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학교 때 첫 배낭여행으로 스위스 취리히를 찾은 후 15년 만이었다. 스위스는 내게 그냥 뭐랄까 어떤 큰 상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기준, 표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물가가 비싸 늘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래서 진품을 가질 수 없어 아쉬운 대로 비슷한 것들을 사는 심리처럼 여행지를 정할 때 사진을 보며 스위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들을 본능적으로 선택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가게 된 슬로베니아와 오스트리아 오버트라운(Obertraun)이 나의 인생 여행지가 된 것도 생각해보면 스위스가 시작이었다. 그동안 마음속으로 간절히 그리워하며 사진을 보면서 스위스를 다시 찾을 날을 그토록 고대하고 상상했었는데, 여행자로서 국제 학생증을 들고 취리히 공과대학을 구경했던 대학생 신분에서 이제 14년 차 교사로서 내 힘으로 섭외한 취리히 주교육부 인터뷰 일정을 안고 다시 이곳에 오다니. 믿기지 않을 만큼 감사하고 정말 가슴이 벅차 꿈만 같았다.
우리는 오전 10시에 이메일로 미리 약속한 교육부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고, 늦지 않기 위해 숙소가 있었던 토니-아레알(Toni-Areal) 정류장에서 여유를 가지고 트램을 탔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쯤 일찍 트램에서 내려 휴대폰으로 미리 검색해둔 지도를 보며 교육부를 찾아 두리번두리번 걷고 있는데, 저쪽 어딘가에서 초록색 서류를 봤다 우리를 봤다 시선이 몇 번 오가더니(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미리 보냈던 서류를 출력하셔서 서류 속 우리의 사진을 보며 우리가 맞나 확인을 하신 것 같았다.) 이내 환히 웃으며 우리 쪽으로 오시는 두 분을 발견했다. 낯선 곳에서 우리가 혹여나 헤맬까봐 교육부 앞 길목까지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계셨던 오늘의 인터뷰 대상자 콘스탄틴과 한국어-독일어 통역을 맡아주신 김혜리 통역사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따뜻하게 시작되었다.
이 여행을 준비하며 정말 많은 이메일과 문의글을 유럽의 각 교육기관에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거나 거절의 의미를 담은 답장이 온 게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누군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대한민국 서울의 교사 2명이 그저 ‘교육’ 자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자신들의 기관을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게 지금 돌아보면 참 막연하고 엉뚱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사실 문의를 한 나조차도 그 당시에는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었는데, 기관 입장에서는 더욱 당황스러웠겠지. ‘역시 이건 무모한 도전이었고 무리한 시도였어.’ 아무런 소득 없는 수많은 시도에 한편으로는 오기가 그보다 더 큰 한편으로는 포기의 마음이 자리 잡을 때쯤 우리의 요청에 처음으로 긍정적인 답장을 보내주신 분이 바로 콘스탄틴이었다.
콘스탄틴은 우리의 막연한 요청에 관심을 보이면서, 우선 자신이 우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링크드인(Linkedin)이라는 사이트에서 우리의 영문 프로필을 정리해 보낼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프로필도 함께 보내주셨는데, 그는 ‘취리히 주교육부 교육 기획 책임자’이자 ‘스위스 유네스코 위원회 유아·교육·돌봄 전략그룹 회원’이었다. 앞으로 인터뷰가 성사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흘러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느낌상 이건 성사만 된다면 정말 귀한 경험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링크드인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사이트를 쭉 둘러보다 보니 학력부터 세부적인 경력들까지 이제까지의 교직 생활을 영문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번의 휴직 없이 14년간 달려오면서 나름대로는 학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다양한 교육 활동을 펼쳤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들을 내 이력으로 차곡차곡 정리해본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한국어로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영문으로 정리를 해야 하다니.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뉴욕에서 유학 중인 이경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프로필을 채워나갔다. 이제까지의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신규 교사 때의 열정을 꺼내 볼 수 있어 좋았고, 지금까지 교직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동료 선생님들과의 소중한 네트워크를 다시금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교직 생활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내가 진짜 교육기행을 통해 배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점차 뚜렷해지는 듯해서 설령 인터뷰가 성사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프로필을 보냈는데, 프로필 검토 결과
Very good profiles! You are most welcome.
으로 시작하는 우리를 환영하는 메일이 왔고, 그다음부터는 정말 일사천리로 인터뷰 계획이 잡혔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바로 ‘언어’ 문제였다. 나는 사실 2014년 2월, 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현직 교사들과 예비 교사가 팀을 이뤄 떠났던 ‘인투더월드-해외 교육 탐방 프로젝트’에 참여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당시 싱가포르 교육부(MOE), 국립교육대학(NIE), 실제 중등학교 현장, 도서관, 과학관 등을 탐방할 때에는 영어 전공자가 있었기에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언어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둘 다 영어 전공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는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교육 분야와 관련된 전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했기에 우리의 영어 실력으로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이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지만) 혹시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취리히 주교육부에 있는지 여쭤봤는데, 처음에는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이 없고 우리는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최종 인터뷰 컨펌메일에서 그는 한국어-독일어 통역이 가능한 통역사가 아마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고, 점심 식사에 우리를 초대하고 싶으니 시간을 비워두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세상에나, 통역에 점심 식사까지? 일면식 하나 없는 낯선 이방인에게 이렇게나 큰 호의를 베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의 세심한 배려와 꼼꼼한 준비에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콘스탄틴의 인품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이렇게 첫 인터뷰 섭외에 성공한 후 그렇게나 되지 않았었던 다른 교육기관과의 인터뷰 섭외도 하나씩 차근차근 성사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기적은 우리를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콘스탄틴의 안내를 받아 교육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설명을 들으며 오늘의 인터뷰 장소이자 콘스탄틴의 사무실이 있는 교육부 10층으로 이동했는데,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높은 곳에서 취리히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콘스탄틴이 ‘Think Tank’라 소개한 이곳은 그의 말처럼 정말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열린 사고와 집단 지성을 통해 교육 정책을 잘 펼쳐나갈 수 있도록 ‘공간’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 그들의 모습에서 아직 본격적인 인터뷰 전이었지만 그들이 어떤 교육을 지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서울시교육청에서도 ‘학교 공간 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돌아가서는 학교 공간, 일단 내가 수업하는 ‘교실공간’부터 좀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0층 곳곳을 둘러본 후, 콘스탄틴이 미리 마련해둔 인터뷰 공간에 앉아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였는데, 간단하게 공식적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인터뷰 취지를 공유한 후 스위스 교육 전반에 대한 콘스탄틴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프레젠테이션 초반에 콘스탄틴은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나와 있는 스위스와 한국에 대한 자료를 화면에 띄워놓고 인구, 면적, 언어, 역사 등 대략적으로 각 나라 전반의 특징을 비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 처음에는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나라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지? 본격적인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시작할까? 이런 의문이 들었었는데, 곧 이 의문은 풀렸고 이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으로 이어졌다.
