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해주던 교사가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이야기.
생각해 보니 상담을 정말 많이 하는 직업군이 교사다.
3월엔 학생 파악을 위해 아이들을 일일이 개별 상담을 하고 학부모의 날엔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오은영 박사님이 된다.
그렇게 학기 별로 두 바퀴를 도는 건 기본이고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남겨서 하는 상담이 몇십 건 정도, 좋든 별로든 결과에 관계없이 또 보호자와 상담을 두 배로 해야 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여서 상담은 의미가 있었다.
누구든 그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읽어주는 그 시간이 좋았다.
말 많은 국어과답게 양과 질에서 좋은 상담을 해 주고 내담자의 마음을 읽으려 매우 애썼다.
마음이 가벼워진 거 같은 그들의 표정이나 음성을 들을 때 내가 의미 있게 쓰였단 생각에 효능감이 차 올랐다.
허나 가장 친하지 않았던 내담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집 근처에 정신과의원과 상담센터가 연계된 병원이 있었다.
2년 차 우울증일 때는 병원을 가기 전에 상담을 해 보고 싶어 해당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바로 되는 것은 없다.
학위에 따라 시간당 상담 비용이 달랐던 센터는 5월 중순은 되어야 상담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며 나긋나긋하게 나를 채근했다.
첫날은 일찍 가서 벡 인지검사를 하고 상담에 필요한 신상을 기입한 후 박사학위를 따셨다는 온화한 표정의 전문가 선생님을 만났다.
정신과 의원에 갔을 때처럼 나의 상황을 자초지종으로 장황하게 설명하고 선생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50분에 10만 원을 냈던 내 첫 상담의 결과는 래포 형성과 더 세밀한 상담을 위해 센터와 연계된 병원에서 3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인 종합 검사를 받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첫날은 어쩔 수 없다만 50분 동안 독백을 하고 상담비로 10만 원을 주고 와 버렸다.
정신과의 경우 보험처리를 하면 진료를 받고 약을 타는데 한 번에 15,000원 이내로 저렴하게 드는 편이다.
2주에 한 번씩 가니 한 달에 한 번 치킨을 사 먹는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의 비용이랄까.
상담은 주로 10회기가 기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에게 150만 원은 큰돈이다. 게다가 검사비도 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도 선생님께서 짧게나마 상담을 꼭 해주셨기 때문에 나에겐 상담이 필요했지만 한 시간에 10만 원을 태울 정도로 나는 부자가 아니었다.
아프면 돈 생각부터 난다는데 전문 상담에 돈을 쾌척할 만큼 당시엔 아프지 않았는지 경도우울증의 나는 10만 원을 플렉스하고 그 센터에 두 번 다시 가지 않게 되었다.
내가 찾은 상담센터는 우습게도 인스타 광고 속에 있는 과일맛 상담센터였다.
하루종일 검색창에 ‘우울증, 우울증 완치’ 등을 검색하다 보니 인스타가 알고리즘을 통해 나를 초대해 주었다.
상담 전공의 대학원생과 내담자를 연결해 주는 카운슬링 플랫폼이었는데 똑같은 한 시간에 1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 상당히 매력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집에서 오갈 수 있는 위치라 나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구글 폼을 통해 상담을 신청했고, 그 덕에 저렴하고 편안하게 10회기의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전문성은 이전에 방문했던 상담센터와 다를지 몰라도 나는 10회기의 과일 맛 상담을 통해 정말 많이 회복되었다.
졸업논문통과를 앞두고 있던 나의 상담 선생님은 내 또래의 여 선생님으로 회사를 마치고 매주 월요일 8시에 나를 만나러 홍대로 와 주셨다.
선생님과 만나던 시기는 5월 하순이어서 서로 땀을 닦으며 머쓱해하는 게 인사치레였다.
땀범벅이 된 나는 한 시간 내내 티슈로 눈물과 콧물, 땀을 닦으며 하염없이 입 속의 검은 잎들을 뱉어냈다.
여기에 와 줘서 고맙다고, 상담을 하는 건 나의 일이니 울거나 힘든 걸 이야기하는데 부담을 갖지 말라던 첫 회기의 말씀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이 나의 대나무숲이 되겠구나.
이 숲에서 잠깐 쉬었다가 하산하자.
상반기의 상담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울며 말하기 대회 같은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선생님이 계신 공간으로 들어가면 말과 함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학교에서 느끼는 절망적인 감정, 집에 돌아와서 느끼는 공허함, 우울함이 드리워진 남편과의 대화 등 나는 쏟아낼 기운도 없어서 쌕쌕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 몸의 모든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기운이 빠졌다.
감정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약물치료와 함께 상담을 병행하면서 여름엔 눈에 띄게 나의 모습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나를 살리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여름을 살아내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상담 시간 동안은 온전한 수용과 존중의 시간이어서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평생 바랐던 사람은 산처럼 바다처럼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지팡이처럼 잠시 상담에 기대어 삶을 이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주변에 이야기를 잘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행운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나를 받아주는 상담의 세계로 뛰어들어보시라.
삶이 훨씬 더 달콤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