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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스위스 교육, 막다른 골목은 없다

언어교육의 비결모국어교육과 유아교육의 힘     


  국어교사로서 언어교육이 잘되고 있는 나라의 비결이 궁금했다. 특히 베트남 다문화 가정의 학생과 북한이탈주민 학생의 담임을 하며, 점점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변해 가고 있음을 학교 현장에서 실감했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다문화, 다언어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많은 호기심이 들었다. 


  콘스탄틴은 스위스 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8%로, 태어나서 독일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접하는 경우가 42%에 달한다고 했다. 따라서 가정의 교육만으로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공식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우리나라의 어린이집 같은 위탁 기관에서 어렸을 때부터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국어’를 잘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가정에서의 모국어 소통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 출신 엄마와 이탈리아 출신 아빠가 국제결혼을 해 자녀를 낳았다면, 초지일관 일관성 있게 엄마는 자녀와 한국어로 소통하고, 아빠는 자녀와 이탈리아어로 소통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다문화 가정에서는 실제로 언어교육을 할 때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가정 내 모국어 소통을 강조하며 공용어에 대한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서 책임져주는 모습이 체계적이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콘스탄틴은 이와 관련하여 ‘kinder-4’ 캠페인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이는 4세 이하의 어린이를 둔 부모와 업무 담당자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 영상들이었다. 무려 13개의 언어로 제공되어 외국인 부모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음이 느껴졌으며, 영상들은 아동의 조기 언어 습득 및 유아교육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http://www.children-4.ch/)


  그에 따르면 스위스는 유치원 과정부터 의무교육으로, 모든 스위스 아동들은 만 4세가 되면 유치원에 가야 하고 이 교육은 2년 동안 무료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학사 학위 소지자들이며, 언어 발달 전문가, 특수 교육 교사 등 다양한 교사들이 함께 협업하여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발달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한 반에 평균 20.5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3명의 교사들이 담당을 한다고 했다.) 콘스탄틴은 유치원 과정이 ‘형식이 없던 생활’에서 ‘형식이 있는 학교’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스위스에서는 가정에서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던 아이들이 유치원에 모이게 되는데, 유치원 과정이 다음 과정의 기초가 되기에 전문적이고 정교한 프로그램이 유아 교육과정부터 진행된다고 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15%만 스위스 아이들이고, 나머지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자치 구역도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봤던 ‘서울 대림동의 한 초등학교 신입생 전원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라는 신문 기사가 떠오르며, 우리나라도 이제 이에 대해 전문적으로 대비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에서는 교사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위스의 유치원 교사들에게는 ‘언어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더욱 긴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유치원에서의 ‘언어교육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위스에서는 유치원부터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 6개의 영역을 모두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누리과정과 비교해볼 때 ‘문법’, ‘문학’이 유아교육과정에 들어가 있는 게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그림책 보기, 생활 속 인사, 단어 나열 등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6개 영역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유치원의 교육 계획을 상위 학교 교육과정과 분리해서 1~2년만 생각해 수립한 것이 아니라, 유치원부터 의무교육 기간이 끝날 때까지 전 과정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역량 중심 교육과정(competency-oriented curriculum)을 운영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듣기와 같은 역량들은 1, 2년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필요로 하는 능력이니까요.


  콘스탄틴의 말을 들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럽 전역에서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는 이 역량 중심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2015 개정 교육과정>에도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돌아가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위스의 체계적인 진로 교육 시스템, “막다른 골목은 없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레 ‘스위스 학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스위스는 4세~15세의 아이들이 11년간 의무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후의 과정은 GYMNASIUM(인문계고등학교), FACHMITTEL-SCHULEN(특성화고등학교), BERUFLICHE GRUNDBILDUNG(직업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은 스위스에서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는 특별한 시스템으로 약 80%의 학생들이 직업고등학교를 택한다고 했다. 우리의 인문계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1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2014년에 방문했던 싱가포르에서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당시 싱가포르에서도 약 20% 정도의 학생들만이 Junior College로 진학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Polytechnic이나 ITE(직업학교)로 진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직업교육이 보편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스위스와 싱가포르는 상당히 유사했다.(참고로 FACHMITTEL-SCHULEN은 컴퓨터, 상업, 교육 등 전문적인 분야를 3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과정으로, 약 2%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 진학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특성화고등학교와 유사한 느낌인데, ‘교육’ 분야가 여기에 속해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부럽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의 도표 속 화살표에 숨어 있는 그들의 교육 철학이었다.     


막다른 골목은 없다.     


   위의 도표의 스위스 학제를 보면 모든 화살표는 다 연결이 되어 있다. 이는 어느 과정을 졸업하든 기회는 항상 열려 있으며, 막다른 골목이 없이 다 통하는 곳이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 현장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학생들을 정말 많이 만나는데, 우리도 이렇게 직업교육이 활성화되고 나아가 고등교육과정에서 유연한 이동이 가능하다면 학생들이 좀 더 선택의 부담을 덜고 자신의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생이 아님에도 막다른 골목은 없다는 콘스탄틴의 말이 “언제든 네 꿈을 이룰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와 크게 위안이 됐다. 또한 자신들의 철학을 교육정책에 녹여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정말 살아 있는 배움이었다.


