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재테크를 목적으로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을 빌렸다.
“돈”글자가 들어간 제목만 보고 재테크 도서라고 생각한 그 책은
집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고, 책 한 권이 던져준 틈새를 시작으로 무심하게 쌓아두었던
집안의 물건들을 들춰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우연한 사건을 '기적'이라고 까지 표현하고 싶은 이유는 특정책이 주는 의미보다도
당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을 달리 생각해 보면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질러진 곳 하나 없이 청소도 정리도 잘 되어 보이는 우리 집이
왜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물건이 너무 많다!
물건이 늘면 수납장이나 수납상자를 마련해 정리는 잘해 넣지만
꽉 찬 공간은 숨을 쉴 수가 없고 안락해야 할 집은 수많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변해가고 만다.
물건에 자리를 빼앗겨버린 공간은 그것들에 짓눌린 무거운 곳이 돼버린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물건 정리부터 하라는 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와 함께
그게 아니라도 대청소 한번 요란하게 했다고 생각하면 그뿐이었으니까.
나에게 별 손해 볼 것도 없는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리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바로 실행에 옮겼다.
거실 베란다로 가서 3단까지 꽉 차있는 선반의 물건들을 모조리 꺼냈다.
신혼을 함께 보냈지만 곧 대형 TV에 밀려 창고 신세를 지고 있던
12인치 브라운관 TV에서부터 이사 가는 이웃이 너무 많다며 나눠준 세탁세제,
이사 올 때 떼어온 헌 도어록 등 아주 못쓰는 물건이라기보다 지금은 안 쓰지만
혹시나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버리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우선 덩치가 큰 가전제품과 철제 물품을 선별해서 고물가게에 내다 팔고,
너무 많았던 가루세제는 쓸 만큼만 남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눔 했으며
도어록도 지인에게 주었다.
빈자리도 없던 베란다 선반이 사실은 내게 필요도 없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선반 하나를 비워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고
물건을 덜어내야만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공간 정리하는 것이 쉽게 느껴졌고
속도가 붙으니 재미도 있어서 가족들이 잠든 후 밤을 새워가면서 정리한 적도 있었다.
하나씩 정리되고 빈 자리가 생기는 집을 보니 어떤 성취감과 함께 의욕도 생기고,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건을 덜어내고 공간을 시원하게 치우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의 짐"도 함께 치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 물건 정리를 시작하면서 여러 미니멀 리스트들의 책을 읽었고,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신념이랄지 방법도 따라 해 가면서 참 열심히 물건을 버렸다.
단출하게 꾸민 공간들에 눈이 휘둥그래지기도 했지만,
욕실에 물건을 놓지 않기 위해 샤워할 때마다 샤워용품을 들고 들어가는 등의
다소 극단적인 방법들은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패스했다.
물론 한 미니멀 안내서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이었지만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내가 따르고 싶은 것은 바로 내 생활에 적용해서 계속 유지할수 있는 건지 직접 해보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어떤 방법이든 실천하기 쉽고 나와 맞아야 습관처럼
계속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남들이 한다고
모두 다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중요한 것은 <미니멀 라이프>의 기본원칙이자 전부인 “단순함”이다.
생활도 머릿속도 단순해야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지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공간을 시원하게 치워버리면서 이제 머릿속을,
또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물건 정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것 또한 쓰지 않는 고물들이라면 그냥 방치해 둘 수 없기에 치우기로 했다.
지금도 친정엄마의 집에 가면 언제나 실랑이는 계속된다.
오래되고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자는 나에게 “아까운걸 …쯧-”
버리는 거밖에 모른다며 나를 나무라신다.
같은 다툼이 반복되는 걸 보면 사소한 물건 하나 버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남들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한 주부의 개인적인 정리 일기일 수도 있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덧붙이고 싶은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나의 엄마도, 주변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게서
이제는 해방되어 홀가분함을 느꼈으면 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생활이 정체돼 있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