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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2시간전

내 첫사랑은 정말로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 <첫사랑>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80번.

 







    "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보다도 강하다.  우리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인생을 버티어나가며  전진을 계속하는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말입니다.  창작을 해왔지만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했던 작가는 비평가 벨린스키의 호평에 힘입어 본격적인 창작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흑백 논리가 난무하는 러시아의 지적 풍토에 환멸을 느껴 생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게 됩니다.  



【 첫사랑 】 - 트루게네프의 자전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지나이다라는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 페트로비치는 아버지가 그녀의 연인임을 알게 된 후,  첫사랑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  "내  첫사랑은 정말로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는 약간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원한다면 생각나는 것들을 모두 수첩에 적었다가 읽도록 하죠."










  *  아버지는 내게 친절하면서도 무관심했고,  (···)엄격하고,  냉정하고,  무관심했다······.  나는 그렇게 세련되게 침착하고,  자존심 강하고,  전제적인 남자를 본 일이 없다. 


  *  그 처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표정이 풍부한 활기찬 얼굴에서 빛나는 커다란 회색 눈동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 얼굴 전체가 갑자기 떨리면서 웃음을 띠었다.  하얀 이가 반짝 빛났고  눈썹은 약간 야릇하게 위로 치켜 올라갔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 쳤다.  나는 몹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즐겁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본 일이 없는 흥분을 느꼈던 것이다. 


  *  '나는 사랑에 빠졌나 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이 오싹해졌다.  지나이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어둠 속을 떠돌고 있었다.  그 입술은 여전히 뜻 모를 미소를 머금었고,  그 눈은 무엇을 묻고 싶은 듯,  깊은 생각에 잠겨 상냥하게 약간 옆으로 비스듬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나는 아버지가 나나 가정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다른 것을 사랑했고,  그 다른 것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   "할 수 있는 건 네 스스로  취해라.  딴 사람 손에 자신을 맡기지 마라.  자신은 자신에게 속해 있어야만 해.  여기에 인생의 모든 것이 있는 거야."라고 아버지는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아버지는 우선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  나의 '열정'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부터 나의 고통도 시작되었다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이다가 없으면 슬픔에 빠지곤 했고,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그녀만을 골똘히 생각했다.  (···)억제할 수 없는 힘이 나를 자꾸 그녀에게로 끌고 갔다. 


  *  나의 진짜 괴로움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지나이다는 점점 더 이상스럽게,  점점 더 알 수 없게 변해 갔다.  어느 날 내가 그녀의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녀는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의자에 걸터앉아서 뾰족한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틀어박고는 눈물로 온통 뒤범벅되어 있었다. 










 *  지나이다는 나를 피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녀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면서 멀리서나마 은근히 그녀를 감시하려고 했다. 


  *  "당신들은 모두 고상하고 현명하고 또 부유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에워싸고 내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 모두 내 발밑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난 당신들을 지배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기 분수 옆에서,  물보라가 치는 분수 옆에서 내가 사랑하고 날 지배하는 사람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어요.  그 사람은 화려한 옷도 입지 않았고,  보석도 지니고 있지 않고,  아무도 그를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날 기다리며 내가 나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갈겁니다."  지나이다는 입을 다물었다.   (···) '그 사람은 누굴까?'  이 한마디가 마치 어둠 속에 쓰여 있는 것처럼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것은 흡사 낮고 불길한 구름이 내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나는 전나무 밑까지 가서,  나무에 몸을 기대고 망을 보기 시작했다.  전날 밤과 같이 고요한 밤이었다.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오,  맙소사!  그건 내 아버지였다!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을 때,  그제서야 나는 몸을 펴고  '아버지는 왜 밤중에 정원을 거닐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  실패로 돌아간 그날 밤의 염탐 이후 일주일 동안 내 심경의 변화를 상세하게 말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상당한 곤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이상한 열병의 시간이었으며,  지극히 모순된 감정,  생각, 의혹, 희망, 기쁨과 번뇌가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일종의 혼돈 상태였다.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나는 그것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두려웠다. 


