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19번.
귄터 그라스는 자신이 회원이었던 1947년의 '47그룹' 모임을, 300년 전인 1647년 '시인들의 만남'으로 허구적으로 풀어냅니다. 작가는 인간 문명이 현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그려냅니다. 타임지는 "짧은 길이에도 국가의 생사고락 속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심각하고 오래된 문제들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고 언급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산산조각난 조국을 '언어와 문학'으로 다시 한 번 결합해보고자 독일 각지에서 시인들이 텔크테로 몰려듭니다. 전쟁 통에 초라한 식사만 하던 이들은 어느 날 진수성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급료를 못 받은 공병들이 농가와 수녀원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었음이 밝혀집니다.
* 어제는 내일 있었던 바의 반복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최근에 일어난 이야기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30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다른 이야기들도 그렇다.
* 먼 길을 여행해 온 문사들이 잠을 충분히 자고 나서 또는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서 여관의 큰 홀에 모였을 때,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언어들을 그들은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독일어는 이렇게 불안정한 가운데에서 자유로웠다. 또 그들은 언어를 실제로 말하는 것보다 갖가지 언어 이론에 더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단 한 줄의 시도 시학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 글로 쓴 언어의 권능을 저버리는 이런 비관적인 연설은 곁에 서 있던 로가우를 자극하였다. 그래서 로가우는 막 인쇄에 들어가도 좋을 법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말하게 되었다. "구두장이가 빵 굽는 사람이 되려 했다간 가죽으로 된 빵이 구워져 나오는 법이렷다!"
* 그 당시의 모든 시인들이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은 (···)쉬츠라는 사람은 오직 자신의 원칙만을 끝까지 지켜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쉬츠는 각 어휘 하나하나에 엄격하였고, 그래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라틴어 기도문 아니면 루터의 성서 번역문만을 신뢰했다.
* "예술이 하느님의 순수한 언어를 따르려면 그만한 정교함은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앉아서 말하던 쉬츠는 벌떡 일어섰다.
* 첫 번째로 낭독한 사람이 리스트였기 때문에 그 선언문은 벽력같이 우르릉거리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국 독일은 바야흐로 완전히 피폐해졌고 군화에 유린되었으며 망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참나무'라는 뜻을 지녔다는 이곳 텔크테란 곳에 모인 우리 시인들은 우리의 온갖 힘을 다하여 독일과 외국의 군주들에게 우리의 의견을 간하고 그것을 진실로써 천명해 두고자 하는 바입니다······." (···)아직도 독일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 시인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시인들은 수많은 뜨거운 탄식과 비통한 상심을 해가며 민족의 마지막 끈으로서 독일어를 가꾸어왔습니다. 우리들이야말로 다른 독일, 진정한 독일인 것입니다."
* "우리들이 여기 이렇게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의 설왕설래를 듣고 있던 하인리히 쉬츠가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글로 적은 언어 때문입니다. 예술적 규준에 따라 이 언어를 구사할 은총을 입은 자는 오직 시인들뿐입니다."
* 지몬 다흐가 재빨리 말했다. (···)"시인들이란 원래 단 한 가지 힘을 제외하고는 아무 권력도 없는 존재이지요. 그 단 한 가지 힘이란 비록 쓸모는 없을지라도 올바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 그들 시인들은 평판과 명성을 탐하면서 서로 다투어 인간행위의 덧없음을 호사스러운 비유들로 표현하려 했다. 특히 젊은 시인들은 몇 행의 시구 속에 인생을 담아 성급한 결론을 내리곤 하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나이 많은 시인들도 역시 현세적인 것으로부터의 결별이라든지 현세적인 현혹으로부터의 개안 같은 것을 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 누구가 자기가 하느님과 더 가까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 이제는 자의식이 주조를 이룬 말투가 되면서 겔른하우젠이 말했다. (···)"선생님들은 오른손으로는 각자의 알량한 진실들을 적합한 운에 맞추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시를 지어내는 솜씨를 지니고 계시면서, 왼손은 왜 그렇게들 무감각하시지요? 무릇 시라는 거짓말은 출판업자가 그걸 책으로 찍어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진실이란 귀족 칭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까? (···)저는 항상 인생에서 나온 언어, 그리고 이 인생의 술통들에서 따라낸 언어를 구사하고자 합니다."
* 조국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가, 그런 조국이란 게 도대체 있긴 있는 것이며, 있다면 도대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인가? 이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마치 위안의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게르하르트가 말했다. "우리들 모두에게 지상의 조국은 없어요. 확실히 존재하는 건 오직 천상의 조국뿐입니다!"
* "독일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오직 우리들에게서만 영원성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모든 시는 그것이 생의 법칙에 따라 써진 우리들의 정신의 산물인 한에 있어서는 영겁의 일부로 동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흐의 연설은 이제 최고조에 달하여 (···)시의 영원성에 관한 말을 하면서 평화 호소문이 적혀 있는 그 두루마리를 높이 쳐들고는 그것에도 초시대적 영속성을 부여하려 하였다.
* 아무도 우리들의 대열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은 없었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그 17세기에 또 누군가가 우리들을 텔크테나 어떤 다른 장소에 소집한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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