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면 사려 깊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나를 어쩌면 좋으니

by 영자의 전성시대


올해 새로 입학한 1학년들은 정말 해맑다. 코로나 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터라 유치원 교육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학습 이해력이 전체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1학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힘은 더 들지만 해맑은 아이들로 인해 연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3교시가 끝나면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 아직도 활동지를 파일에 못 껴서 우는 아이, 안아달라고 징징거리는 아이, 글자를 몰라서 거꾸로 쓰고, 뒤집어서 쓰는 등등 아직은 아가 티를 벗지 못한 학생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기본생활 습관을 코로나 19로 집에만 있다 보니 다 숙지하지 못한 원인일 거라 추측한다.


아이들은 힘만 들게 하지는 않는다. 어떤 아이는 아침마다 문안 인사하듯 내게로 와서 해님 같은 미소로 매일 인사를 하고 스승의 날에는 힘 잔뜩 주고 색칠한 카네이션을 뭉치로 던져주고 가기도 했다. “선생님은 정말 예뻐요.”라고 말해주고 귓속말로 “선생님, 진짜 사랑해요.” 속삭여주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도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 백허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당하는 행복한 교사이다.


그중 한 남자아이가 있는데 제법 몸집이 있어 2학년으로 보이기도 한다. 학습적으로도 빨라서 글자를 모두 알고 표현능력도 좋아 글을 한 페이지씩 쓰는 영재의 면모를 지녔다. 말도 잘하고 감정표현도 능숙한 아이이다. 하루는 아이가 수업이 모두 끝나면 자기를 기다려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다.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는데 깜빡 잊고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이가 왜 그러지?’ 의아해하며 “무슨 일인데 선생님을 기다렸어?” 물었다. 말을 하는 대신에 아이는 통통한 손을 펴서 내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꼬깃꼬깃 구겨진 젤리 하나가 있었다. ‘이걸 주고 싶어서 몇 시간 전부터 약속을 잡고 서성거리며 기다린 거야?’ 나는 순간 움찔하며 감동했다. 집에서의 젤리는 별거 아닌 간식이지만 학교에 가져온 순간, 그 소중함은 달라진다. 더 맛있고 더 유혹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소중한 젤리를 나에게 주려고 그 아이는 기다린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아이와 더욱 친해졌고 나도 보답하고자 다음 날 나의 간식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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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책 작가 ‘김영진’를 참 좋아한다. 좋은 그림책도 많고 요즘 트렌드에 많게 다양하게 책이 출간되고 있지만 유독 ‘김영진 작가’의 책에 꽂혀서 홍보도 하고 심지어 지인은 나의 말을 듣고 시리즈별로 모두 사기도 했다. 이분의 책은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내용을, 어른들에겐 뭉클거리는 자기 이해와 가슴 두근거림을 선물한다. 예를 들어 <아빠도 회사에서 내 생각해?>, <엄마도 회사에서 내 생각해?>는 맞벌이 가정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와 엄마가 회사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이해를 시키고, 부모는 아이들에게 바쁨의 이유를 알게 하고 괜한 죄책감을 갖지 않게 만든다. 실제로 <아빠도 회사에서 내 생각해?>라는 책으로 아빠 참여 수업을 진행했는데 한 아버지가 이런 책이 다 있냐며 눈물을 보이시고 진짜 자신의 하루 같다며 감동하셨다. 나 또한 <피아노 치는 곰>이라는 그림책을 읽다가 그냥 울어버렸다. 내 마음이 야들야들하다 못해 카스텔라 빵처럼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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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좋아하는 김영진 작가 책 중 근래에 나온 <엄마의 이상한 출근길>과 <아빠의 이상한 퇴근길>로 학생들과 독서 수업을 진행했다. 요즘 맞벌이 가정이 워낙 많아져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며 학생들이 즐거운 수업이 되기를 기대했다. 책을 소개하고 내용을 모두 들려준 뒤, 아빠가 왜 퇴근이 늦어지는지, 그럼에도 아빠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아빠는 어떤 분인지 자랑하는 것까지 넣어 예쁜 발문지를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설명을 모두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일어서려는데 몸집이 좋은 귀여운 그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등을 도닥이며 “무슨 일이야?”하고 물었다, “선생님, 저는 아빠가 없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몰라요. 근데 이거 어떻게 써요?”하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멍해졌다. 순발력 좋다고 유명한 내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렇다. 예상했었어야 했다. 아빠 없는 아이도 있고, 엄마 없는 아이도 있다는 걸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나는 초 단위의 후회와 자책을 마치고 “그렇구나, 그럼 엄마로 바꿔 생각해볼까? 아니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도 괜찮고.”하며 아이에게 한참을 설명하고 이해시켰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이 나이에 이 경력이 되어도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당황하는구나! 난 언제쯤이면 모든 아이들을 예상하고 사려 깊게 배려하는 교사가 될까?’ 아무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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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사에게 이야기하니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교육과정에 나온 그대로를 했는데도 아이에게 죄지은 느낌이라며 공감해주었다. 일반적으로 부모 모두가 있는 학생들이 더 많기에 우리는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게 된다. 다만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배려하는 것은 교사의 재량이자 역량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인 가정을 이야기하며 한부모 가정도 있음을 소개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가정의 형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 좀 더 사려 깊은 수업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다른 소라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난 외양간을 고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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