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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Nov 19. 2024

행복은 한쪽에만 색칠된 낡은 틀이다​-<레 미제라블3>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03번.  










   '진정한 종교는 미움 받는 자를 사랑하고 타락한 자를 구하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종교 철학입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악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인간들 속에 신이 있기 때문에, 장 발장이 정화되어 가는 것도 신에 합치되려는 의지이고,  자신과 인류를 위한 속죄로 봅니다.    



<< 작가의 시선 >> - 질노르망은 딸이 죽자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위를 협박해 손자 마리우스를 빼앗아 키웁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진실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에게서 벗어나 빈민촌에서 살아가며 변호사가 되고, 어느 날 공원에서 코제트를 본 후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한편 테나르디에는 자선가 르블랑이 코제트를 빼앗아 간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감금해버립니다. 


  *  인생은 실물 장치가 별로 없는 무대 장식이다.  행복은 한쪽에만 색칠된 낡은 틀이다.














  *  그는 엘바 섬에 나폴레옹을 수행했다.  그는 워털루에서 뒤부아 여단 내 흉갑기병 중대장이었다.  (···)퐁메르시는 결코 그의 아들을 만나 보려고 하지도, 그에게 말을 해 보려고 하지도 않기로 명백히 합의했는데,  위반하면 그의 아들은 쫓겨나고 상속권을 박탈당한다는 것이었다.


  *  어린아이의 이름은 마리우스인데,  자기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도 그에 관해서 그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지만 외할아버지가 그를 데려가 주는 사교계에서 사람들의 귓속말,  암시, 눈짓 등은 결국 어린아이의 머릿속까지 뚫고 들어갔고, 그는 마침내 뭔가 알게 되었고,   (···)그는 드디어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면 점점 수치와 고통밖에 느끼지 않게 되었다. 


  *  대령은 두세 달마다 집에서 빠져나와,  (···)이모 질노르망이 마리우스를 미사에 데리고 오는 시간에 생 쉴피스 성당에 가서 숨어 있었다.  거기서 그는 아이의 이모가 돌아보지나 않을까 하여, 기둥 뒤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서  어린아이를 바라보곤 했다.   (···)사제와 집사는 자초지종을 알았고,  퐁메르시가 아들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자기의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가를 알기에 이르렀다.














 *  마리우스는 몇 년간 중학교를 다녔고,  이어서 법률 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왕정주의자이고, 광신자이고, 근엄했다.   (···)마리우스는 그의 정치적 반감이라는 이유 외에,  질노르망 씨가 기분이 누그러졌을 때 하던 말마따나,  저돌적인 무사인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기를 이렇게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두었으니까.  자기가 조금도 사랑을 받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으므로,  그는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 


   *  대령은 사흘 전 뇌염에 걸렸다.  발병 초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는 질노르망 씨에게 아들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했다.   (···)마리우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그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늠름하고 존경할 만한 얼굴,  그 보지 않는 열린 두 눈,  그 하얀 머리,  그 실팍진 팔다리,  거기에 군도 자국인 검붉은 줄들과 총알 구멍인 붉은 별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에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  대령의 유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녀는 종잇조각 하나를 발견하여 마리우스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대령의 필적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내 아들을 위하여.  황제는 워털루의 싸움터에서 나를 남작에 봉하셨다.  복고 정부는 내가 피 흘려 얻은 이 작위를 나에게 인정하지 않으니까,  내 아들이 그것을 취하여 사용하라.  내 아들이 이것을 받아 마땅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노인은 말을 이었다.   (···)"그들은 만약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만나면 상속권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했지요.  그는 자기 아들이 훗날 부자가 되고 행복하게 되도록 자기를 희생했습니다.  정치적인 의견 때문에 그 부자간을 갈라 놓고 있었던 겁니다.   (···)한 남자가 워털루에 나갔다고 해서 악마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부자간을 갈라 놓을 수는 결코 없는 거지요!  그분은 보나파르트의 대령이었습니다."


