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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간지 일주일 만에 찾아온 아이

by 영자의 전성시대

"우르릉 꽝꽝" 난리가 났다. 비바람에 천둥소리까지 무서운 소리를 낸다. 수업하다 밖을 보며 "이러다 내 차 떠내려가는 거 아냐?" 하니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결국 "선생님이 차를 들고 집 가면 되잖아요."로 결론 내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잠시 뒤, 언제 그랬냐 싶게 비는 멈추고 날이 개고 있었다.


교실문이 열리더니 헉헉거리며 커피를 바리바리 들고 한 아이가 들어왔다. 나는 잠시누군가 생각하다 벌떡 일어나 아이를 마중했다. 이 아이는 지난주 "선생님, 저 며칠 뒤에 전학가요." 하던 아이, 전학 간지 딱 일주일 된 아이다. 아이랑 헤어지는 게 섭섭해 가는 아이를 붙들고 "거기는 우리 학교보다 일찍 끝나니까 언제든지 하교하면서 들려, 선생님 여기 있으니까 오고 싶을 때 언제든 놀러 와."


아이는 유독 1학년 때부터 나와 유대관계가 돈독했고 늘 자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주던 사이였다. 그럼에도 깊은 이야기까지 할 여유는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런 아이가 찾아오니 나는 깜짝 놀랐고 이내 벌떡 일어나 맞이한 것이다. 아이는 비에 젖어 축축한 채로 들어왔고 손에 커피가 6잔이나 들려있었다. 커피를 싼 비닐도 비에 젖어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


"ㅇㅇ아, 학교 끝난 거야? 비가 많이 왔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그냥 오지 무슨 커피를 이렇게나 많이 사 왔어? 거기 학교 선생님은 어때? 반 아이들하고는 좀 친해졌어?" 나도 모르게 폭풍 질문을 하고 있었다. 에고, 질문만 보면 무슨 엄마인 줄 알겠다. 지금 보니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네. 일주일밖에 안 된 아이가 담임 선생님이 어떤지 우찌 알 것이며 반 아이들하고 벌써 친해졌겠는가!


아이가 비 오는 날 그리 찾아온 것이, 비 맞고 커피를 들고 왔을 그 고생이 마음이 아팠다. 저 딴에는 보고 싶어서, 그리워서 찾아왔을 건데 그 아린 마음이 느껴져서 내 마음도 아렸다. 젖은 손처럼 아이의 마음도 젖을까 봐 염려스러웠다. 아직 자라지도 않은 마음이 벌써 그리움으로 젖을까 봐 속이 상했다. 나는 그냥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커피가 식을 까봐 다녀오라고, 갈 때 꼭 들르라고 했는데 아이가 가버렸다. 나는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이놈의 자식, 선생님이 갈 때 들르라고 했잖아, 어디야? 얼른 다시와. 선생님이 엽떡 사줄게." 아이는 벌써 학원에 거의 도착했고 다음에 다시 온단다. 나는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아가야, 언제든지 너 힘들 때, 외로울 때, 뭐든 먹고 싶을 때, 뭐든 이야기하고 싶을 때, 네 편을 찾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렴.'


다음엔 아이가 따뜻한 날,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찾아왔으면 한다. 많지 않아도 아이가 기억하는,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길 바란다. 아이가 3개월이나 훨씬 더 뒤에 찾아오길 바란다. 우리를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새로운 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선생님으로 아이의 세상이 꽉 차길 바란다. 네 전화번호를 저장하면서 너를 위해 선생님은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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