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49번.
앙드레 지드 작품으로 나이와 성별, 직업이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숨긴 채 상대방을 대하며, 인생과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서로 호감을 느끼면서도 각자 다른 상대와 여행을 떠나고, 어린 나이에 강한 척 세상에 뛰어들고, 죽음이 두려우면서도 자살을 꿈꾸고, 마치 위조지폐처럼 거짓된 모습으로 위선으로 가득한 세계를 표류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십칠 세 소년 베르나르는 어느 날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준 양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한 채,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나게 됩니다.
* "내가 어느 하잘것없는 녀석의 아들이기라도 하면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겠는걸!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면 아버지를 닮는다는 걱정도 없지. 조사를 해 본다면 이래저래 귀찮아져. 자유롭게 된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깊이 캐지 않는 게 좋아." (···)베르나르는 편지를 접었다.
* 프로피탕디외 씨는 휘청거리면서 안락의자로 걸어갔다. (···)베르나르가 없어진 것을 우선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일시적 과오의 비밀을 알릴 수는 없는 것이다.
* "당신 잘못을 덮어 버리려고 해 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어. 그 애를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친자식처럼 대했지. 그렇게 했다고 자부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주님께서 보여 주신 거야." (···)그 말은 그녀의 마음속까지 꿰뚫고 들어갔음에 틀림없다. 조금 전에 울음을 그쳤던 아내가 더 심하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 인생에서 어려운 것은 같은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진실이라 믿는 것이다. 가령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나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만 하더라도 그렇다 -- 나는 십오 년간 그 사랑을 믿어 왔고, 어제까지도 그 사랑을 믿었지만, 어머니마저도 물론! 자신의 사랑을 오랫동안 사실로 믿지 못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아들을 사생아로 만들어 버린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를 멸시하는 걸까?
* 에두아르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소설이 가장 자유롭고 가장 lawless(무법, 무규칙)하기 때문에······ 아마도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말하자면 자유 그 자체가 두려워서 소설은 언제나 그토록 전전긍긍하며 현실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나는 그 소설 속에 모든 것을 넣고 싶은 것입니다. 그 소설의 내용을 그게 아니라 이것이라 제한하려는 가위질은 하지 않습니다. 벌써 일 년 전부터 써 오고 있습니다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모두 거기 넣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나 다 넣고 싶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아는 것, 다른 사람들의 생활, 또는 나 자신의 생활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을 말입니다."
* "위폐를 손에 넣어 본 적들 있는지요?" 그는 마침내 물었다. (···)"여기에 10프랑짜리 가짜 금화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실제로는 2수의 값어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위폐라는 것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10프랑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 긴 침묵이 흘렀다. 베르나르가 다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자기 친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정말?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선 거짓 소리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외양과 조금도 어긋남 없는 가치를 지닐 것, 자기 가치 이상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 것····· 그러나 사람들은 저마다 속마음을 감추고 속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좋게 보이려고 하는 나머지 마침내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 "당신은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인생으로부터 당신은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어요.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인생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답니다. 절대로 인생에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요." 정열에 활활 불타는 젊은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학자가 탐색하는 동안 예술가는 발견을 한다는 것, 탐색하는 사람은 몰두하게 되고 몰두하는 사람은 눈이 멀고 만다는 것. 진리는 겉보기고 신비는 형태며 인간에게 있어 가장 깊은 것은 바로 피부라고 말이야." (···)베르나르는 야릇한 집요함으로 지그시 친구 얼굴을 보기만 했다.
* "인간들의 구역질 나는 모든 발산물 중에서 문학이라는 게 내게는 가장 혐오스러운 것 중 하나랍니다. 거기엔 자기만족과 아첨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과거를 쓸어 버리지 않는 한, 문학이 달라지기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기성 감성 위에 살고 있고 독자도 그것을 체험한다고 상상하지요. 왜냐하면 독자란 활자화된 것이면 무엇이나 믿어 버리니까. 작가는 자기 예술의 기초를 이룬다고 믿는 약속이나 되는 듯 그것에 편승하지. (···)진짜 화폐를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 오히려 속이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저마다 속임수를 쓰는 세상에서는 참된 사람이 오히려 협잡꾼이 되고 말지요.
* 베르나르는 (···)우등이라는 평가를 받고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건만 그에게는 그러한 희소식을 알려 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 희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그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할 사람은 그의 아버지라는 것을 베르나르는 잘 알았다. 곧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서 알려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나는 올리비에를 통해 베르나르가 자기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그가 택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제일 좋은 길이었다.
<< 에두아르의 일기 >> - 현실을 외면한 채 허구만 취하는 작가이지만, 베르나르를 도와줍니다.
* 나는 나 자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한다고 내가 상상할 따름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감정의 세계에 있어서는 현실과 상상은 구별되지 않는다.
* 결혼 생활이 십오 년, 이십 년 지난 후 부부 사이에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결정의 해체! 사랑하는 한, 자신 또한 사랑을 받고 싶은 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편도 보지 못한다. 당연히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만 자기가 아름답게 꾸미고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만들어 내는 하나의 우상이 있을 따름이다.
* 소설가가 인물을 너무 정확하게 묘사하면 상상력을 돕기보다 차라리 방해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독자가 제 마음대로 인물을 상상할 수 있도록 나둬야 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인생이 내게 보여 주는 모든 사실들 사이엔 그 의존 관계가 하도 미묘해서, 전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그 어느 한 사실을 고칠 수 없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 지금까지 문학에서는 일종의 비극성 같은 것이 거의 벗어난 것처럼 여겨진다. 소설은 운명의 난관, 행운, 또는 불운, 사회관계, 정욕의 갈등, 사람들의 성격 따위를 다루었지만 인간의 본질 자체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질 않았다.
* 우리들이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됐어. 그것은 말하자면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끈이란 말일세. 그리고 그 끈을 잡아당기는 건 하느님이지.
* 프로피탕디외 씨는 베르나르가 나에게 오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을 납득할 수 없었고, 아직까지 납득할 수 없는 까닭에 처음엔 내게 편견을 품었노라고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젊은이들이란." 하고 프로피탕디외 씨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떠한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인생으로 뛰어나갑니다. 물론 위험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겠지요."
* "하느님은 쥐를 괴롭히는 고양이처럼 우리를 농락해······ 그러고선 자기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해. 무엇을 감사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그러고는 내게로 몸을 구부리며 말했다. "그리고 하느님이 하신 것 중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알겠나······! 그것은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했다는 걸세. 자기 아들을! 자기 아들을······! 잔인함, 이것이 하느님의 제일가는 속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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