  *  마리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열렬히 사랑하는 중이었다.  동시에 비상한 변화 하나가 그의 사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공화국이니 제국이니 하는 것은 그에게는 여태까지 끔찍스러운 말들에 지나지 않았다.  공화국은 황혼 속의 단두대였고, 제국은 암야 속의 군도였다.  그는 이제 막 그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암흑의 혼돈밖에 발견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던 곳에,  그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과 기쁨이 섞인 일종의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을 느꼈다.   (···)그는 이때까지 자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자기의 조국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열쇠를 가지고 있는 때처럼 모든 것이 열렸다.  그는 전에 미워했던 것을 이해했고, 싫어했던 것을 통찰했다.   (···)마리우스는 이마를 두 손으로 감싸고,  한 묘혈 위의 풀 속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꽃다발은 거기에 바쳐져 있었다.  (···)'육군 대령 남작 퐁메르시.'  마리우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   "우리 아버지는,"  하고 마리우스는 눈을 내리뜨고 엄숙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겸손하고 영웅적인 분이었습니다.  공화국과 프랑스에 영광스럽게 봉사하고,  인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역사 속의 위인이었으며,  이십오 년간을 야영 생활하고,  낮에는 포탄과 총화 속에서, 밤에는 눈과 진창, 비 속에서 싸웠으며,   (···)잊음과 버림 속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잘못이란 한 가지 뿐.  그것은 두 배은망덕자,  자기 나라와 저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  그가 할아버지를 욕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원수를 전혀 갚지 않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쪽에는 신성한 무덤이 있고,  또 한쪽에는 백발이 있었다.   (···)"부르봉 왕가를 타도하라!  그리고 저 누룩 돼지 루이 18세를!"  루이 18세는 4년 전에 죽었으나 그런 건 그에게 상관없었다. 
















 *  마리우스는 그때까지 고독했고, 습관과 취미에 의해 독백과 방백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므로,  자기 주위의 그 청년들의 무리에 약간 겁을 먹었다.  그 모든 다양한 창의들이 한꺼번에 그를 자극하고 끌어당겼다.   (···)그는 아버지의 의견을 위해 할아버지의 의견을 버림으로써 자기는 확고부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기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싶어서 불안스러웠으나,  차마 그렇다고 자인할 수도 없었다.  그가 모든 것을 보고 있던 각도는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  젊은 정신들끼리의 충돌은 참 놀라운 것이어서, 결코 불꽃을 예견하고 섬광을 짐작하지 못한다.  금세 무엇이 솟아오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감동하는가 하면 폭소가 터진다.  익살을 떠는 때에 진지한 태도가 들어온다.  


  *  마리우스는 음울했다.  그는 이제야 겨우 하나의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을 벌써 버려야만 했는가?  그는 아니라고 자신에게 단언했다.  그는 의심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으나 본의 아니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하나의 순수한 눈이어서, 그에게는 진짜의 빛이 필요했다.  의심의 흐릿한 빛은 그를 아프게 했다.   (···)할아버지가 그를 쫓아냈던 날 그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성인이었다.  그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  돈 많은 젊은이는 오만 가지 화려하고 육체적인 오락들을 즐긴다.  (···)가난한 젊은이는 빵을 얻기 위해 고생한다.  그는 먹는다. 먹었을 때 그에게는 더 이상 명상밖에 없다.  그는 신이 주는 공짜 구경거리를 보러 간다.  그는 하늘을,  공간을,  별들을,  꽃들을, 어린애들을 보고,  그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인류를,  그 속에서 빛나고 있는 삼라만상을 본다.


  *  모든 정열은, 가슴의 정열을 제외하고는, 몽상 속에 사그라진다.  마리우스의 정치 열도 몽상 속에 사라져 버렸다.  1830년의 혁명은 그를 만족시키고 그를 진정시킴으로써 그것을 도왔다.  그는 분노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았다.  그의 의견은 다만 완화되었을 뿐이지 여전히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적절하게 말하자면, 그는 의견이 없었고,  그는 공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무슨 당파에 속했던가?  인류의 당에,  인류 중에서 그는 프랑스를 택하고,  국민 중에서 민중을 택하고···.


  *  질노르망 씨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자코뱅주의(파격 민주주의)가 어디로 끌고 가는지 좀 봐라.  나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백만금이라도 내기를 걸겠지만,  이런 데 나올 놈은 전과자나 석방된 죄수 들뿐이야.  공화당원과 복역수들은 썩 잘 어울리거든.  (···)너희들의 혁명은 범죄요, 너희들의 공화제는 괴물이라고."















