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2)
붙박이가 움직였다.
이 책들이 내게서 떠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새 책을 계속 더해갈 것이라고만 여겼을 뿐.
책장에서 책을 모두 빼내어 바닥에 쌓아 올려 보니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게 바로 물건의 산이구나!
나는 목장갑을 끼고 책더미 한가운데에 앉아 남길 책과 처분할 책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전집>, 학교 다닐 때 유행하던 "세계명작 영어학습 문고"라는
일명 <빨간 책(19금 말고..)>, 하드커버가 예뻐서 구입한 두꺼운 <고전 문학소설>,
공부한다고 시리즈로 모은 <영어원서>, 들춰 보지도 않으면서 선물 받았기에 버리지
못하고 있던 <시집>, 그리고 읽을 나이가 지난 <아동 도서>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도 다양했던 책들이 ‘처분 ZONE ’으로 하나씩 옮겨졌다.
책장에 다시 꽂힌 책들은 반복해서 읽고 싶은 것들만 골라내는 까다로운 선발과정을 통해
살아남게 되었고, 이 작은 책장을 빛내며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여가시간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가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희소가치가 있었기에 끝까지 갈등했던 <빨간 책>은
중고사이트에 비교적 높은 가격에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도 안 돼서 구매 요청이
들어와 판매되었다.
“좀 더 높은 가격” 또는 “계속 소장”의 유혹이 있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 신속하게
처분해야 했다.
가장 미련이 많았던 책을 내보내고 나면 그다음부터의 작업은 한결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
다음으로 전집류를 중고책 사이트에 차례로 올렸다.
평소 독서할 때 책장도 조심스럽게 넘기는 데다가 대부분 한 번만 읽고 꽂아놓은 것들이라서
책 상태는 전부 최상급이었다.
도서 판매를 할 때 디테일한 설명은 필수사항이므로 "세월의 흔적 있음"이라는
양심적인(?) 설명을 덧붙여 오래된 만큼 헐값에 등록했다.
조금 아까운 생각은 들었으나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당연히 내려야 할 결정이었다.
내 눈에 최상급의 새책이라도 고르는 사람에게는 어차피 중고책일 뿐이다.
마음을 비워야
공간도 비울 수 있다.
인터넷 검색 조금만 해봐도 중고책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전집인지 단행본인지,
아이 책인지, 성인 책인지 책의 종류와 각자의 상황에 맞춰 비교, 선택해서 가장 편한 쪽으로
처분하면 된다.
중고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기다리기 싫다면 <알 * 딘 중고판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즉석에서 휴대폰으로 책 바코드를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현재 매입가를 확인하고
판매신청도 할 수 있다.
신청한 책을 20권 내외로 챙겨서 '알 * 딘 전용 박스'또는 종이박스에 담아서 보내면
매입이 확정되는 대로 등록된 내 은행계좌로 책값을 송금받을 수 있어서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판매가격이 낮아도 상관없고 간편한 판매과정을 원한다면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단, 매입불가능한 책도 꽤 있으므로 모두 판매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중고 책을 내놓음과 동시에 필요하다는 지인이 있으면 나눔을 했고,
일정기간 팔리지 않고 지인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책은 기부업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좀 더 노력했다면 판매할 수 있었겠지만 시간을 지체하다가 다시 끌어안고 살게 될까 봐
빠른 정리를 해야 했기에 상품 등록 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처분해 버렸다.
중고 판매가 가능하고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어야 기부도 할 수 있으며 (내가 이용하는
업체는 최근 7년 이내에 발행된 아동도서만 기부 가능하다)
기부업체에서 가격책정한 만큼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도 받을 수 있으므로
아무리 물건 처분이 목적이지만, 꼼꼼하게 처리해서 조금이라도 세제혜택을 받는
알뜰함을 발휘해 본다.
그 외 상품가치가 없는 책들은 잘 묶어서 고물가게에 내다 팔았다.
무게당(kg) 금액을 정해서 주기 때문에 책 묶음이 많다면 생기는 부수입도 꽤 쏠쏠할 것이다.
이렇게 마트에서 집어온 라면박스가 하나, 둘 빠져나갈 때마다 쌓아두었던
나의 책 보따리들도 사라져 갔다.
커다란 책장 차지라고만 생각했던 거실 한쪽 벽면은 여백이 정말 잘 어울리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으며, 휴식공간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주고 있다.
무거운 책 박스를 정리하느라 며칠을 몸살로 고생하긴 했지만,
지난날 무책임했던 내 소비습관과 게으른 책 읽기를 반성하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