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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Dec 06. 2024

그는 종양의 저편에 홀로 남겨졌다 - <암 병동1>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37번.









    솔제니친은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우리에게 권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호전되어 나가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아 병실을 떠나는 암 병동'은,  그것을 질문할 가장 적절한 공간이 되어줍니다.  죽음에 직면했음에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  작가의 시선  >> -  파벨 니콜라예비치 루사노프는  오른쪽 목에 종양이 부풀어 올라  암환자들이 있는 '제 13병동'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이전의 삶과는 단절된 채 지내는 다양한 계층의 암환자들과 만나, 그들의 지난 삶과 민간치료법,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  "형씨!  당신은 무슨 암이에요?"  그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그의 질문을 듣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애써 흥분을 감추고 그 무뢰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 암도 아니에요.  절대 암이 아닙니다."  















 *  "암이란 놈은 사람을 좋아하거든.  그놈은 누구든 한번 물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아."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대꾸할 힘이 없었다.   (···)단란하고 모범적인 가정,  모든 것이 안정된 생활,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아파트,  이 모든 것이 단 며칠 사이에  루사노프에게서 사라져 버렸고,  그는 종양의 저편에 홀로 남겨졌다.  아버지가 어떻게 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지금처럼 살게 되고,  또 살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가족들이 아무리 괴로워하며 걱정하고 눈물을 흘려도 종양이 벽처럼 그를 가로막아,  여기 홀로 남겨진 것이다. 

  *  그녀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와 앉으며 눈치 빠른 코스토글로토프에게 들킨  「방사선 후유증」이라는 원고 뭉치를 집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오늘 온종일 마음이 불안하고 꺼림칙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치료할 권리에 대해 그와 나눈 언쟁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치료가 두려워 완강히 거부했겠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확신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  사람들은 그저 죽어라 돈을 벌어 토요일이나 휴가 때면 몽땅 써 버리는 것이 전부였다.  암이나 불치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이런 인생도 썩 나쁘다고 볼 수는 없으며,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병에 걸리면 전문 지식도, 노련한 수단도,  직업도,  수입도 아무 소용 없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무력감에 빠지고 자기는 암이 아니라고 끝까지 자신을 속이는 것을 보면 그들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며,  무언가 놓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것이 무엇일까?

  *  인생은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다. 

  *  어찌 됐든 토요일 저녁이면 암 병동 환자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항상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요일이 된다고 갑자기 병이 낮는 것도 아니고,  병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의사의 진찰이나 힘든 치료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린애같은 천지니난만함이 잠재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 















  *  파벨 니콜라예비치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상대방을 몰아세웠다.  "레프 톨스토이와 그 일파가 주장한 도덕적 완성에 대해서는 이미 레닌이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스탈린 동지도,  고리키도!"    (···)코스토글로토프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손을 가로저으며 상대방의 말을 막았다.   "최종적인 결론은 이 세상 누구도 내릴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멈추지요.    (···)내가 이해하기로는 레닌이 톨스토이의 도덕적 완성을 비난한 것은 그것이 당시에 한창 진행되던 혁명과 전제 정치와의 투쟁을 기피하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만 비난한 겁니다."

  *  우리의 인생철학이 무슨 필요가 있죠?   '아,  인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생이여, 그대를 사랑하노라!  인생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철학이에요?  

  *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논쟁하느라 아픈 목을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과 머리가 아파 왔고,  이런 얼간이들을 계몽하고 그들의 헛소리를 모두 바로잡아 줄 힘도 더 이상 없었다.  어쨌든 그가 이 병동에 들어온 것은 우연일 뿐이고 병을 치료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그들과 실랑이를 하며 보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저러나 가장 중요하고도 무서운 것은 어제 주사를 맞은 다음에도 종양이 거의 줄지 않았고 더 부드러워지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사실 모든 환자들이 병원 의사들은 모르는 어떤 기적의 명의라든가 치료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지!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모두 얼마나 그것을 바라는지 몰랐다.   (···)우리가 힘이 있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때는 기적을 비웃지만 인생이 불행하고 짓밟히는 날이 오면 우리는 오직 기적만을 바라고,  오직 기적만을 믿게 되는 법이다!