콘스탄틴은 초반에 교육기획부에서 하는 일을 소개할 때, 전체 윤곽 이해와 정확한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할 곳을 파악해 새로운 발전된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교육 정책 기획을 위해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선행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그는 인터뷰 초반의 꽤 긴 시간을 나라 전반에 대한 상호 이해를 하는 데 사용했던 것이었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스위스와 취리히의 세부 교육 정책을 설명하며 계속 인터뷰 초반에 언급했던 스위스의 언어, 역사, 인구 등과 연결 지어 각각의 정책이 나오게 된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육 정책 곳곳에 사회 전반의 특징이 촘촘히 잘 녹아 있고 교육을 담당하는 리더가 이렇게 사회, 인간, 교육 전반에 대해 깊고 넓은 조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새삼 감탄을 자아냈다. 그래, 내가 리더의 품격을 갖춘 진짜 지도자를 만나고 있구나. 교육과 국가 전반의 이야기를 별개라 생각했던 나의 좁은 식견을 반성하며, 우리의 교육 정책에도 이렇게 우리 사회 전반의 특징이 잘 녹아 들어 있는 걸까? 그동안 혹시 우리는 너무 짧고 얕은 호흡으로 교육 정책을 바라봤던 건 아닐까? 인터뷰 중에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인터뷰 도중 콘스탄틴이 스위스 교육의 중요한 특징을 설명하며,
스위스에는 수도가 없습니다. 이는 교육과도 매우 중요하게 연결됩니다.
와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스위스에 수도가 없다고? 수도가 없는 나라가 있나? 아니지, 스위스 수도는 베른(Bern)인데. 생각해보니 스위스의 수도가 ‘베른’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나의 첫 배낭여행 때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넘어가는 야간열차에서 내 친구는 도난 사고를 당했고, 여권까지 잃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의도치 않게 취리히에서 예정보다 오래 머물렀었다. 그때 임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대사관에 찾아갔어야 했는데, 많은 대사관들이 수도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주 스위스 대한민국 대사관’ 역시 베른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험으로 스위스의 수도만큼은 자신 있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스위스에 수도가 없다고? 이상한 마음에 재차 질문을 던졌다.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 아닌가요?
콘스탄틴은 재차 스위스는 수도가 없는 나라라고 강조하며, 베른에 여러 기관들이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수도는 아니고 이는 스위스의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스위스는 여러 지역들이 한 국가를 만들자는 뜻이 모여 시작된 국가이기 때문에 ‘상생(相生)’과 ‘상호 이해’가 매우 중요한 가치이고, 그래서 ‘첫째’, ‘제일’, ‘최고’는 스위스에서 지양해야 할 것들이었다. 이러한 가치에 따라 스위스는 수도가 없고, 1등이 없는 그런 나라였던 것이다. 이는 교육에도 잘 반영이 되어 26개 주(州)별로 특색을 살린 교육 정책이 운영되고 있었으며(참고로 각 주의 교육을 다시 총괄하는 우리나라의 ‘교육부’와 같은 기관이 있는지 여쭤봤는데, 스위스에는 그런 기관은 없다고 한다.), 교육 정책에 대해 정기적으로 국민들이 직접 투표를 해서 민의를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가기 전 사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다문화, 다언어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접했었는데, 이 역시 이러한 배경과 관련이 있었다. 스위스는 공용어만 4개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만어(레토로만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굉장히 오래된 언어로, 스위스에서 이 언어를 쓰는 지역은 0.2% 정도라고 한다. 스위스어가 따로 없는지 질문을 했는데, 구어로 사투리로만 존재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통일된 한 가지를 최고의 가치로 두기보다 각 지역의 색깔을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가 언어에도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모든 공식 서류는 4개의 공용어로 다 작성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는 교육에도 당연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일례로 콘스탄틴의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학교에서 역사는 2시간만 배우는 데 비해, 언어는 독일어 5시간, 프랑스어 3시간, 영어 2시간을 배우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얼마나 언어 습득에 중요한 비중을 두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역사보다 언어를 더 중요시하게 된 배경도 스위스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과 각 지역 사이에서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생각하니 쉽게 이해가 되었다. 나아가 공용어 2개와 영어까지 해서 거의 대부분의 스위스인들이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에서도 세계 무대에서 그들이 지닌 기본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다.
+ 스위스 인터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