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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ul 12. 2024

움직임을 멈췄는지도 모른다-<태엽 감는 새 연대기2>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373번.








   「노르웨이의 숲」,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환상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담아냅니다.  



  << 작가의 시선 >> -  '나'는  어느 빈집의 텅 빈 우물안에 들어갔다가 얼굴에 알 수 없는 반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전화로 섹스이야기를 했던 여인이 사라진 구미코임을 깨닫게 됩니다. 


  *  그러고 보니 꽤 오래도록 태엽 감는 새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은데 하고 문득 생각했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을까,  아마 사오 일 전쯤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인식했을 때는 이미 태엽 감은 새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변하는 계절을 따라 이동하는 새인지도 모른다.  태엽 감는 새의 울음소리는 한 달 전쯤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새는 우리가 사는 작은 세계의 태엽을 계속해서 감았다. 





 





*  나는 지금 이렇게 우물 속에 있다.   (···)어둠 속에서 그저 가만히 있으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실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때로 흠흠 헛기침을 하거나,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곤 했다.  그렇게 해서 내 귀는 내 목소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 손은 내 얼굴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 얼굴은 내 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육체 따귀는 결국, 의식을 그 안에 담기 위해 준비된 한때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  우물 속에서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어쩌다 꿈이라는 형태를 취한 무엇이었다.    (···)와타야 노보루는 언변이 좋은 사람으로 날로 성장하고 있는 듯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그 복잡함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존재 양상을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으며 어정거리다 죽어 갑니다.  그들은 깊은 숲속이나 깊은 우물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만사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현실에 대해 생각하려면,  현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편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예를 들면 깊은 우물 속 같은 장소로.  혼다 씨는  '아래로 가야 할 때는 가장 깊은 우물을 찾아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 하고 말했다. 벽에 기댄  채, 나는 곰팡내 나는 공기를 천천히 들이쉬었다. 

  

  *  우물 속에서 새벽녘의 별을 올려다보는 것은,   (···)한정된 창을 통해서, 자신이라는 의식의 존재가 마치 별과 특별한 인연으로 단단히 엮여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그 별들에게 강한 친밀감 같은 것을 느꼈다.  저 별들은 캄캄한 우물 속에 있는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은 그 대신 내게 힘과 온기 같은 것을 부여해 준다. 


  *  턱에 하루치 수염이 자라 있었다.  하루가 틀림없이 지났다.  하지만 내 하루의  부재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라졌다 한들,  세계는 아무 지장 없이 계속 돌아갈 것이다.  상황은 몹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도 있다.  그것은  '이제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  나는 그 완벽한 어둠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대신 세계의 태엽을 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의 태엽이 점점 풀려, 그 정교한 시스템도 끝내는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게 된다.  그러나 태엽 감는 새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나는 태엽 감는 새로 존재했다.  (···)태엽 감는 새로 하늘을 나는 것은 즐거웠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다.  나는 이 캄캄한 우물 속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태엽 감는 새이기를 그만두고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매미 울음소리도 새소리도 아이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은 탓에,  내가 이 우물에 갇혀 있는 동안 세계가 그 움직임을 멈췄는지도 모른다.  점점 태엽이 느슨해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모든 움직임이 -- 강물의 흐름과, 잎사귀의 흔들림과,  하늘을 나는 새들의 날갯짓과,  그런 것들이 모두 -- 딱 정지해 버린 것이다. 










*  흔들리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힘을 주면 온몸의 근육과 뼈와 관절이 삐거덕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한 칸,  한 칸, 조심조심 오르다 보니 주변 공기가 조금씩 따스해지고,  풀 냄새가 확실하게 섞여 들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우물가를 잡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것을 넘어,  나뒹굴듯 지면으로 내려갔다.  지상이다.  


  *  내가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구미코는,  그리고 몇 년 동안 내가 아내로서 안고 섹스했던 구미코는, 결국 구미코라는 인간의 아주 얄팍한 표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나와 구미코가 둘이 함께 지낸 육 년이라는 세월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태엽 감는 새."  하고 나는 말했다.  (···)태엽 감는 새는 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세계의 태엽을 조금씩 감아.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엽을 감지.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  나 혼자만 어둠 속에 남겨져 있었다.  단 한 가지 아는 것은,  그 무언가의 비밀이 풀리지 않는 한 구미코는 두 번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뿐이다.  마침내 나는 자신의 몸 안에서 소리 없는 분노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분노였다.    


  *  빈집은 완전히 철거되었다.  (···)우물 역시 흔적도 없이 메워졌다.  마당의 풀과 나무는 뽑혀 나가고,  새의 석상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보나마나 어딘가에 버려졌을 것이다.  새로서는 그 편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  틀림없다. 그 여자는 구미코였다. 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구미코는 그 기묘한 방안에서 나를 향해서 죽을힘을 다해 오직 하나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내 이름을 찾아 줘.' 하고.  구미코는 그 캄캄한 방에 갇힌 채,  거기서 구조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를 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 넓은 세상에 오직 내게만 그럴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구미코를 사랑하고,  구미코 역시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 가사하라 메이의 말 >> - 오카다 도루의 옆집에 사는 휴학중인 소녀로 정신세계가 독특합니다. 


  *  만약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라면,   (···)이 세상에서 계속 건강하게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이것저것 생각할까요?  우리는 많든 적든,  여러 가지를 계속 생각하잖아요.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논리학이나,  그리고 종교도 있고, 문학도 있고,  그러 유의 복잡한 사고와 관념은,  만약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지구상에 안 생기지 않았을까요?


  *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는 의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잖아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계속 똑같이 살 수 있다면,  누가 사는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럴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  아저씨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려는 아저씨의 계획 역시 어딘가 외부에서 만들어진 거라고요.  태엽 감는 새 아저씨,  그런 건 나도 아는데,  왜 어른인 아저씨가 모르는건데요?










<< 가노 크레타의 말 >> - 온 몸에 이유없는 고통을 달고 살다 자살을 시도합니다.  자살에 실패한 후 고통은 사라지지만 이로 인해 무감각해지고 강간을 당하며 창녀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  저는 그저 창부에 지나지 않았어요.  저는 육체의 창부이며 의식의 창부였습니다.   


  *  증오는 길게 늘어진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죠.  그 그림자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대부분의 경우 본인도 모르는 법이에요.  그것은 양날의 칼입니다.  상대를 찌르는 동시에 자신도 찌르죠.  상대를 깊이 찌르는 사람은 자신도 깊이 찌릅니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어요.   (···)한번 마음에 뿌리 내린 증오를 떨쳐 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  이곳은 피비린내 나는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강해지지 않은 채 살아남아서는 안 돼요.  하지만 동시에  어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도록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겠어요?  좋은 뉴스는,  대부분의 경우 작은 목소리로 말해진답니다.  아무쪼록 그 점을 기억하세요.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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