  *  한 남자와 아주 어린 처녀 하나가 거의 언제나 웨스트 거리 쪽에,  가장 호젓한 통로 맨 끝의 늘 같은 벤치에 나란히 앚아 있는 것이 마리우스의 눈에 띄었다.   (···)이 아름다운 소녀는 자기에게 말하는 백발의 남자에게 귀를 기울이면서도 미소를 지었는데, 눈을 내리뜨고서 짓는 그 맑은 미소처럼 매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마리우스는 자연에 마음을 활짝 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 숨쉬면서, 그 벤치 옆을 지나갔는데,  처녀가 그를 향해 눈을 들어 그들의 두 시선이 마주쳤다.  이번에 처녀의 시선엔 무엇이 있었던가?  마리우스는 그것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거기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번갯불이었다.  그녀는 눈을 수그렸고,  그는 그의 길을 계속 갔다. (···)그의 연정은 커 갔다.  그는 밤마다 사랑의 꿈을 꾸었다.  


  *  르블랑 씨도 처녀도 다시는 뤽상부르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리우스는 그 정답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온갖 형상,  빛, 소리, 조언, 경치, 지평선, 교훈으로 그렇게도 가득 차 있던 광막한 자연이 이제 그의 앞에 텅 비어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  테나르디에는  (···)외쳤다.   "아! 난 드디어 당신을 찾아냈소, 자선가 양반!  꾀죄죄한 백만장자 양반!  인형 수여자 양반!   늙은 얼간이!  아,  당신은 잘 못 알아본다고!   암,  팔 년 전에,  1823년 크리스마스 날 저녁에,  몽페르메유의 내 여관에 온 건 당신이 아니었지.   우리 집에서 팡틴의 딸  '종달새'를 데려간 건 당신이 아니었지!   (···)백만장자님!  이걸 아시오.  나도 왕년에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영업 면허장이 있었고,  선거권이 있었고,  하나의 시민이었소,  나는!  그런데 당신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오, 당신은!"


  *  "자네들은 저놈 몸을 뒤져."   하고 테나르디에는 말을 이었다.  르블랑 씨는 저항하기를 단념한 것 같았다.  (···)악당들은 창에서 가장 멀고 벽난로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 다리에다,  두 발이 방바닥에 닿도록 그를 세워 놓고 꽁꽁 묶었다.  


  *  포로가 지켰던 침묵, 심지어 자기의 생명을 돌보기를 잊어 버리기까지 한 그 조심성,  고함을 지르는 것이 인간 본성의  첫 충동인데도 그러지 않은 그 참을성,   (···)절망적인 처지에서 비롯되는 놀람을 억제하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위기가 아무리 극도에 달했고,  파국이 아무리 불가피했더라도, 물 아래에서 무섭게 눈을 뜨는 익사자의 고통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  포로는 큰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오. 하지만 내 목숨은 그렇게 애써 지킬 만한 것이 못 되오."   (···)그는 팔을 뻗치고 오른손으로 나무 자루를 잡고 있던 작열하는 끌을 맨살에 올려놓았다.  지익 하며 살 타는 소리가 들이고, 고문실의 특유한 냄새가 빈민굴 안에 퍼졌다.  마리우스는 무서움에 넋을 잃고 비틀거렸고,  불한당들까지도 떨었고,  그 이상한 늙은이의 얼굴은 거의 실룩거리지도 않았으며,  그 새빨간 쇠가 연기를 내는 상처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동안,  그는 태연하고 거의 숭엄한 얼굴을 하고서, 증오의 빛도 없는 아름다운 눈으로 테나르디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서는 고통이 평온한 위엄 속에 스러지고 있었다. 


  *   "아니,  그 사람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하고 자베르는 물었다.  악한들의 포로인 르블랑 씨는,  위르뱅 파브르 씨는, 위르쉴 또는  '종달새'의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 하나가 창문으로 달려가서 보았다.  바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노끈 사다리는 아직도 흔들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하고 자베르는 입속으로 말했다.  "그게 제일 중요한 놈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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