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96번.
"소설이란 큰길가를 돌아다니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창공을 비춰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도로에 팬 수렁의 진흙을 비춰 보이기도 한다." 작가의 말입니다. 1830년 출판 당시 이 작품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 세계 각지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대귀족의 비서가 된 쥘리엥은 귀족의 딸 마틸드를 임신시켜 결혼을 허락받고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나 드 레날 부인이 그의 과거를 밝히는 바람에 그녀에게 총을 겨누게 됩니다.
* 코라소프 공이란 사람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상 남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라. 이것이 진정 이 시대의 유일한 종교인 것입니다. 열광과 허식을 버리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열광과 허식을 기대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계율을 완수할 수 없을 테니까요." (···)쥘리엥은 이제 댄디가 되어 있었고 파리 생활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 저것이 드 레날 부인이 내게 얘기해 주던 파리 여자들의 교태라는 것이겠지, 쥘리엥은 혼자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나 자연스럽고 순진했던가! 나는 그녀의 생각을 본인보다도 먼저 알 수 있었지. 생각이 떠오르려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까.
* 쥘리엥은 생각에 잠겼다. 저들은 우리보다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구나. 저들은 (···)또한 노상 먹고살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나는 얼마나 비참한 신세냐! 그는 씁쓸한 심정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나는 그런 고상한 문제를 생각해 볼 자격도 없는 것이다. 내게는 먹고 살 1,000프랑의 연 수입이 없기 때문에, 내 생활은 위선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다.
* 그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데에 놀랐다. 마침내 그는 이성의 힘을 빌려서라도 행복을 느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드 레날 부인 곁에서 때때로 맛볼 수 있었던 영혼의 즐거움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에는 전혀 다정한 맛이 없었다. 그것은 야심에서 나오는 강렬한 행복이었다. 지금 쥘리엥은 무엇보다도 야심에 차 있었다.
* 머리의 사랑이란 진정한 사랑 이상으로 재기 발랄할지는 모르지만 그 열광이란 순간적일 뿐이다. 머리의 사랑은 그 자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끊임없이 자아비판에 빠진다. 그 사랑은 이성이 흐려지기는커녕 이성의 힘 위에 구축된 것이다.
* 그는 자신의 모든 훌륭한 자질과 여태껏 자기가 열렬히 사랑했던 모든 것에 지독한 역겨움을 느꼈다. 이처럼 뒤집힌 상상력의 상태에서도 그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인생을 판단하려고 들었다. 이런 실수란 뛰어난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였다.
* 대체 그는 사랑에 빠져 있었던가? 알 수 없었다. (···)이전에는 야심이나 단순한 허영심의 만족으로 드 레날 부인이 불어넣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마틸드는 그를 온통 사로잡고 있었다.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미래의 도처에서 쥘리엥에게 떠오르는 것은 실패뿐이었다. 베리에르에서는 그처럼 자신만만하고 긍지에 차 있던 이 청년이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자기 비하에 빠져 있었다.
* 공작이 쥘리엥에게 말했다. (···)"슬픈 태도는 좋지 않아요. 권태로운 모습을 보여야지요. 당신이 슬픈 모습을 짓고 있으면 그건 뭔가 결핍된 것이 있거나 무슨 실패를 했다는 표시지요. 그건 자신의 열등감을 보이는 거예요. 반대로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건 당신보다 열등한 사람이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애썼으나 소용없다는 표시지요. 당신은 지금 중대한 착각을 하고 계신 겁니다."
* 쥘리엥에게 뛰어난 사무 처리 능력과 대담성과 나아가 눈부신 재능이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는 없지. 후작은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그자의 성격 밑바닥에는 뭔가 두려운 점이 있어. 모두들 그자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는 걸 보면 두려운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일 거야. (···)그는 고귀한 혈통에 대한 숭배심이 없어. 사실 그는 본능적으로 우리를 존경하지는 않거든······.
* 쥘리엥은 야심에 도취해 있을망정 허영심에 도취한 것은 아니었다.
* <가난하고 탐욕스러운 그 사람은 빈틈없는 위선을 이용하여, 약하고 불행한 여인을 유혹함으로써 어떤 신분과 지위를 얻고자 분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J씨는 어떠한 종교적 원칙도 갖고 있지 않다고 믿을 수밖에 없음을 덧붙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사방에 눈물이 번져 반쯤 지워지다시피 한 이 편지는 분명히 드 레날 부인의 필체로 쓰인 것이었다.
