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사실 이 글은 두 번째 작성하는 글이다. 어제 아침 마지막 문단을 작성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순간 허망함이 밀려왔지만, '더 멋진 글을 쓰라는 오늘의 운세인가 보지.'라고 생각하며 과감히 내일로 미뤘다. 그리고 근처 소품샵에 가서 귀여운 소품들을 수집해 왔다. 나의 기분과는 별개로 여행지에서 꼭 들리고 싶은 소품샵이었지만, 이런 일 후에 방문하다 보니 [귀여움이 우울함을 이긴다.]는 오늘의 글 주제와도 찰떡으로 잘 맞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 아니 자주 예상치 못한 우울과 만날 때가 있다. 그 우울이 나를 삼켜 버리기 전에 나는 나만의 긴급처방을 한다. 바로 우리 집 고양이의 등에 얼굴을 푹 파묻고 부비부비하기. 베이비파우더 향이 나는 털과, 빵 반죽 같은 말랑한 몸. 쫑긋한 귀 사이의 작은 이마까지. 귀여움으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분명한 고양이에게 귀여운 위로를 받다 보면, 어느 순간 우울이 사르르 녹는다.
또 한 가지는 바로 귀여운 스티커들로 힐링하는 것이다. 굳이 사용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귀여운 스티커는 모아두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오로라 펄이 들어간 스티커, 귀엽고 포근한 일러스트가 들어간 스티커 등등. 왜인지 기분이 꽁기한 날. 서점 한쪽에 위치한 문구샵에서 조용히 스티커 쇼핑을 하곤 한다. 컴퓨터 모퉁이, 손거울과 핸드폰 케이스에 슬쩍 붙여 두고는 나만 아는 귀여움을 조용히 감상한다. 때때로 친구들에게 보내는 쪽지와 편지에 스티커를 붙여 귀여움을 더한다.
어릴 때부터 핑크색과 리본, 레이스를 좋아했던 공주 취향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영락없이 그 취향을 유지하고 있다. 베이비 핑크색의 인형을 보면 꼭 안아 주고 싶고, 무채색이더라도 프릴과 리본으로 슬쩍 포인트를 더한 착장을 선호한다. 요즘은 꾸안꾸 느낌으로 힙하게 입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귀여움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꼭 동물이나 물건이 아니더라도 귀여움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겨울에서 봄이 오기 시작할 때, 은근하게 느껴지는 바람의 부드러움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도 귀엽다. 들꽃의 조그마한 꽃잎도, 선생님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귀엽다. 빗방울이 그려내는 동그라미도, 화장품샵에 색별로 꽂혀있는 립스틱들도 귀엽다. 신디사이저의 톡톡 튀는 멜로디도, 댄스 음악을 들으며 까딱까딱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는 몸짓도 모두 사랑스럽다.
세상에 존재하는 우울함의 개수만큼이나 귀여움 역시 이곳저곳에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철없는 어른의 철없는 공상이라고 해도, 나는 이런 귀여움을 발견하며 나이 들고 싶다.
그렇게 나는,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어른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