  *  "혹시 목에 난 종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까?"  파벨 니콜라예비치가 아무리 의연한 체하고,  옆 환자들을 무시한다 해도 이 이야기만은 그냥 흘려 버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도 민간요법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병실 안은 화기애애했다.  그동안 그들은 서로 얼마나 으르렁거리고 티격태격해 왔던가?  아마 그것은 서로 나눌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공동의 적인 죽음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다.  만약 한날한시에 모든 인간 앞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그 어떤 것도 지상의 인류를 서로 떼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되어도 파벨 니콜라예비치의 종양은 전혀 줄어들거나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머리만 따로 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  이제 자신도 예프렘처럼 몸통을 전부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턱과 쇄골 사이에 있는 바로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그것이 그를 심판하는 곳이었다.  이 심판대에는 가족도 업적도 변호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과학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라면 왜 십 년마다 한 번씩 이론이 뒤바뀌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을 믿으라는 겁니까?  선생님의 주사를 믿을까요?  자, 봐요!  이번에는 새로운 주사를 왜 또 맞아야 합니까?"

  *  환자든 건강한 사람이든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층계참 중간 통로에 놓인 침대 위에 산소 주머니를 단 환자가 앉아 있었다.  기침은 멈추었지만 무릎을 곧추세우고 무릎에 머리를 찧어 대고 있었다.  가르마를 단정하게 탔던 흔적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삐쩍 마르고 누렇게 뜬 작은 가슴을 드러낸 그는 이마로 자기 무릎을 쿵쿵 찧으며 무릎이 둥그런 벽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  그저께 맞은 두 번째 주사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종양은 줄어들지도 더 말랑말랑해지지도 않은 채 쇳덩어리처럼 여전히 턱을 짓눌렀다.   (···)세 번째 주사를 맞고 모스크바로 가자고 카파와 약속했지만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이제 싸울 힘을 모두 상실했다.  그는 이제야 운명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몹시 괴로웠고,  이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제 1층에서 어떤  수술 환자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 시트로 덮어 놓은 것을 직접 목격했다.   (···)보통 죽음은 검은 이미지를 갖지만 그것은 죽음의 주변부에 해당하며,  죽음 자체는 하얀색인 것이다.  물론 루사노프도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이며 자신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 지금은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지금 죽는 것은 두려웠다.    (···)그는 자신이 가여웠다.  그토록 의지가 강하고 열정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했던 인생이 난데없는 종양의 침입으로 산산이 깨져 버렸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이성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  더 이상 미래도,  더 좋은 것도 기대하지 말자!  지금 있는 그대로를 기뻐하자!  이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해도. 

  *  "오늘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꼭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진실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  내일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요."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죰카에서 행한 딸의 연설을 만족스럽게 들었다.  아버지의 볼에 키스한 알라는 활짝 편 손을 씩씩하게 들어올렸다.   "아빠,  반드시 병과 싸워서 이겨 내요.  싸워야 해요!   종양은 뗴어 버려요. 그리고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요!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















 << 코스토글로토프의 말 >> -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게 됩니다.  암에 걸려서 오게 된  '13병동'에서 두 여자와 애증관계에 빠지게 됩니다. 

  *  이미 죽음을 경험하는 거죠.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모든 것에 무관심해져요.  무엇인가를 고치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아까울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  누가 그걸 알겠어요?  당신이 어디에 있어야 행복하고 어디에 있으면 불행해질지 말이에요.  누가 자신의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그것을 확신할 수 있겠어요?

  *  솔직히 말해서 저는 삶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삶에 집착할 특별한 이유가 없고,  과거에도 집착해 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반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동안만 살면 됩니다.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의 계획은 세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불필요한 치료는 불필요한 고통을 낳을 뿐입니다.  방사선 치료를 계속하다 보면 구토가 나고 메스꺼워지기 시작하겠지요.  뭣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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