* 쥘리엥은 베리에르의 신축 교회로 들어갔다. 교회의 높은 창문들은 모두 진홍빛 커튼이 드리워 있었다. 쥘리엥은 드 레날 부인의 의자 몇 발짝 뒤에 가서 섰다. 부인은 열렬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첫 번째 탄환은 부인의 모자를 꿰뚫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려 하는데 두 번째 탄환이 발사되었다. 탄환은 그녀의 어깨에 맞았는데, 놀랍게도 어깨뼈를 부순 그 탄환이 다시 튀어서 고딕식 기둥에 맞아 큼직한 돌조각이 떨어졌다.
* 쥘리엥은 처음으로 몹시 불행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죽는다 라는 숙명적인 말에, 그가 품었던 야심의 희망이 하나하나 그의 가슴에서 뽑혀 나갔다. 그러나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전 생애는 불행을 향한 기나긴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그는 회한에 빠져 들었다. 왜 내가 회한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참혹하게 모욕당했다. 그래서 나는 죽였고, 나는 죽어 마땅한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나는 모든 인간에 대해 결산을 마친 다음에 죽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무도 수행하지 않고 남겨둔 것이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죽음의 도구만 빼놓고 내 죽음은 하등 부끄러울 것이 없다.
* 사실 그는 부인이 몹시도 그리웠다. 방에 혼자 남아서 아무 방해도 받을 염려가 없을 때면, 그는 전에 베리에르나 베르지에서 보냈던 행복한 날들의 추억에 오롯이 잠겨 이상한 행복감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너무나 빨리 흘러가버린 그 시절의 사소한 사건까지도 지금의 그에겐 신선하고 비할 데 없는 매력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 " '남들'이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남들'과의 관계는 머지않아 뚝 끊어져 버릴 텐데" (···)인생의 종말이 눈앞에 닥친 후에야 인생을 즐기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 "본인은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러나 내 죄가 좀 더 가벼운 것이었다 해도 사람들은 (···)나를 통해 나와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을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젊은이들 말입니다. 여러분, 그 점이 바로 본인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본인의 눈에는 배심원석의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모두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십 분 동안이나 쥘리엥은 이런 어조로 계속 얘기했다.
* "저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고 오직 당신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부인은 자기 무릎 아래 꿇어앉아 있는 쥘리엥에게 몸을 기댔다. (···) "당신을 보자마자 의무감은 모두 사라지고 당신에 대한 사랑만이 남는 거예요. 사랑이란 말은 오히려 너무 약한 것이겠지요. 저는 오직 하느님께만 느껴야 할 감정을 당신에게 느끼는 거예요. 존경과 사랑과 복종이 얽힌 감정을······."
* 나는 진실을 사랑했다······. 그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 도처에 위선이 있을 뿐, 적어도 허풍만이 난무할 뿐. 가장 덕성스럽다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위대하다는 인물들에게도 그렇다. 그의 입술에는 역겨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니, 인간은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 고립된 삶! ······얼마나 무서운 고통이냐! 이러다간 내가 미쳐서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쥘리엥은 손으로 제 이마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감방 안에 고립되어 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죽음이나 감방이나 축축한 공기가 아니라 드 레날 부인이 없는 것이다.
* 하루살이는 한 여름날 아침 9시에 태어나서 저녁 5시면 죽는다. 그 하루살이가 어찌 '밤'이란 말을 이해할 것인가? 그것에게 다섯 시간만 생명을 더 준다면 그것은 밤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이해할 것이다. 이처럼 나도 스물세 살에 죽는 것이다. 드 레날 부인과 함께 살기 위해 오 년만 더 생명이 주어진다면······.
* 지하 감옥의 나쁜 공기가 차츰 쥘리엥에게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쥘리엥의 사형 집행이 통고된 날에는 찬란한 햇빛이 만물에 즐겁게 내리쬐고 있었고 쥘리엥도 굳건한 용기가 솟았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끝났으며 쥘리엥은 아무런 가식 없이 최후를 마쳤다.
* 드 레날 부인은 쥘리엥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부인은 조금도 자신의 생명을 해치려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쥘리엥이 떠난 지 사흘 후, 드 레날 부인은 자기 아이들을 포옹하면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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