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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Aug 14. 2024

그 은괴를 치워 버려 홀가분합니다 - <노스트로모2>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415번. 







   조지프 콘레드는 이십여 년간의 선원 생활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은광과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패권 다툼속에서, 사리사욕없이 이념을 추구하는 인물들의 이상주의는 잔혹한 물질주의 세력에 맞서 실패하고 맙니다.  '역사적 흐름의 원동력은 물질적 이익의 추구이다'라는 소설의 핵심축은, 앞으로의 역사도 이익 추구에 따라 가차 없이 전개되리라는 사실을 예고해줍니다.



 << 작가의 시선 >> - 은괴를 숨기는데 성공한 노스트로모는 자신이 도구로 이용되고 배신당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은괴에 충성을 다하는 인물로 변해가다 결국 보물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  한줄기 바람이 일더니 부서진 요새의 둑에 자란 덤불을 와삭와삭 흔들고 사라졌다.  열네 시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노스트로모가,  누워 있던 긴 수풀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삭거리며 물결치는 풀 속에 무릎까지 빠진 채 서 있는 그는 방금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잘생기고 건장하며 유연한 몸으로 머리를 뒤로 젖힌 채 팔을 쭉 뻗고 허리를 서서히 비틀어 기지개를 켜더니 그는 으르렁거리듯 흰 이를 드러내며 여유롭게 하품했다. 












 *  노스트로모에게 있어서 그것은 꾸밈없는  허영심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허영심이 그의 대담함과 근면함, 독창적인 재주를 이끌어 냈다.  (···)노스트로모가 술라코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그의 허영심에 완벽하게 들어맞았고,  그 자체로는 더할 나위 없이 진심 어린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폐허가 된 요새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독수리 말고는 아무도 없이 홀로 눈을 뜨는 것에는 그런 요소가 없었다. 


  *  그가 그들의 정치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여기도 노스트로모, 저기도 노스트로모, 노스트로모가 어디 있지?  노스트로모는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는데······  낮에는 온종일 일하고 밤에는 말을 달리고)이 끝나고 나니 보라!   (···)그는 배신당한 것이다!  (···) 노스트로모는 다시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가만히 섰다. 그는 가야 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까? 











*  배신이라는 단어가 지적이지 못한 노스트로모의 마음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어두워서 무한히 확대되어 보이는 드넓은 평원은 깊은 고립감을 더욱 절감하게 했다.  그의 걸음이 느려졌다.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누구도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거나 바라는 사람도 없었다.  "배신당했어!  배신당했다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물에 빠져 죽었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  광채 잃은 눈으로 바닥판자를 응시하고 있는 술라코의 부두 노동자 십장은 작은 보트에서 일몰 시간을 한가롭게 보내려고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익사체 같았다.  위험천만한 질주의 흥분과 늦지 않게 돌아오려고 기를 쓰며 느꼈던 흥분, 성취와 성공의 흥분, 그 엄청난 보물과 그 소재를 아는 다른 남자와 관련된 생각에 집중되었던 온갖 흥분이 그에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바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어떻게 해야 지체 없이 들키지 않고 큰이사벨섬에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짰다.  (···)마침내 뱃머리가 해안에 닿았다. 그는 보트를 작은 모래사장으로 끌어 올렸다.  아니,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즉시 석양빛을 뒤로한 채 긴 걸음으로 성큼성큼 협곡으로 뛰어들었다. 












*  드쿠는  (···)주저 없이 상자 가죽을 찢어 은괴 네 개를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노출된 상자를 다시 덮고 한 발씩 옮겨 골짜기를 벗어났다.  (···)사흘째 되던 날에 그는 어디론가 노를 저어 떠날 생각으로 보트를 물가에 끌어다 놓았다.  하지만 노스트로모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이 남아 속삭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만두었다. 이제 보트를 조금 밀기만 하면 물에 띄울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노 젓는 곳에서 뱃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손이 허리를 더듬어 가죽 케이스의 단추를 열고 권총을 꺼내 공이치기를 당기고 그것을 가슴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동안, 그리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아직 연기가 피어로르는 무기를 공중에 내던지는 동안,  그의 눈은 뚫어질 듯이 정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장이 어떻게 죽었을지 궁금하군.; 그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 


  *  노스트로모는 자기가 저지른 일을 잘 알았다. 이 저주받은 보물 때문에 처음에는 한 여자를, 다음에는 한 남자를, 마지막 극한 상황에서 저버린 것이다.  이 보물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과 사라진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두려움으로 멍하니 정지된 그의 마음에 이어 엄청난 자만심이 돌풍처럼 몰아쳤다.  이 세상에 그런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은  (···)부패할 수 없는 충실한 노스트로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흥정한 물건을 그 무엇에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노스트로모는 서서히 부자가 되고 있었다.  신중하게 처신한 결과였다.  그는 평정을 잃었을 때도 자신을 제어할 수 있었다.  완전한 자의식을 갖고 보물의 노예가 되는 것은 지극히 드물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다.  대개는 보물을 쉽게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보물을 조금씩 서서히 섬에서 꺼내 오는 일만 해도 즉시 발각될 위험관 난관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원으로 남들에게 알려진 연안 항해에 나서는 사이에 몰래 큰이사벨섬을 찾아 가야 했다. 