이번 여행 중 유일한 한식을 콘스탄틴과 함께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인터뷰를 마치며 감사의 의미로 우리가 준비한 작은 선물을 드렸다. 한국에서부터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까? 많은 고민 끝에 콘스탄틴의 이름을 새긴 도장과 훈민정음이 새겨진 명함집,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버전의 손편지를 준비했는데, 콘스탄틴은 정말 특별하고 멋진 선물이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며 포장지까지도 정성껏 뜯고, 자신의 명함을 바로 가져와 우리가 드린 명함집에 집어넣으며 한국어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의 순수한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한국적인 것에 담아 전할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콘스탄틴은 우리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한식을 먹어 보지 않았다며,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한국이라는 나라, 문화, 사람들에 대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의 제안으로 우리는 취리히의 한 한식당에 갔다. 음식 문화도 그 나라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여행 내내 현지식을 먹었던 우리에게 타지에서 먹는 외국인과의 한식 한 끼는 반가우면서도 색다른 시간이었다. 만두, 비빔밥, 잡채, 김치, 감자전 등의 음식을 먹으며 한국의 젓가락 문화, 식사예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콘스탄틴은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평소 바쁜 일정으로 점심은 사과 하나, 빵 한 조각과 같이 간단하게 먹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선뜻 내어주며, 낯선 이방인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그의 마음이 다시금 느껴져 마음이 벅차올랐다. 콘스탄틴은 우리의 교육기행 전반에 큰 관심을 보이며 앞으로의 일정에도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아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공통 관심사가 ‘교육’인 만큼 자연스레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도 못다 한 교육 이야기로 이어졌다. 유아교육과 김나지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눴는데, 특히 유치원에서부터 스스로 지식을 배우고 학습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아가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여쭤봤다. 그는 3~4년 정도 연구기관 및 학교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자하여(취리히주에서만 7억 5천만 스위스 프랑(CHF)(한화 약 9,1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으며 듣는 내내 어마어마한 예산 투자 계획에 돈 단위를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내 귀를 의심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후, 실제 현장에 보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조건 변화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 기술을 교육에 활용하는 게 효율적일지’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수학 기하학 학습 같은 경우 디지털 교육이 훨씬 능률적이지만, 데미안 같은 소설은 종이책으로 읽는 게 집중력을 더 키워줄 수 있다고 했다. ‘변화가 필요한 분야’와 ‘변화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분야’를 찾아가는 단계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우리는 잘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교육청 주관 독서교육 연수에서 인공지능(AI)에 대해 처음 들은 날,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앞으로의 사회 변화에 대해 두려움마저 느꼈었다. 이후 교사 독서 모임에서 관련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며 변화할 사회의 모습과 그에 따른 교육의 지향점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를 나눴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교육기행을 하며 내 마음속 작은 해답을 찾았다. 그동안은 변화를 좇느라 잘 보지 못했었는데, 어떠한 변화에도 자신들의 교육 철학을 묵묵히 실천하는 유럽 교육 현장의 모습에서 시대가 바뀌어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기보다 어떤 변화의 물결이 찾아오든 그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인터뷰는 오후 2시가 다 될 무렵 점심식사를 마무리하며 끝이 났다. 콘스탄틴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남은 교육기행도 잘 이어가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손인사를 건넸다.(우리가 선물한 도장을 오늘 집에 가서 자랑할 거라는 한마디도.^^) 교육부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꿈만 같은 마음으로 대체 우리와의 인터뷰를 왜 수락했는지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때 콘스탄틴은 자신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교육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과의 이런 대화를 좋아해 우리의 방문 제안이 흥미로웠고,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는 답변을 했다. 교육을 사랑하고 스위스를 사랑하며 인간 존중과 배려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콘스탄틴과의 만남에서 나는 앞으로의 교직 생활의 이정표를 찾았다. 교직 생활 중 때때로 지칠 때 오늘의 만남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기억하며 다시 힘을 낼 수 있길, 내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나도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길, 훗날 콘스탄틴의 한국 방문길이 있어 그에게 받은 환대의 1/10이라도 갚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교육이란 ★이다!


  인터뷰를 가기 전 계획을 세울 때,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핵심어 한 줄 정의’로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래서 콘스탄틴에게도 ‘교육’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한 줄 정의를 부탁드렸다. 그는 매우 어렵고 철학적인 질문이라며 고민 끝에


교육은 Bildung


이라는 대답과 함께 독일어권에만 존재한다는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덧붙였다. Bildung은 학교와 관련된 교육으로, 제대로 된 시민이 많은 사회, 괜찮은 사회를 유지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교육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은 자신의 역량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한 보석같이 귀한 것이라는 답을 이어갔다. 그리고 교사도 물론 이러한 보석빛을 발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학생 개개인도 그 안에 있는 보석을 갈고 닦아 빛을 발하도록 하는 게 Bildung이라 하며, 이 정도 대답이면 시험에 합격했냐고 콘스탄틴은 농담을 던졌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대학교에서 교육학개론 수업을 듣고 임용고사를 준비할 때까지 열심히 고민하다가 막상 현장에서는 수업과 업무에 치이며 잊고 지냈던 주제였다. 한 줄 정의 인터뷰를 통해 ‘교육의 개인적/사회적 가치와 본질’, ‘교사와 학생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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