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16번.
버지니아 울프는 13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언니와 오빠, 아버지까지 잃게 됩니다. 그때마다 죽음과 소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정신 질환을 앓게 되고, 죽음이 작품의 중심 테마로 등장합니다. 산문을 시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 이 작품은 여러 인물들의 생각과 대화가 의식의 흐름대로 어우러져가며, '죽음이 가져올 소멸과 삶의 의미'라는 실존적 물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램지 부인은 등대에 가고 싶어하는 막내 제임스를 낙심시켜버리는 남편을 대신해 희망적인 대답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감정적인 피로에 시달리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십년 후 폐허가 된 별장을 찾은 램지와 아이들이 등대원정에 나서게 됩니다.
* 존재의 결, 그 속으로 뒤얽혀 들어가는 분쟁과 분열, 이견, 편견 들. 아, 그런 것들이 이렇게나 일찍부터 싹트다니. 램지 부인은 탄식했다. (···)그러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서로 다른데, 그런데도 차이를 더 만들어 내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 같았다. 지금 존재하는 차이들만으로도 차고 넘칠 지경이라고 그녀는 응접실 창가에 서서 생각했다.
* 그녀의 소박한 마음은 영리한 사람들이 왜곡한 것을 꿰뚫어 보았다. 정직한 마음으로 그녀는 돌처럼 수직으로 떨어졌고 새처럼 정확히 내려앉았다. 이처럼 정신이 급강하하여 당연히 진실에 닿았고, 그 진실 덕에 즐겁고 편안하게 버텨 나갈 수 있었다.
* 한쪽에는 초인적인 힘으로 차분히 인내심을 발휘하여 알파벳 전체를 순서대로, 모두 다해 스물여섯 철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재능과 영감이 있는 사람들이 철자들을 모두 한 덩어리로 단번에 취급했고 이것이 천재의 방식이었다. 그에게는 천재적인 재능이 없었다. 그는 천재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A부터 Z까지 알파벳의 모든 철자를 정확하게 순서대로 되풀이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아니, 아마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Q에서 옴짝달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R을 향하여 계속 전진. (···)10억 명 가운데 결국 Z에 도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는 생각했다.
* 셰익스피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오늘날과 많이 달라졌을까? 그는 물었다. 문명의 진보는 위대한 사람들에게 달려 있는 걸까? 오늘날 평범한 인간의 운명이 과연 문명의 척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걸까?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이 평범한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예술은 삶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 램지 부인이 제임스와 창가에 앉아 있고 구름이 흘러가고 나뭇가지가 휘는 것을 보면서 릴리는, 삶이란 사람들이 제각기 겪는 사소한 사건들로 이루어졌지만, 물결과 더불어 사람을 들어 올렸다가 해안에 부딪혀 함께 내던져지는 파도처럼, 소용돌이치는 그 사건들이 전체를 이룬다는 것 또한 느꼈다.
* 그녀는 삶을 바라보았다. 아이들과도, 남편과도 나누지 않은 실재하는 어떤 것, 은밀한 어떤 것이 있음을 분명히 느꼈으니까. 한쪽 편에 놓인 그녀와 다른 쪽에 있는 삶 사이에서 일종의 거래가 진행되었고, 삶이 그녀를 이기려고 했듯이 그녀도 늘 삶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이따금 그녀는 삶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너희들 모두 겪을 일이란다. 여덟 아이에게 그녀는 무자비하게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앞에 무엇이 있는지(사랑과 야심, 비참한 곳에서 홀로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를 알았기에 그녀는 종종 느끼곤 했다.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나서 그 모든 것을 잃어야 할까? 그러다가 그녀는 삶에 맞서 칼을 휘두르며 허튼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 아이가 물을 것이다 "우리 등대에 가요?" 그리고 그녀가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 내일은 아니야. 아버지께서 아니라고 하신단다." (···)아이가 내일 등대에 가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가 그것을 평생 잊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그녀는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고 홀로 있을 수 있었다. (···)모든 존재와 행위가 팽창하면서 반짝이고 시끌벅적하다가 흩어져 버린다. 그러면 사람은 엄숙함을 느끼며 오그라들어 본연의 자신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쐐기 모양 어둠의 응어리가 된다. 그녀는 똑바로 앉아서 계속 뜨개질을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느꼈다. 밀착되어 있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 이 자아는 더없이 자유롭게 기이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삶이 잠시 침잠할 때, 경험의 영역은 무한히 넓어 보였다. 그리고 누구가 이처럼 무한한 원천을 늘 느끼는 법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세상은 아무리 비열한 배반도 능히 저지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도 알았다. 어떤 행복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 사람은 늘 이러저러한 사소한 것들, 어떤 소리나 어떤 광경을 포착함으로써 마지못해 스스로 고독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램지 부인은 늘 느꼈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지만 사방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들리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 문학이나 그 밖의 어떤 것에서든 무엇이 영원히 존속할 수 있을지 과연 누가 알 수 있겠소? "우리가 지금 즐기는 것을 즐기도록 합시다." 윌리엄이 말했다. 그의 고결한 성품은 램지 부인에게 실로 경탄스러웠다. 한순간도 그는 '이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줄까?' 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대한 인물, 위대한 책, 명성······. 누가 알 수 있겠는가?
