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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Nov 15. 2024

인생의 모든 만남에는 직감이 있다 -<레 미제라블2>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02번.










   저주받은 비천한 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지를 그려 낸 작품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삼십오 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 오던 이야기를 십칠 년에 걸쳐 완성해냅니다.  그리고 장 발장에 대해  "이 죄수는 예수로 변모하고 있었다."라고 언급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자신의 죄를 뒤집어 쓴 남자를 위해 자수를 한  장 발장은 선상 감옥에서 바다에 빠진 선원을 구해주고 유유히 탈출합니다.  코제트를 구출해내지만 자베르 때문에 필사의 도주 끝에 수도원으로 숨어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과거에 자신이 목숨을 구해 주었던 포슐르방 노인의 도움을 받아, 조수 정원사가 되고 코제트는 수녀원의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게 됩니다.   


  *  워털루 전투에 대한 명백한 관념을 얻고 싶으면 땅 위에 놓인 대문자 A를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A의 왼쪽 다리는 니벨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다리는 주나프로 가는 길이며,   (···)A의 두 다리와 가로줄로 이루어지는 삼각형이 몽생장 고원이다.  이 고원에서의 싸움이 전투의 전부였다.















   *  보나파르트가 워털루의 승리자가 되는 것,  그것은 더 이상 19세기의 법칙에는 없었다.  (···)워털루 전투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그것은 승리한 자들에게도 패배한 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워털루는 이류 장수에게 승리가 돌아간 일류의 전쟁이다. 


  *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내일'이라고 불러 보라.  '내일'은 억제할 수 없게 자신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바로 오늘부터 한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제 목적에 도달한다.   (···)워털루에서 오직 워털루에 있는 것만을 보자.  의도적인 자유는 조금도 없다. 반혁명은 본의 아니게 자유적인 것이 되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현상으로,  나폴레옹도 본의 아니게 혁명가가 되었다.  


  *  나폴레옹이 롱우드에서 죽어 가는 사이,  워털루 전장에 쓰러진 6만의 병사들은 조용히 썩어 갔고,  그들의 평화의 무엇인가가 세계에 퍼져 갔다.  빈 회의는 그것으로 1815년의 조약을 만들었고,  유럽은 그것을 복고(復古)라고 불렀다. 워털루란 그러한 것이다. 















 *  배 안에서 형옥의 노역을  치르고 있던 죄수 하나가  사고가 일어나자   (···)자기 발의 족쇄에 달린 쇠사슬을 쇠망치로 단번에 쳐서 부수고는 밧줄 하나를 집어 들고  돛대 줄로 올라갔다.  얼마나 쉽사리 그 족쇄가 부서졌는지는 그 순간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죄수는 한 손으로 줄에 매달린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선원을 같은 밧줄로 꽁꽁 동여맸다.  마침내 그는 다시 활대로 올라가 선원을 끌어 올렸다.   (···)갑자기 군중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죄수가 곧장 바다로 떨어진 것이다.  그 추락은 위험천만했다.


  *  이튿날 툴롱의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몇 줄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노역에 종사하던 한 죄수가 선원 한 명을 구조하고 돌아오다가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체는 해군 공창의 돌출부 말뚝들 아래로 들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사나이의 수감 번호는 9430호이고 이름은 장 발장이다.'
















*  코제트는 아내로부터는 몰매를 맞았고,  남편 때문에 겨울에 맨발로 걸어 다녔다.  코제트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빨래를 하고,  솔질을 하고, 쓸고, 닦고, 달음박질치고, 지쳐 빠져서  걸어 다니고,  헐레벌떡 거리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연약한 몸으로 허드렛일을 했다.  (···)사나운 안주인에 악독한 바깥주인.  테나르디에의 싸구려 식당은 코제트가 걸려서 떨고 있는 거미줄 같았다. 


  *  그녀는 앞으로 몸을 구부리고 고개를 수그린 채 늙은이처럼 걸아가고 있었는데, 물통의 무게는 그녀의 여윈 팔을 끌어당겨 뻣뻣하게 만들었고,  쇠 손잡이는 물에 젖은 그녀의 자그마한 손을 끝내 마비시키고 얼려 버렸다.  


  *   순간, 그녀는 갑자기 물통이 더 이상 전혀 무겁지 않은 것을 느꼈다. 엄청 커 보이는 손 하나가 물통의 손잡이를 잡아 힘차게 들어 올린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똑바로 선 커다란 검은 형체 하나가 어둠 속에서 그녀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것은 한 사나이였다.  (···)그 사나이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들고 있던 물통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던 것이다.  인생의 모든 만남에는 직감이 있다.  어린아이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  사나이는 술잔에 포도주를 따라 겨우 입술만  축이고는 이상하게도 어린아이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코제트는 못생겨 보였다.  행복했더라면 아마 예뻤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위고 파리했다. 여덟 살이 거의 다 되었으나 여섯 살도 채 못 되어 보였다.  깊숙한 그늘 속에 잠긴 듯한 그녀의 쑥 들어간 커다란 눈은 하도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라 거의 빛을 잃고 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라고는 구멍 뚫린 삼베뿐이고,  털 헝겊 조각 하나 없었다.  여기저기에 살이 드러나 보이고,  도처에 검푸른 멍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테나르디에의 아내한테 맞은 자국이었다. 


