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이 당길 때

신문물 영접기- 에어프라이어 칼집 삼겹살 구이

by 아이스블루


완벽한 고기구이의 비결은 인내심, 그리고 육즙은 가두고 번거로움은 밖으로 밀어내는

잘 조절된 열기다. 깨끗한 오븐이야말로 요리사의 가장 훌륭한 침묵의 파트너다.


-줄리아 차일드 '프랑스 요리 예술의 마스터링(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1961년작-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지금보다 고기를 더 자주 먹었다.

그러나 고기가 생각날 때마다 외식하기엔 부담스럽고, 집에서 사다 구워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편해서 주말이면 '기름 폭탄 육식의 날'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비록 커가면서 다른 다양한 먹거리들을 즐기게 되면서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구워 먹는 고기를 예전만큼

많이 찾지 않지만, 아직도 삼겹살구이는 우리 가족의 최애 메뉴다.


처음에는 좋다고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구워 먹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퇴근길 현관을 들어선 순간,

양말에 쩍 달라붙는 기름기의 불쾌함에 이런 일상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주말 내내 알코올 걸레로 아무리 열심히 닦아내도 사실은 며칠 동안이나 기름때가 안 지워졌던 것인데,

맨발로 밟고 앉고 눕기도 했다니...

맛있는 삼겹살을 알뜰하게 구워 먹는 것도 좋지만 식사 후에 엉망이 되는 집안환경 때문에 커다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며 집안 물건이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던 나에게 남편은 에어프라이어 구입을 권한적이 있다. 내가 느낀 문제점을 들어서 말이다.

그때는 이름도 생소하고 별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 귀로 흘려 넘겼지만, 심각한 상황에

이르니 그 물건에 관심이 갔다.

'에어프라이어'라고?

어떤 종류로 어느 브랜드를 사야 할지 기본 정보도 없고 사용경험도 없다 보니 선택하기가 막막했다.

그렇다고 인지도 있고 품질 좋아 보이는 것으로 과감하게 사버리는 화끈한 성격도 아니라서 또 상품검색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아~ 한동안 또 물건을 고르기 위해 검색의 바다를 헤엄쳐 다녀야겠구나!



에어프라이어 예열하는 동안 오늘 선수의 시즈닝 타임!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내 나름대로 유명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고, 오랜 고심 끝에 꼼꼼히 따져보고 구입한 에어프라이어다.

오븐형과 바스켓형을 놓고 당연한 고민에 빠졌으나 어차피 각각의 장단점은 존재하고,

안 가 본 길에는 언제나 미련이 남는 법이다.

최대한 후회를 줄이는 비결이라면 자신의 살림방식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겠지.

나는 한 번에 조리하는 양은 적더라도 비교적 설거지가 편한 바스켓형으로 구입해서 5년 넘게 써오고 있다.

아직 고장 난 적이 없으며 편리하게 여러 가지 굽기 요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주방의 동반자가 되어주었고,

안 가본 길을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몇 주 동안 건강하고 담백한 음식 위주로 식사를 하느라 한동안은 기름진 삼겹살을

멀리했기에, 이번 주말 저녁에는 오랜만에 '굽기'로 했다.

종목은 도톰한 칼집 삼겹살과 식감 좋은 항정살이다. 기름기로 말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종류의 고기이다 보니 고기 굽는 과정이 겁도 나지만,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오늘은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에어프라이어에 삼겹살을 넣고 상차림을 준비한다.



에어프라이어에 들어있던 레시피에도, 인터넷에 찾아본 레시피들도, 바스켓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한 삼겹살요리는 모두 '통 삼겹구이'뿐이라서 얇게 썬 삼겹살이나 대패삼겹살은 패스하고 도톰한 칼집 삼겹살을

골라 사 왔다. 통삼겹살보다 금방 잘 익을 것이고 왠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바스켓형 에어프라이어의 특성상 면적이 좁으므로 얇게 썬 고기보다 통삼겹살로 구워서 잘라먹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름은 아래의 스테인리스 트레이로 빠져야 하니 종이 포일은 깔지 않고 시즈닝 한 삼겹살을 바스켓에

가지런히 펼쳐준다.

온도는 190도로 세팅한 후 10분간 예열한 에어프라이어에 바스켓을 넣고, 15분간 돌린다.

반 정도 구워진 상태에서 한번 뒤집어주고, 마늘 슬라이스도 위에 얹어서 다시 15분간 굽는다.

칼집 삼겹살이 좀 도톰 한듯하여 다시 뒤집어 10분을 더 구웠다.



육식인 눈에는 잘 구워진 칼집 삼겹살의 자태가 눈이 부시다.

불필요한 기름은 쏙~빠지고 적당히 기름진 삼겹살과 함께 구워진 마늘도 예술이다.

고기는 사랑하지만 마늘은 못 먹던 뱀파이어 인간이 오늘날 스스로 통마늘을 사다가 구워 먹게 된 것도 바로 에어프라이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스켓의 좁은 면적 때문에 한 번에 구워지는 양은 적으나, 한 접시 구워서 먹는 동안에 다시 세팅하여 구워주면 그런대로 고기가 끊기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몇 가지 아쉬움은 있어도 기름때 가득한 거실 바닥보다는 훨씬 낫기에, 나는 이대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기가 정말 방금 삼겹살을 구운 집이라고?

뽀득뽀득 아직도 깔끔한 바닥, 고기를 팬에 구워 먹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할만한 쾌적한 공기다.

항상 육식인간 셋 먹을 고기 굽느라 갓 구운 고기는 몇 점 먹어보지도 못하던 남편은 본인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이 정도면 우리 집은 진작에 에어프라이어를 샀어야 했다.

적어도 주말마다 고기를 구워 먹던 예전에 말이다.


지금은 삼겹살뿐만 아니라 기름기의 양대 산맥인 생선구이를 구울 때 요긴하게 쓰이며, 고구마도 구워 먹고 간단한 파이나 토스트를 구울 때도 잘 쓰고 있다.

그렇게 안 산다고 고집 피우며 거부하던 물건이 결과적으로 내가 잘 산 아이템 중 하나가 됐으니

아무리 물건에 관한 철학이 확고하더라도 도움이 될만한 말에는 귀 기울여 주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의 양을 무조건 줄이기보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잘 선택해서 잘 써주는 것이 현명한

미니멀라이프의 방식일 테니까.


이번에는 집안공기도 뒤처리도 산뜻한 고기맛을 보았고, 불맛 나는 바삭한 삼겹살 구이가 당길 때는

어쩌지?

그냥, 나가서 사 먹자.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