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았다 - <농담>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9번.

by 이태연



이 책은 가볍게 던져진 농담 한마디로 인해, 이상(idea)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1950~60년대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가 배경이지만, 2023년인 현재에도 전 세계적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가 던지는 역사의 실수에 대한 비극적 농담을, 주인공 루드빅과 그의 친구 야로슬라브의 말을 중심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 루드빅의 말 >> - 농담이 담긴 엽서 한장 때문에 삶의 한토막이 엉켜버린 남자입니다.


* 내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따라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인생을 반으로 가르고 싶지 않다. 내 삶, 내 인생이 처음부터 하나이기를 원한다.


* 나는 내 기억들로부터 달아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기억들은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 그랬다. 모든 끈이 끊어져 있었다. 모두 끝났다. 공부, 운동에 동참하는 것, 일, 우정, 모두. 사랑도,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도 끝이었고, 한마디로 의미 있는 인생의 행로 전체가 끝난 것이었다. 내게 남은 것은 시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 그것을 나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내밀하게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았던 시간, 일로 사랑으로 온갖 노력으로 탈바꿈된 그런 시간, 내가 하는 일들 뒤에 살그머니 숨은 채 얌전히 있어서 그저 무심코 받아들였던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옷을 다 벗고 그 자체로 자신 본래의 진짜 모습으로 내게 오고 있었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자신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게 만들어(이제 나는 순수한 시간, 순수하게 텅빈 시간을 살고 있었으므로), 내가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 무게를 느끼도록 하고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변화했다 - <농담>



* 그날 저녁부터 내 안의 모든 것이 변화했다. (···) 여러 달 전부터 바늘이 마비된 채 벽에 걸려 있던 시계가 갑자기 다시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와 아무 상관 없이, 무에서 또 다른 무를 향해(나는 정지되어 있었으니까), 아무 표지도 측량선도 없이 그저 무심히 흘러가던 시간이 점점 인간화된 얼굴을 다시 지녀가고 있었던 것이다.


* 사람이(한사람 한사람 모두) 이제 역사의 바깥에 머물러 있거나 역사의 발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이끌어나가고 만들어나가는 그런 시대를 우리, 바로 우리가 여는 것이라는 그런 환상이 있었다. 나는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의 삶은 삶이 아니라 반 죽음이며, 권태이고, 유배이고 시베리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완전히 새롭고 예상치도 못했던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내 앞에는 이제 전속력으로 비상하는 역사의 날개 아래 가리워져 있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잊혀져 있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는 곳.


*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 배우의 장화에 다양한 무대의상 차림을 하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이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 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현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나는 언제나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았다 - <농담>



*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검정 표지 속에 보내지게 된 것이, 내가 용감했기 때문도 아니고, 투쟁을 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상기해야만 했다.


*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전설과 불가사의의 열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그것은 환상일 뿐일까?


*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고 전율했다. 내 인생의 모든 일들을 전부 취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일들을 초래한 실수들이 내가 한 실수들이 아니라면 무슨 권리로 내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엽서의 농담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 <농담>



*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오늘날에도 벌써 역사는 잊혀진 것들의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가느다란 기억의 밧줄일 따름이지만,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이제 한정된 개개인의 기억 속에 모두 들어올 수조차 없는 또다른 수천년의 세월이 이미 지나가 버리고 난 후인 시대가 또 올 것이다.


* 수백 년, 수천 년이 또한 와르르 모두 무너져내릴 것이며, 몇 백년의 그림과 음악, 몇 백년의 발견, 투쟁, 책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리라.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기 자신의 개념 자체를 잃어버릴 것이고, 파악도 이해도 불가능한 인간의 역사는 의미를 상실한 도식적인 몇 개의 기호로 축소되어 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나는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 <농담>



<< 야로슬라보의 말 >> - 루드빅의 친구입니다. 민속악기를 연주하는 일을 하며 고향을 지키죠.


* 이미지는 그저 괜히 존재하지 않는다. 집이 보금자리가 되는 것도 이미지에 의해서이다.


* 우리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들은 단 한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은 속임수를 쓴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중대한 순간들을 모두 교묘히 피해가려 하고,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은 채 탄생의 순간에서 죽음까지 가려 한다.


* 그것이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 우리가 소원해진 것도 다시 가까워지는 것도 내 손에 달려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시간이 흘렀다.


* 나는 언제나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았다. 나는 그 두 세계 사이의 조화를 믿었다. 그것은 헛된 미망이었다. 지금 나는 그 중 하나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 것이었다. 현실의 세계로부터. 내게 남은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 상상의 세계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나가는 데에는 그곳만으로, 그 상상의 세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왜 왕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페이지 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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