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놓지 않고 버릴 건 버린다
아들이 학교 간 틈을 타서 간절기 옷정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함께 있을 때에도 목소리 한번 듣기 힘들 정도로 말이 없는 아들은
혼자서 할 일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집에 있을 때는 방에 콕- 박혀서
나올 줄을 몰랐기에 철 지난 옷을 정리하려면 아들이 집에 없을 때 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다 방청소 좀 해주려고 하면 재빨리 청소기를 낚아채며
“제가 할게요~” 해버리니 이제 아들 방 청소는 신경을 안 써도 될듯하다.
자기 방 청소는 대체로 본인에게 맡기는 편이지만
가끔 빨래정리한 걸 갖다 주면서 슬쩍 둘러보면 숨이 턱 막힌다.
모두 마신 사이다 병을 한정판 패키지라고 책장 한편에 모셔두는 건 기본이고,
이벤트에 당첨된 신제품 시리얼박스는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 중에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서 자동차 대리점을 순회하며 받아온 브로셔는
말 그대로 보물 1호여서 신줏단지 모시듯 침대아래편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자동차 광'이다.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미니카들은 그야말로 아들의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이 없다.
자동차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수줍음 많은 성격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한 번은 자동차 잡지들과 포장상자가 가득한 방을 보고 꾹꾹 참다가 한마디 하려는 찰나!
“이거 다 중고로 팔 거야~” 라며 내 입을 막아버린다.
흠... 그래. 팔든 버리든 내 눈에만 안 보이게 해 다오~
방정리가 시급해 보였지만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해서 정리될 것으로 믿고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모여있는 방에서의 기거가 진정 가능한 것인지
정말 궁금해서 불편하고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복잡하지도 않니? 정리해서 버릴 건 좀 버려~"
“난 이렇게 물건이 많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니까요”
".............(할 말 없음)"
이것이 정말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아니라면 정말 사람의
성격이란 것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딸아이의 경우 물건을 꺼낸 후 제자리 정리가 안 되는 스타일이라면,
아들은 차곡차곡 안 보이게 정리는 잘해놓는데, 오래돼서 안 쓰거나
필요 없어진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인 것 같다. 내 눈에는 엄연한 쓰레기인데도...
잊지 말자! 쓰지 않는다면
명품박스도 예쁜 쓰레기일 뿐이다
선물포장박스나 고가의 물건을 샀을 때 담겨있던 박스는 단단하고 예뻐서 대부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재활용한다면 훌륭한 수납박스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쓰지도 않으면서
아깝다고 버리지 못한다면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포장박스가 생기면 아끼지 않고 그냥 버리겠다고 다짐하지만, 나에게도 아직 “예쁜 쓰레기”가
여러 개 남아있다.
갖고 싶어서 한참 벼르다가 산 가죽가방을 담아 온 쇼핑백,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카드지갑 박스,
아끼는 무쇠냄비가 포장되었던 튼튼한 박스등.
주인공이던 내용물들은 잘 쓰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보호하는 목적이 전부였던 박스들은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안고 사는 중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용도를 찾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기껏 포장재인데 왜 그렇게 쓰기에도 아까운 걸까?
글 쓰는 작업실 겸 침실인 우리 방에는 휴지통이 없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나와봤자 종이쪼가리가 전부인
쓰레기가 나오면 바로 거실 휴지통에 가져가서 버리는 내 습성(?)때문이다.
마음먹은 김에 그 “예쁜 쓰레기”를 여기에서 한번 써보기로 했다.
휴지통을 꼭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른 휴지를 담기만 하면 되니까,
기왕이면 예쁘고 바라보면 기분까지 좋아지는 걸로 가져다 놓고 싶어졌다.
흠~ 갖다 놓으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자리차지하던 쇼핑백을 재활용도 하고 새로운 물건이 느는 일도 막았으니
이것이 일석이조가 아닐까?
아직 옷장한쪽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크기도 색깔도 다양한 쇼핑백들을
앞으로는 의외의 수납용으로 혹은 외출할 때 에코백 대용으로 사용해 볼 생각이다.
명품쇼핑백에 사용감이 느껴지면 아깝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상 허접한 곳에서도 쿨~하게 써줄 수 있는 나! 쫌 멋진데??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아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지난번에 응모한 자동차이벤트에 당첨됐어요~
며칠 있으면 경품으로 최신 브로셔랑 기념품 올 거야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