   * 모든 게 끝장났다.  나의 모든 꽃들은 일시에 꺾여 내 주변에 여기저기 내버려지고 짓밟힌 채 깔려 있었다.   (···)어째서 그 젊은 처녀가,  그것도 공작의 딸이라는 어엿한 신분을 가진 여자가,  아버지에게 가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당돌하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자기의 장래가 파멸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열정이라는 것이고, 헌신이라는 것이다.  


  *  루쉰이 말을 이었다.  "  기죽지는 말게.  중요한 건,  연정에 몸을 내맡기지 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거지.  열정에 휩쓸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물결에 휩쓸리면 어디로 가든지 늘 안 좋아. 인간이란 비록 바위 위에 서 있어도,  역시 자기 두 다리로 서 있어야 하는 거지."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그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야.'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지나이다를 만나야 할 운명이었다. 












*  아버지는 창턱에 가슴을 대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커튼으로 반쯤 몸을 가리고 앉아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지나이다였다.  (···) "당신은 떠나야만 해요······."  하는 말이 들렸다.  지나이다는 몸을 꼿꼿이 펴고 한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내 눈앞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프록코트의 앞깃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던 채찍을 느닷없이 들어 올렸다.  뒤이어 팔꿈치까지 드러난 그녀의 팔 위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채찍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나이다는 부르르 몸을 떨고는 말없이 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기 손을 천천히 입술로 가져가서 뻘겋게 달아오른 손에 난 채찍 자국에 입을 맞추었다.  


  *  "이것이 사랑인가 보다."  그날 밤 노트와 책들이 펼쳐 있는 책상 앞에 앉아서 나는 다시 이렇게 중얼거렸다.  (···)뇌졸중을 일으킨 바로 그날 아침에 아버지는 프랑스어로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내게 남겼다.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 귀족의 보금자리 】 -  아내에게 배신당한 후, 고향을 찾은 라브레츠키는 순결한 처녀 리자를 만나게 됩니다.  아내의 사망소식에 리자와의 사랑을 키워가던 어느 날,  죽었다던 아내가 나타나 용서를 구해옵니다.  이에 리자는 라브레츠키에게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   "일분일초도 쉬어서는 안 되네!"  미할레비치는 명령을 내리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일초도 안 돼!  죽음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삶도 기다려서는 안 되지.  (···)우리는 잠자고 있는데 시간은 흘러가네.  우리는 잠자고 있는데······."


  *  "난······  난······   당신을 사랑하오."   그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말했다.   (···)그녀는 마치 무엇에 쏘이기라도 한 듯이 다시 한번 몸을 흠칫 떨고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게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어요."   "그러나 당신은 날 사랑하죠,  리자?  우린 행복할까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조용히 그녀를 끌어당겼다. 


  *  그녀는 환희에 차서 오직 신만을 소심하고 정겹게 사랑했다.  라브레츠키는 그녀의 고요한 내면생활을 깨뜨린 첫 번째 사람이었다.   (···)다음 해 봄에 리자가 러시아의 오지 중 한 곳에 있는 B수도원에서 머리를 자르고 수녀가 되었다는 소식이 그에게까지 전해졌다.   












【 무무 】 -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인 게라심은 거인같은 체격으로 힘이 좋은 성실한 농노입니다.  강에 빠진 무무와 한 가족이 되지만 여주인은 무무가 자기를 따르지 않자 내다버리라고 지시합니다. 


  *  그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강아지를 무무라고 불렀다.  무무는 몹시 영리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지만  게라심만을 좋아했다.  게라심도 무무에게 홀딱 반했다. 


  *  그는 억센 두 손을 무무의 등에 포갠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쪽배는 파도에 밀려 조금씩 도시 쪽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게라심은 몸을 쭉 펴고는 어떤 병적인 분노의 표정으로 자기가 가져온 벽돌을 노끈으로 서둘러 묶고,  올가미를 만들어서 무무의 목에 걸로 무무를 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무를 바라보았다.  무무는 무서워하지 않고 신뢰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은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게라심은 얼굴을 돌리고 나서 실눈을 뜨고는 두 손을 폈다······.  게라심은 물에 떨어지면서 무무가 낸 날카로운 비명 소리도,  '철썩'하고 튀어 오른 둔탁한 물소리도,  다른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장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 것이다.  


  *  게라심은 자기의 외딴 농가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이웃 사람들은 그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절대로 여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심지어 여자들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자기 집에서 한 마리의 개도 기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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