 생각에 잠겼다.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를 정말 키우고 싶었어. 그런데 키우게 해 주지 않았어. 엄마가 고양이를 싫어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정말 원했던 것을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어. 단 한 번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런 게 어떤 인생인지, 너는 아마 모를 거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에 길들면, 끝내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것조차 모르게 돼."
* 인간은 원래 평등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학교에서 표면상 그렇게 가르치는 것일 뿐,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본은 구조적으로 민주 국가이지만 동시에 치열한 약육강식의 계급 사회이며, 엘리트가 되지 못하면 이 나라에 살아 있는 의미 따위는 거의 없다. 그저 돌절구 안에서 천천히 뭉개지고 갈릴 뿐이다. 그러니 사람은 한 칸이라도 위로 사다리를 오르려 하는 것이다. (···)나는 장인의 그 같은 의견에 딱히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 나는 타인과 관계하면서 감정적으로 오래 혼란을 겪는 일이 거의 없다. 불쾌한 기분에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일은 물론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나는 나와 타인을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존재로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이걸 능력이라고 해도 지장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랑은 아니지만, 절대 간단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 나는 무슨 일로 불쾌해지거나 짜증이 나면, 그 대상을 일단 나 개인과는 무관한 어느 다른 구역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알겠어. 지금 나는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 있지. 하지만 그 원인은 지금 여기에 없는 영역으로 가 버렸어. 그러니까 그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검증하고 처리하도록 하자고. 그렇게 일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동결해 버리는 것이다.
* 나는 일을 그만둔 후로 석 달 동안, 거의 바깥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좁은 세계였다. 그리고 거의 걸음을 멈춘 세계였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고 있는 세계가 그렇게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그것이 움직임을 멈추면 멈출수록, 그 세계가 김한 일들과 기묘한 사람들로 넘쳐 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마치 그들이 내가 걸음을 멈추기를 어딘가에 숨어 지긋하게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고 마당에 태엽 감는 새가 날아와 태엽을 감을 때마다, 세계의 혼미는 점점 더 깊어져 간다.
* 나는 조금 망설인 후에 이렇게 질문해 보았다. "혼다 씨의 그 예언 같은 말을, 듣지 않았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마미야 중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혼다 씨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말을 듣지 않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고요. 혼다 씨가 그때 말했던 것처럼, 운명이란 훗날에 돌아보는 것이지 앞서 아는 게 아니지요. 그러나 지금 와서는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 혼다 씨가 유품으로 내게 남긴 꾸러미를 열어 보았다. 몇 겹으로 단단히 포장된 종이를 힘겹게 벗겨내자, 골판지로 된 딱딱한 종이 상자가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텅 빈 상자였다. 혼다 씨가 내게 남긴 것은, 그저 텅 빈 상자였다.
<< 혼다 씨의 말 >> -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전직 하사입니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난 점쟁이로, 몇 번 만났을 뿐인 주인공에게 텅 빈 상자 한 개를 유품으로 남깁니다.
* 법률이란 건, 요컨대 말이야. 지상의 만사를 관장하는 `거야. 음은 음이며, 양은 양인 세계 말이야. 나는 나이며 그는 그인 세계지. '나는 나, 그는 그, 가을날의 해 질 녘.' 그런데 자네는 거기에 속해 있지 않아. 자네가 속해 있는 세계는 그 위거나 아래야.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은 나쁘다. 그런 유가 아니야.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위로 가야 할 때는 위로 가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아래로 가야지. (···)흐름이 없을 때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고. 흐름을 거역하면 모든 게 말라 버려. 모든 게 말라 버리면 이 세상은 암흑이지. '나는 그, 그는 나, 봄날의 초저녁.' 나를 버릴 때 나는 있어.
* 흐름이 생기기를 바라는 건 괴로운 일이야. 그러나 기다려야 할 때는 반드시 기다려야 해. 죽었다 생각하고 있으면 돼. (···)죽어야 삶도 있으니.
* 인간의 운명은 그것이 지나간 다음에 돌아보는 것입니다. 앞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2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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