  *  두려움은 그녀의 온몸에 퍼져 있었다.  말하자면 두려움으로 덮여 있었다.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양쪽 팔꿈치를 허리에 붙이고,  발꿈치를 치맛자락 속으로 오그려 넣고,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자그맣게 웅크리고,  (···)두려움이 어찌나  컸든지 코제트는 돌아왔을 때,  옷이 흠뻑 젖어 있었지만 차마 불에 가서 말리지도 못하고 그냥 아무 말 없이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  소녀는 극도의 강자와 극도의 약자에게밖에는 없는 저 태연한 믿음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자고 있었다.  장 발장은 몸을 구부리고 그 아이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아홉 달 전에 그의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추었는데 그녀 역시 막 잠들어 있었다.  그때와 같은 애절하고,  경건하고, 침통한 생각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  장 발장은 일찍이 아무것도 사랑해 본 일이 없었다.  이십오 년  전부터 그는 이 세상에서 외톨이였다.  한 번도 아버지나, 애인이나,  남편이나,  친구가 되어 본 적이 없었다.  형무소에서 그는 악하고, 침울하고, 순결하고, 무식하고, 사나웠다.  이 늙은 죄수의 마음은 순진무구했다. 


  *  코제트를 보았을 때, 그녀를 잡아 탈취하고 구출했을 때,  그는 자기의 오장육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속에 있던 모든 정열과 애정이 눈을 떠 이 아이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그녀가 자고 있는 침대 옆에 가서 기쁨에 떨었고, 어머니 같은 심중의 소용돌이를 느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시작하는 저 커다랗고 야릇한 마음의 움직임은 매우 막연하고 매우 부드러운 것이니까. 















 *  자연은 오십 년의 차이를 두고 장 발장과 코제트 사이에 깊은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간격을 운명은 메워 버렸다.  운명은 나이로는 다르지만 불행으로는 비슷한 이 뿌리 뽑힌 두 사람을 갑자기 맺어 주고, 그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묶어 주었다.   (···)코제트의 본능은 하나의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마치 장 발장의 본능이 하나의 어린아이를 찾고 있었듯이. 서로 만나는 것,  그것은 서로 발견하는 것이었다.


  *  코제트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그녀를 놀게 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장 발장의 생활의  거의 전부였다.  게다가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 주고, 기도를 드리게 했다.  코제트는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다른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  코제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걸었다.  (···)그녀는 노인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장 발장 자신도 코제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코제트가 자기에게 몸을 맡기고 있듯이,  그는 하느님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자기 역시 자기보다 위대한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자기를 이끌어 가는 것을 느낀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뚜렷한 생각도, 아무런 계획도, 아무런 복안도 없었다.








 









*  "한마디도 말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  하고 장 발장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땅에서 끌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그녀는 벽 위에 올라와 있었다.  장 발장은 그녀를 붙들어 등에 업고, 그녀의 조그만 두 손을 왼 손으로 붙잡고, 납작 엎드려 잘린 벽면까지 담장 위를 기어갔다.   (···)장 발장은 코제트를 떠받치면서 지붕을 타고 미끄러져 보리수에 다다라 땅바닥에 뛰어내렸다. 무서웠는지, 기운을 냈는지, 코제트는 숨도 쉬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은 살갗이 좀 벗겨져 있었다. 


  *  어린아이는 돌에 머리를 올려놓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 옆에 앉아서 그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들여다보는 동안 그는 차차 마음이 가라앉아 정신의 자유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부터는 자기 생활의 근본인 다음과 같은 진실을 똑똑히 깨닫고 있었다.  즉 코제트가 거기에 있는 한,  이 아이를 자기 곁에 가지고 있는 한,  자기는 이 아이를 위해서밖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고,  이 아이 때문에밖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그녀를 덮어 주기 위해 프록코트를 벗었으나,  매우 춥다는 것을 느끼지도 않았다. 


















 *  코제트는 수녀원에서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코제트는 당연히 자기가 장 발장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꽤 빨리 수녀원에 익숙해졌다.  다만 인형 카트린을 그리워했으나,  차마 그것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한 번 장 발장에게 말했다.  "아버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걸 가져올 걸 그랬어요."


  *  늘 말없이 들어박혀 있는 것은 장 발장으로서는 잘 한 일이었다. 자베르가 그 지구 일대를 꼬박 한 달도 넘게 감시했다. 이 수도원은 장 발장에게는 심연에 에워싸인 섬 같은 것이었다.   (···)거기서 그는 심신이 상쾌할 정도로는 충분히 하늘을 볼 수 있었고,  행복감을 느낄 정도로는 충분히 코제트를 볼 수 있었다. 


  *  휴식 시간에 장 발장은 코제트가 뛰어다니며 노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다른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도 그 아이의 웃음소리를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이제 코제트는 웃고 있었으니까.  코제트의 얼굴은 그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변해 있었다.  음울한 빛은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져 버렸다.  웃음,  그것은 태양,  그것은 인간의 얼굴에서 겨울을 쫓아 버린다
















  *  신은 자기의 길을 가지고 있다.   (···)자기를 주교하고만 비교했던 동안에는 그는 자기가 비천하다고 느꼈고  그는 겸손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자기를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교만이 싹텄다.   누가 알랴?  그는 아마 마침내 아주 서서히 증오심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수녀원은 그를 그 비탈 위에 멈추어 세웠다.  수녀원은 그가 보는 두 번째 유폐 장소였다. 


  *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해 온갖 것을 반성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여러 번 울었다. 최근 여섯 달 동안 그의 삶 속에 들어왔던 모든 것은 그를 주교의 거룩한 명령 쪽으로 돌아가게 했다.  코제트는 사랑에 의하여, 수도원은 겸양에 의하여.   


  *  그는 자기 일생의 두 위기에서 자기를 연이어 맞아들여 준 것은 천주의 두 집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범죄에 빠졌을 것이고, 두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형벌에 빠졌을 것이다.  (···)그의 온 마음은 감사로 누그러지고 그는 더욱더 사랑하고 있었다.   여러 해가 그렇게 흘러갔고,  코제트는 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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