  *  부자들은 하층민에게 훔쳐서 재산을 만들지만 그는 부자들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았다.  그들이 어리석음과 배신으로 이미 잃은 것 말고는 아무 것도.  


  *  "그 보물이 어디 있어요?  어디예요?  말해 줘요."  (···)"그건 물으면 안 돼."  그는 노기 띤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누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는 자유를 되찾은 것이 아니었다.  (···)곧 흙냄새와 축축한 나뭇잎 냄새가 콧구멍을 간질이는 가운데 협곡을 기어갈 자신의 모습(가슴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확고한 목적을  갖고 기어들어갔다가 온갖 소리에 귀를 바짝 곤두세운 채 은을 갖고 다시 기어 나올)이 떠오르자 그의 내면에서 영혼이 죽어 버린 것 같았다. 바로 오늘 밤에 그 일을 해야 한다. 비겁한 노예의 일을!












<< 수석 기술자의 말 >> - 대대적인 은괴 운반작업의 관련자입니다.


  *  미첼 선장의 계산으로는,  그가 잘 알겠지요. 지금쯤 항구를 벗어나 5~6킬로미터쯤 갔을 거랍니다.  '노스트로모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줄 아는 선원'이라고 하더군요.  (···)산타마르타의 사람들은 그를  '술라코의 왕'이라고 부르잖아요?  성공을 알려 주는 가장 좋은 증거가 별명일 겁니다. 그건 진실의 몸에 농담의 얼굴을 올려놓은 거라고 말할 수 있죠.


  *  은괴 처리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미첼 선장은 그 일의 적격자는 당연히 노동자 감독뿐이라고 열렬히 피력했지요.  선원으로 보면 나도 그가 적격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인간으로 볼 때는 사실 누가 가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굴드와 드쿠와 나는 판단했어요.  보트를 젓는 법만 알면 누구든 괜찮았을 겁니다.  사실 도둑놈이라 해도 그 많은 은괴를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을 갖고 달아나더라도 결국 어딘가에는 상륙해야겠죠.  그러면 그 큰 짐을 해안 사람들에게 어떻게 숨길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 찰스 굴드의 말 >> - 산토메 광산의 주인으로 어떤 희생도 불사하고 광산을 지켜내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념에 불과했던 광산은 차츰 주물로 변하고, 결국 자신이 은광에 종속되고 맙니다.  


  *  자유주의자라!  잘 알려진 그런 단어들이 이 나라에서는 악몽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요.  자유, 민주주의,  애국심,  정부, 이런 단어들은 우행과 살육의 냄새를 풍깁니다.  그렇지 않소? 


  *  그 은괴는 사라졌고, 그래서 차라리 다행입니다.  은은 직접적이고 강력한 유혹이 됐을 테니까요.  눈에 보이는 전리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다가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왔겠지요.  나도 그것을 지켜야 했을 테고요.  그 은괴를 치워 버려 홀가분합니다.  비록 잃어버렸더라도 그것은 위험을 부르는 원인이지 저주가 되었을 거예요. 











<< 노스트로모의 말 >> -  '가장 유명하고 필사적인 위업'인 은괴를 숨기는 작업을 성공하기만 하면, 자신에 대한 칭송이 울려 퍼지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배신당했음을 알게 된 후, 보물의 행방을 숨긴 채 비밀리에 은괴를 조금씩 빼내 재산화시켜갑니다. 


  *  보물엔 사람 마음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뭔가가 있어.  그는 기도를 하고 저주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에 집착하고,  보물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날을 저주하겠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지막 시간이 닥쳐서 죽음이 코앞에 와도 보물이 떠오르겠지.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일단 보물이 마음에 달라붙으면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  그 은이 나를 죽였어요.  그것이 날 사로잡았어요.  아직도 날 사로잡고 있어요.  그것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당신들 모두 은을 잃어버린 줄 알았을 때 내가 돌아와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세요?  자, 충실한 노스트로모,  일어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게. 목숨을 걸고.


   *  부인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했죠.  하지만 재물에는 뭔가 저주 같은 것이 있어요.  부인,  그 보물이 어디 있는지 말해 드릴까요?  당신에게만······.  빛나고!  썩을 수 없는!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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