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12번.
'매우 짧은' 스무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에즈라 파운드로부터 "박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형용사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헤밍웨이의 문체는 짧고 간결합니다. 헤밍웨이는 형용사의 사용을 절제한 압축적인 단문을 즐겨 사용합니다. 이는 스티븐 킹이 말한 "지옥에 이르는 길은 형용사로 포장되어 있다." 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 킬리만자로의 눈 】 - 해리는 부유한 부인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작가입니다. 우연히 생긴 상처로 인해 죽음에 임박하자, 환락을 좇느라 작가로서 태만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회의하게 됩니다.
* 킬리만자로는 해발 6000미터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서쪽 정상은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부른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는 바짝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다.
* 그는 확실히 파악한 뒤 훌륭하게 쓰고 싶은 생각에 안 쓰고 아껴 두었던 작품들을 이제는 영원히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써 보려다가 실패하는 일도 없겠지. 어쩌면 이제는 그 작품들을 끝내 못 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미처 시작하지도 못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에 와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여태까지 노름으로 낭비한 모든 시간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글 한 줄 써 본 일이 없었다.
* "난 뭐든 남겨 두고 가긴 싫어. 그 무엇도 남기고 가기 싫다고." 그가 내뱉었다. (···)그에겐 얘기할 만한 진실이 별로 없었다. 그는 마음껏 삶을 즐겼고 이제는 그것도 끝나 버렸다.
*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안일만을 추구하며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그런 인간이 되어 보낸 하루하루의 생활은 그의 재능을 우둔하게 만들었고 집필에 대한 의욕마저 약화시켰다. 그래서 결국 그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 그가 자신의 재능을 망치고 만 것은 그 재능을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배신했기 때문이며, 지각의 칼날이 무디어질 정도로 술을 과하게 마셨기 때문이고, 나태와 안일과 속물근성 때문이고, 교만과 편견과 그 밖의 여러 방법 때문이 아닌가?
* 그 생각은 갑자기 떠올랐다. 물이 세차게 흐르거나 바람이 불어닥치듯 그렇게 온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공허감처럼 갑자기 내습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야릇하게도 하이에나가 그 공허감의 한 끝자락을 따라 미끄러지듯이 가볍게 스쳐 가는 게 아닌가.
* 언젠가는 꼭 쓸 때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작품으로 쓸 것은 참으로 많았다. 그는 이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사건도 많이 보고 사람들도 관찰해 왔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의 미묘한 변화를 읽었던 것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현장에 있었고 그것을 관찰해 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그의 의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에 대해 영원히 쓰지 못할 것이다.
* 이제 그는 죽음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나 두려워했던 것은 단 한 가지, 고통뿐이다. 고통이 너무 오래 계속되어 그를 나가떨어지게 하기 전까지는 누구 못지않게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무엇인가가 몹시 고통을 주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무너지리라고 느낀 바로 그 순간 고통이 갑자기 멎어 버렸다.
* 비행기의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는데, 비가 굉장히 많이 쏟아져 마치 폭포 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곳을 빠져나오자 콤프턴은 뒤를 돌아보면서 싱긋 웃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전 세계처럼 폭이 넓은 데다 거대하고 높이 솟아 있으며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하얗게 반짝이는 킬리만자로의 네모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지금 가는 곳 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바로 그때 하이에나가 밤이면 내던 그 컹컹거리는 울음소리를 그치고 인간이 우는 듯한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해리! 제발. 오, 해리!"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고 숨을 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텐트 밖에서는 하이에나가 그녀의 잠을 깨울 때와 똑같이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 도박사와 수녀와 라디오 】 - 병실의 환자들은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맘껏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엑스레이 기계를 사용하는 시간이면 하나의 방송밖에 들을 수 없게 되자 아쉬워합니다.
*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음악은 민중의 아편이다. 술을 마시면 머리 위로 올라온다는 그 사내는 그것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경제학이 민중의 아편이다. (···)음주야말로 최고의 아편, 아, 아주 훌륭한 아편이다. 어떤 사람은 라디오를 선호하지만 그것도 민중의 아편, 그가 최근 이용해 온 싸구려 아편이다. 이런 것들과 함께 도박도 역시 민중의 아편이다. (···) 야심도 또 다른 민중의 아편이다.
* 우리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지배, 언제나 작은 정부이다. (···)우리는 자유를 믿었다. 하지만 진정한 민중의 아편이란 과연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실제적이고 참다운 민중의 아편이란 말인가?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당연히 빵이다. 빵이야말로 민중의 아편이었다. 그가 그 사실을 기억하고, 그 말이 어떤 경우에도 의미가 통할 수 있을까?
* 혁명은 아편이 아니지, 하고 프레이저 씨는 생각했다. 혁명은 배설 행위야. 압제의 힘이 나오고는 오래 끌 수 없는 도취감에 불과하지. 아편이란 혁명의 앞과 그 뒤에 사용하는 것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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