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아베 야로 '심야식당' (2006년작) 중에서-
"엄마! 김밥 먹고 싶어~" 딸아이가 말한다.
"그러게, 엄마가 할 때가 됐는데..." 옆에 있던 남편도 나를 쳐다본다.
김밥을 할 때가 됐단다.
가족들도 이제 내가 몇 개 안 되는 메뉴로 돌려 막기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중에서 이번에는 <김밥>이 먹고 싶다는 얘기다.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리 길어도 2주 안에는 만들어 주니까....
김밥을 싸기 위해 재료들을 하나하나 식탁 위에 펼쳐놓은 모습을 보면 왠지 큰일을 벌인 느낌이라서
만들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레시피를 살펴보면 특별히 만드는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복잡한 과정도 없기 때문에 나에게 김밥이란 괜히 부담스러운 시작 때문에 마음먹기까지가 힘든 음식이다.
각각의 재료손질도 단순 그 자체라서 해 먹기로 결심하고 김밥재료를 챙겨 오기만 한다면 숨 쉬듯 시간은
흘러서 어느 순간 재료준비가 되고 어떻게든 만들어 먹을 수는 있다.
계란지단을 부치고 햄을 썰어서 굽고, 오이를 잘라서 소금에 재워놓은 후 새로 지은 밥에 들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다.
언제 다 할까 싶게 지루했던 순간이 지나고 이제 김으로 싸기만 하면 된다.
뭐야! 만들기는 세상 쉬운데 결심하기까지는 왜 그렇게 어려운 거지?
김밥을 달랑 한두 줄 싸고 치우게 되지 않는 것은, 시판용 김밥김이 10장씩 들어있으니 어쩔 수 없이 기본으로 10개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드는 김에 다음날 도시락도 싸고 지인에게까지 좀 나눠줄 계획이라면 김밥 산은 더 푸짐하게 쌓여간다. 준비과정부터 도시락을 싸서 당장이라도 나들이를 가야 할 것 같은 요란한 분위기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값비싼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하지 않는 음식이라서 미안한 마음에(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한번 하면 푸짐히 만들게 되므로 더욱 이벤트 하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또다시 나오는 라떼타임~
나 어릴 때는 학교 운동회날이나 소풍날처럼 특별한 행사에 가져가는 점심 도시락은 어김없이 엄마의 김밥이었다. 평소보다 내 딸이 더 힘을 내야 하는 날, 작은 도시락안에 풍부한 영양분을 담을 방법이라면
김밥만 한 음식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두어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했었다.
맛에서든 영양에서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해주는 김밥을 마주하면 어쩐지 푸짐한 비주얼만큼이나
무조건적인 응원의 마음이 느껴진다.
김밥을 하는 날에는 밥상을 제대로 차리기보다 식구들이 원하는 레시피대로 한 줄, 두 줄 만들어 먹고
김밥을 싸면서 얼렁뚱땅 식사를 마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통째로 들고 먹기도 하고, 도마에 썰어놓으면 왔다 갔다 하면서 손으로 집어먹기도 한다.
그때, 남편의 주문이 들어온다.
"참치 김밥으로 하나 말아주세요. 썰지 말고 통으로~"
먹는 사람이 요청한다면 참치나 치즈등을 넣어서 ‘맞춤형 김밥’을 만들어 줄수도 있다.
이것이 엄마표 김밥의 최대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김밥을 처음 말아보는 딸은 아빠에게 준다며 종이포일로 감싸고 <사랑 맛>이라고 써준다.
특별히 더 들어갈 재료가 필요할까? 이것저것 많이 집어넣어 봤자 김밥의 옆구리만 터질 뿐이다.
눈에 안 보이는 '사랑'만 듬뿍 담아서 터지지 않게 예쁘게 말아서 줄게~
적당히 고슬고슬한 밥은 너무 많지 않게 살살 펴줘야 한다.
'김밥'하면 떠오르는 아주 평범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는다.
기름과 소금 같은 양념들은 최소한으로 첨가해서 담백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김밥집에서 간편하게 사 먹는 것도 좋고, 갖가지 색다른 재료들로 다양한 맛을 뽐내는 화려한 김밥도 좋지만, 뻔한 재료들로 집에서 만든, 유난히 꼬다리가 커다란 김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세심한 노력들이 음식맛에 까지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는지.
오늘도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한 주방을 치우면서 이어지는 가족들의 과장된 칭찬의 말은, 귀찮아도
김밥을 계속해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역시 김밥은 사 먹는 것보다 집에서 엄마가 싸주는 게 더 맛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