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라는 도리스 레싱의 책을 읽었다. 보수적인 여자와 남자가 결혼한 뒤, 네 명의 아이들을 낳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행복’을 계획하며 살다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다섯째 아이를 낳은 뒤 몰락하는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가족과 가정, 부모와 자녀, 어른과 아이의 관계, 바람직한 결혼과 결혼생활 등 가장 기본적이자 제일 중요한 개념들에 대해 사유했다. 또한 간담이 서늘할 만큼의 공포감을 느끼며 읽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도 시청했는데, 사실 한참 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이 영화의 우울감이 두려워 보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 영화 내내 현실적인 공포감을 느끼며 긴장하며 시청해야 했고 끝나고도 그 여운에서 나오기 쉽지 않았다. 자유로운 여자가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가정을 만들고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사랑이 부족해서 엄마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아이. 보는 내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하며 무서웠다. ‘엄마의 역할의 기준과 아이의 필요의 기준은 과연 맞출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어려웠다.
한 아이가 있다. 작고 어린아이인데도 세상 다 산 아이 같다. 눈은 공허하고 구름처럼 떠도는 느낌이 드는 그런 아이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않고 수업에도 관심이 없다. 처음에는 아이를 뭐라도 시켜볼 요량으로 조금이라도 자극하면 소리를 지르고 큰 소리로 울며 떼를 썼다. 이 아이의 문제는 무엇일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이 아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엄마의 무관심과 방치가 문제였다. 같은 형제가 있는데 그 위의 형제에게는 엄마가 사랑을 듬뿍 주고 이 아이에게는 방치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양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니 처음에는 아이의 엄마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마음 가득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케빈이라면?, 아이의 엄마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이의 성에 차지 않는 결과인 거라면? 나는 과연 비난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에게는 교사의 모습보다는 징징거리는 편한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수업에 늦게 들어오는 아이에게 “왜 이제 와, 너 기다리다 눈이 빠질 뻔했잖아.”라든가, “선생님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넌 왜 이렇게 귀엽니?” 등 말을 건네고 손을 잡아주고 머리도 쓰다듬고 볼록 나온 배를 간질이며 장난을 쳤다.
시간이 흘러 이 아이는 좀 성장했고 학교에 적응도 했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상담실에 자주 가고 말수는 적고, 학습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수업에 늦어 내가 기다릴까 봐 급히 들어오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갖는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이 아이는 케빈이 아니기에 아이의 다른 미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