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친구이자, 가족.

공항에서 작성한 엄마의 치앙마이 첫 장은.

by 태림

엄마는 나와 여행 갈 때 뭔가를 알아보지 않는다. 문득 그게 화가 치밀 때가 있어서 왜 엄만 아무것도 안 알아보냐고 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려고 딸이랑 가는건디?" 였다. 맞는 말이라 반박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못난 딸은 그게 내내 화가 난다. 그러면서도 엄마와의 여행을 늘 포기하지 않는 건, 엄마는 내게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렇네 저렇네 재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친구이자, 가족.


여행 전 엄마와 연희동 구경을 갔다가, 여름이 물씬 느껴지는 튜브를 탄 사람과 수박이 있는 노트를 각각 한 권씩 샀다. 엄마가 치앙마이 가서 쓰자고 하면서 사줬다. 사준다니까 고르긴 골랐는데 이유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갑자기 웬 노트?"

"아니~ 기록하지 않으니까 다 까먹더라고."

순간 기특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여행이 더 소중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애틋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사준 그 노트에 항공편 정보와 숙소 정보, 찾아둔 요가원의 위치와 수련시간 등을 적으며 여행을 준비했다. 근데 사실 알아만 보는 거지 뭐 되~게 계획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획을 짠 건 아니었다.(사실 요즘은 구글맵에 저장해 두는 게 여행 갈 때 최고다)


엄마는 노트를 어떻게 시작하나 궁금했는데, 공항에서 주섬주섬 꺼내 날짜를 적고, 몇 시에 공항옴. 사위가 생일 선물로 면세점에서 판도라 팔찌 사줌. 기분이가 째짐.이라고 적는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웃었다. 엄마가 어떤 기록을 쌓아갈지 안 봐도 비디오처럼 보였다.


가끔 엄마는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다. 엄마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나... 싶기도 한데, 그것 말고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기분이가 째진다.'를 적는 엄마를 보면 절로 나오지 뭘. 문득 엄마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엄마도 나를 다 모르듯 나도 엄마를 다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내뱉는 "엄마가 뭘 알아?"는 쉬우면서 엄마의 "네가 뭘 알아?"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처럼.


함께 여행에서 다녀오면 아빠에게 엄마와 나는 "아니~ 엄마가!", "아니~ 얘가!"라는 끝도 없는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둘이 여행 어떻게 다니냐"라며 웃는다. 그럼 우린 서로 "다신 같이 안 가"라고 하지만, 그러고 나서 또 함께 여행을 떠난다. 어쩔 수 없이 서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몰랐던 나를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여행을 피하지 않는 것도 새로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까닭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친해지기도, 약간의 거리를 두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 온다. 그래서 몇십 년 전에 다녀왔던 여행을 꺼내어 그때 그랬는데~ 거기 좋았는데~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쩌면 계속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서 엄마와 나는 그렇게 투닥거리면서도 함께 여행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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