* 그리하여 등불이 모두 꺼졌고, 달이 졌고, 가느다란 빗줄기가 지붕을 톡톡 두드리면서 거대한 암흑이 억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무엇도 밀려 들어와 넘쳐흐르는 어둠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없을 듯했다. (···)등대에서 되는대로 들어온 불빛이 층계와 깔개 위에 남긴 어슴푸레한 발자국에 이끌려 그 실바람은 층계를 올라가서 침실 문 주위를 살피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분명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다른 것이 모두 썩어 없어지고 사라지더라도, 여기 놓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 램지 씨는 어느 어둑한 날 아침에 비틀거리며 복도를 따라 걷다가 양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가 팔을 내민 전날 밤에 램지 부인이 다소 갑작스레 죽었기에, 그의 팔은 텅 빈 채로 남고 말았다. 그래서 그 집은 비었고, (···)이미 물때가 끼고 변색되고 금이 간 스튜 냄비와 도자기를 제외하고는 바람에 저항하는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삶이 떠나 버린 형상이었다.
* 자연은 인간이 추진한 것을 보완해 준 것일까? 인간이 시작한 일을 자연이 완성한 것일까? 변함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연은 인간의 불행을 바라보았고, 인간의 비열함을 너그럽게 봐주었고,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 그 집은 홀로 남았다. 그 집에서 인기척이 사라졌다. 생명이 떠난 후 마른 소금 알갱이로 채워지고 모래 언덕에 박힌 조개 껍데기처럼 남겨졌다. (···)램지 부인은 주었지. 주고, 주고, 또 주다가 그녀는 죽었고, 이 모든 것을 남겨 놓았어. 릴리는 램지 부인에게 정말로 화가 났다. (···)그녀는 죽었고, 여기 마흔네 살이나 먹은 릴리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거기 서서 그림을 그리는 체하고 있었다. 가장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을 가장하고 있었다. 모두 램지 부인의 잘못이었다. 그녀는 죽었다.
* 왜 느끼지도 않는 감정을 끌어내려고 늘 애써야 할까?
*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든 램지 부인, (···)삶은 여기에 정지해 있다고 램지 부인이 말했다.
* 아름다움에는 이런 형벌이 있다. 아름다움은 너무 쉽사리 다가오고, 송두리째 고스란히 다가온다. 그것은 삶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얼어붙게 한다. 붉게 물들거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빛, 기묘한 찡그림, 스쳐 가는 빛이나 그림자 같은 동요된 기색은 잊히고 만다.
* '당신'과 '나' 그리고 '그녀'가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것. 그 무엇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암기할 순 없을까요? 안내자도, 피난처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고, 높은 뾰족탑에서 허공으로 뛰어드는 것에 불과할까요? (···)"램지 부인!"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램지 부인!"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 온 세상 모든 것이 정지한 듯했다. 등대는 꼼짝하지 않았고, 멀리 떨어진 해안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태양빛은 점점 뜨거워졌고, 모두들 더욱 가까워져서, 거의 잊었던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 같았다.
* 제임스는 등대를 바라보았다. 흰 도료를 칠한 바위들과 견고하게 곧추선 탑이 보였다. 탑에 그어진 검고 흰 줄무늬가 보였다. 그 안의 창문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말리려고 바위 위에 펼쳐 놓은 빨랫감도 볼 수 있었다. 그래, 저게 등대였다고? 아니, 다른 것도 등대였다. 어떤 사물도 한 가지에 불과한 건 아니니까. 그 다른 것도 등대였다. (···)그는 햇빛 속에서 등대를 응시하며 키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제임스는 바위 위에 서 있는 등대를 보면서 인생이 저 등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폭풍우 속에서 사람들이 익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더없이 단순한 일이다. 그리고 깊은 바다라 해도 결국 그저 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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