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374번.
태엽의 감김에 따라 움직이는 태엽 감는 새는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을, 사라진 고양이의 귀환은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옴'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소설로, 일본 내에서만 227만 부(2002년 기준)이상 판매되었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나'는 사라진 아내 구미코를 찾아 시공간을 뛰어넘는 탐색을 해 나갑니다.
* 집에 돌아왔을 때, 고양이가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옹 야옹 울면서, 끝이 약간 굽은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고 내게로 다가왔다. (···)고양이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 갑자기 돌아왔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양이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너 대체 일 년 가까이 어디서 뭘 하다 온 거니, 잃어버린 너의 시간의 흔적은 어디 남아 있는 거니 하고.
* 벽에 설치된 철제 사다리를 타고 캄캄한 우물 속으로 내려간 나는 늘 하던 대로 벽을 더듬어 야구 방망이를 찾는다. (···)우물은 전에 한 번 완전히 메워졌던 적이 있지만 공기만은 신기하리만큼 예전과 똑같다. 곰팡내가 나고, 조금 눅눅하다. 내가 처음 이 우물 속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은 냄새였다. 우물 속에는 계절도 없고, 시간도 없다.
* 나는 어둠의 깊은 곳에서 그 미미한 열결 고리가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 그러면 된다. 사방은 아주 고요하고, 그들은 아직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와 그 장소를 가르는 벽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조금씩 용해되어 간다. 나는 숨을 죽인다. 지금이 그때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이미지가 소멸한다. 벽은 다시 견고한 벽이 되고, 나는 이쪽으로 튕겨 나온다. 깊은 암흑 속에서, 방망이 끝으로 눈 앞에 있는 벽을 두드려 본다.
* 완전한 어둠이다. 그렇다. 어둠이 가장 중요하다. 그 순수한 어둠이 열쇠를 쥐고 있다. (···)마침내 침묵이 내려온다. 마치 알을 까는 벌레처럼 나의 뇌 사이의 주름에 파고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다. 암흑이 뒤섞이고, 그리고 나는 조금씩 자신이라는 그릇을 떠나간다. 늘 그랬던 것처럼.
* 젊은 병사는 방망이를 한참이나 공중에 쳐들고 있었다. 그 끝이 와들와들 크게 흔들렸다. (···)병사가 백스윙을 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방망이에 혼 힘을 실어 중국인의 후두부를 내려졌다. (···)그는 죽었다고 여긴 중국인이 갑자기 수의의 손목을 잡고, 함께 시체 구덩이로 떨어지고, 중위가 뒤따라 구덩이에 뛰어들어 권총으로 중국인의 숨통을 끊고, 그리고 동료 병사들이 삽으로 구덩이를 메우는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태엽 감는 새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는 어제 오후에 그랬던 것처럼 나무 숲 어딘가에서 태엽을 감듯 끼이이, 끼이이익 하고 울었다.
* '태엽 감는 새'라는 존재는 큰 힘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들리는 새소리의 인도를 따라, 피하기 어려운 파멸로 향했다. (···)그들은 테이블에 놓인, 등에 달린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인형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에 종사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훼손되고, 상실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 어떤 의미에서 나는 구미코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우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는 구미코에 대해, 이제는 그렇게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는 자신이 떠올린 것에 예전만큼의 분명한 확신이 없었다. 돌아온 고양이의 꼬리가 어떤 식으로 굽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 나는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무릎 위에 놓은 손을 맞잡고, 깊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지난번처럼, 의식을 하나로 집중시킬 수 없었다. (···)어떤 기척에 불현듯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자신이 다른 어둠 속에 있다는 걸 알았다. 공기가 다르고, 온도가 다르고, 어둠의 깊이와 질이 달랐다. 그 어둠에는 불투명하고 아련한 빛이 섞여 있었다.
* 나는 얼굴을 들고, 사방을 돌아보고는 헉 숨을 삼켰다. 벽을 통과한 것이다. (···)심장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빠르게 수축을 반복했다. 틀림없다.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제야 겨우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그 208호실 안에는 뭔지 모를 위험한 것이 숨어 있다. 그것도 아마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일 것이다.
* "당신은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거였네. 나를 만나러?" 하고 구미코의 진지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 울렸다. (···)"도망쳐." 또렷한 구미코의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당신, 아직은 벽을 통과할 수 있어."
* "이제 다 끝났어. 같이 집에 가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지금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젤리의 벽 속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거기에 있는 느릿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이곳에 오는 일은 없겠지 하고 나는 그곳을 통과하면서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런데 구미코는 그 방에서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나의 의식은 마침내 깊은 허무의 웅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역시 암흑 속에 앉아 있었다. 늘 그렇듯 벽에 등을 기대고, 나는 우물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 걱정 할 거 없어. 아마 모든 게 끝났을 거야. 이제 여기서 좀 쉬다가, 그리고 원래 세계로, 빛이 넘치는 지상 세계로 돌아가면 돼······.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우물에 물이 솟기 시작한 걸까? 이 우물은 오래도록 물이 말라 죽어 있었다. 그러다 지금 갑자기, (···)물이 불어나고 있었다.
* 당신은 지금 프로그램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접속했습니다. 1에서 17까지의 문서 중에서 번호를 선택하십시오. 나는 17이라는 숫자를 입력하고 클릭했다. 화면이 열리고, 거기에 문장이 주르륵 펼쳐졌다. (···)'나는 지금 그가 잠들어 있는 병실에 가서, 생명유지 장치의 전원을 끄려 합니다. (···)오빠인 와타야 노보루는 먼 옛날에 그와 똑같은 일을 내 언니에게 행했고, 그리고 언니는 자살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더럽혔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육체적으로 더럽혔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더럽혔습니다. (···)그가 내 안에 있는 서랍 같은 것을 멋대로 열어, 거기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를 멋대로 꺼내, 나로 하여금 다른 남자와 끝없이 몸을 섞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양이가 돌아와서 정말 기쁩니다. 이름이 삼치라고 했죠. 나는 그 이름이 좋습니다. 그 고양이는 나와 당신 사이에 생겨난 좋은 상징 같은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 고양이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 가사하라 메이의 편지 >> - 산 속 가발공장에서 일하며 '나'에게 500통의 편지를 보내옵니다.
* 지금부터 삼 년 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아저씨는 삼 년 후에 자신이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아나요?
* 머리를 텅 비우고 베이스에 머리카락을 열심히 심고 있을 때, 아무 맥락 없이 기억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납니다. 맞아, 그래, 이런 거였구나 하고요. 시간이란 ABCD처럼 순서대로 흐르는 게 아니라, 적당히 이쪽저쪽으로 오락가락하는 건가 봐요.
* 아저씨는 자신을 텅 비우고, 잃어버린 구미코 씨를 열심히 찾으려고 했겠죠. 그리고 아저씨는 아마, 구미코 씨를 찾았을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아저씨는 그 과정에서 또 많은 사람을 구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자기 자신을 구하지는 못했네요.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도 아저씨를 구하지 못했고요. 아저씨는 다른 사람을 구하느라 힘과 운명을 다 써 버리고 말았어요. 그 씨앗이 한 톨도 남지 않고, 다른 장소에 뿌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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