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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FREEBOW MAN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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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산의 카프카 Apr 19. 2023

02. 영국 런던을 뒤흔든 FREEBOW

시작과 동시에 마음을 다잡다

여행의 그 모든 순간순간이 찬란한 시간들이지만 내게 있어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여행을 시작하는 비행기 안이다. 사람들의 기대와 설렘, 흥분과 걱정이 미묘하게 뒤섞인 출발 전의 비행기 안의 그 분위기가 내 심장을 뛰게 한다. 짐을 넣고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번잡스러워지는 그때의 소란과 비행기 엔진의 우렁찬 소음, 그리고 이륙 후 찾아오는 고요한 침묵까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새로운 방황을 시작했음을 느끼게 한다.  

 

인도 첸나이를 떠나 영국 런던까지 두바이를 경유하여 13시간 만에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걱정이 엄습했다. 두루마기 도포를 걸치고 상투를 튼, 그리고 갓을 쓴 이 낯선 이방인을 런던의 출입국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히드로 국제공항의 입국심사가 꽤나 까다롭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초조함은 더했다. 

 

그러나 웬걸. 걱정과 달리 올림픽을 맞이한 히드로 공항은 축제장과 다름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의 한복과 갓은 그다지 특별한 복장은 아니었다. 출입국 심사자 역시 인도에서 온, 한국복장을 입은 나를 조금 신기하게 생각했을 뿐 즐거운 올림픽이 되라며 덕담을 전했다. 내가 올림픽 응원을 하러 온 건 아니지만 말이다.

 

공항을 빠져나와 런던의 중심가에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빠듯한 예산에 최대한 저렴한 도미토리를 예약을 했지만 안 그래도 높은 물가에 올림픽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되어 가히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했다. 중세 노예선과 같은 10인실 2층 침대에 짐을 풀고 옷차림을 정돈했다. 그리고 애써 만든 FREEBOW 피켓을 목에 걸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피켓에 적힌 이 문구가 무게를 가진 것처럼 고작 얕은 이 판때기가 목을 짓누르는 듯했다. 

자, 이제 정말 시작이다. 세계를 향한 FREEBOW의 첫걸음.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직 몸에 맞지 않는 이 옷이 걸리적거리고 목에 건 피켓이 부담스럽고 앞으로 해야만 하는 2012번의 맞절이 걱정이 되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얼마나 큰 힘을 만들어내는지 나와 세상에 보여주겠노라고 다짐하며 도미토리의 문을 열었다. 

 

노예선에서 도망쳐 나온 노예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마치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일단 나오긴 나왔는데 어디로 향해야 할지, 여긴 어딘지, 나는 누군지 순간적으로 멍 해졌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그는 내게 트라팔가 광장을 소개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무작정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하는 내내 이국적인 런던의 풍경에 빠져 눈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과거와 현대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런던의 거리는 맛있는 비빔밥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올림픽을 맞이하여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 비빔밥 위에 올려진 보기 좋은 고명으로 런던의 거리 곳곳을 더 빛나게 꾸미고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해 광장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붐비는 사람들 속을 헤집고 중앙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소심함은 들고 있는 피켓도 배꼽까지 내려오게 했다. 나가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 거라고 수백 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기 바빠 보였다. 낙담하기도 잠시,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하나, 둘 사람들이 나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람들이 조금씩 내게 다가와 피켓에 적힌 문구를 훔쳐보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나는 한 남자와 절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절을 하는 것인지 설명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걸 왜 하는지 제대로 이야기도 못 했는데. 2012번의 FREEBOW 중 당신이 처음이라고 감사하다고 표현도 못 했는데.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그는 떠나갔고 그가 스타트를 끊어준 덕분에 나는 밀려드는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수없이 절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사진촬영을 했다. 어느 순간 자연스레 여유가 생겼는지 대기자가 없으면 절을 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FREEBOW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도 하게 됐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열 명, 스무 명을 넘어 백 명 즈음 하게 됐을 때는 세계 각지에서 온 취재진들과 인터뷰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부분의 취재진들은 올림픽에 한국을 응원하러 온 한국인을 인터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가 올림픽이 아닌 FREEBOW를 얘기하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대만에서 온 한 취재진은 달랐다. 그는 존중의 가치에 대해 귀 기울였고 FREEBOW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는 나와의 10분 간 대화를 통해 알게 된 FREEBOW를 기사화하겠다며 나의 꿈을 응원했다. 나도 그를 응원했다. 그가 지금의 나와 같이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우리가 현재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응원했다.  

쓰지 않았던 근육이 아프다고 지르는 비명은 되려 내 마음을 뿌듯함으로 채웠다. 런던의 가로등 밑을 절뚝거리며 다시 도미토리로 돌아왔다. 시작이 좋았다. 첫날에 벌써 목표했던 바의 10분지 1을 채웠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청춘들의 코 고는 소리가 자아내는 화음을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졌다. 꿈 한 조각도 꾸지 않고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아침을 맞이한, 완벽한 잠자리였다. 


첫날의 성공으로 용기가 생겼지만 런던의 둘째 날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무리한 탓인지 온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인데 괜한 욕심에 중도포기할까 싶어 오늘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도미토리를 나섰다. 런던브리지, 웨스트민스턴사원 등 런던의 이곳저곳을 태극기와 피켓을 들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걸었다. 길을 걷다 누군가 불러 사진을 요청하면 오랜 친구처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고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마치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었던 것 마냥 자리를 잡고 절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나를 일어서고 또 무릎 꿇게 했다. 그렇게 온종일 런던 이곳저곳을 헤매다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오니 신고 있던 짚신이 다 해져 있었다.  


해진 짚신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품고 있던 자만심도 같이 버렸다.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만심을 품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과 달리 런던에 올림픽을 응원하러 놀러 온 게 아니야. 나는 존중의 가치를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런던에 온 거야.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그러나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일이 있을까? 태어난 것 자체가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말이 없다는 에스키모인들처럼 위대하다의 반대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위대하다면 이곳에 평생을 갈고닦은 기량을 보여주러 온 각국의 선수들도 위대하고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관광객들도 위대하며 여기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모든 영국인들이 위대했다. 


그리고 욕심도 버렸다.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지 말고 세상을 더 다양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축복으로 받아들이 자는 내가 선생님처럼 존중의 가치를 가르쳐야만 하는 의무감을 가졌다. 그러나 첫날처럼 굳은 표정으로 존중과 FREEBOW에 대해 일장연설하는 것보다 오늘처럼 편안하게 사람들과 대화하며 사진을 찍고 그리고 원하는 사람에게 절을 하며 존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존중의 가치를 세상에 퍼뜨리는 올바른 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존중은 나에게 절을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의 어깨를 둘러메는 청년의 거친 손아귀에도, 나와 사진을 찍으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할머니의 미소에도 이미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으로 성수기를 맞이한 런던 덕분에 나의 FREEBOW도 성수기였다. 2박 3일의 런던일정 속에서 목표했던 횟수를 훨씬 웃도는 절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무엇보다 내 안의 그릇된 마음을 버릴 수 있었다. 런던에서 시작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행복은 우리의 능력을 모두 발휘해 세상이 더 멋진 곳으로 완성되는 것을 경험하는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런던에 남긴 내 첫 발자취가 세상을 더 멋진 곳으로 만드는 발자국이 되었기를 바라며 나는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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