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는 4년 연애 후 결혼을 했다. 주로 연애를 하며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서점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종종 특별한 날에는 근교로 데이트를 가거나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 관람을 하기도 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질 때 결혼 후 집을 어떻게 꾸밀지 상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데이트를 하다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마주하게 되면 어김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결혼 결심과 함께 어디서 살 지를 정해야 했다.그러다 우연히 친구에게 행복주택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특별한 고민과 생각없이 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되었다.
행복주택 10층에 1004호. 신혼부부가 의미를 두기에 딱 좋았다. 실평수 11평에 거실과 부엌, 작은 방 1개 였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갈 수 있었다. 1004호에 진짜 천사가 찾아 오기 전까지 말이다.
한 가정에 아기가 생긴다는 것은 생활의 대부분의 것들이 바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아늑했던 부부의 공간이 아기에게는 위협이 되고 작은 소품들도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11평의 작은 집을 가진 우리에게는 더욱이 그랬다. 아내와 누워 영화를 보던 쇼파는 아기 짐에 밀려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 가장 먼저 버려졌다. 새식구를 맞이 하기 위해 생활 곳곳이 변했다. 부부의 공간이 육아의 현장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다행인건 뽀로로 놀이 매트에 바닥을 내어주지 않은 것이다. 1004호는 아기 용품이 하나씩 늘어가면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사라져갔다.
육아를 하며 가장 불안했던 시기는 3개월이 절정이다. 3.18kg으로 태어나 몸과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의 보호 본능이 최고치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부가 아빠, 엄마가 되며 적응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내는 모유수유로 2시간 마다 잠에서 깨었고 아빠로서 그 시기를 온전히 함께 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예뻤지만 체력적으로 지쳐갔다. 아마도 온전히 홀로 육아를 했더라면 배로 더 심했을 듯 하다. 아빠, 엄마가 함께 해도 힘든 것이 육아 였다. 이때 아파트 단지 상가에 카페<도피>가 생겼다. 귀여운 오리가 커피를 마시는 캐릭터가 있는 카페 였지만 온통 이름에만 관심이 갔다. 도피, 도피, 도피. 카페 도피가 생긴 후로 우리 부부는 돌아가며 육아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홀로 육아를 하며 자유 시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지만 부모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시간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온전히 육아의 현장에서 조금 거리를 둬야 했다. 종종 카페에 있노라면 항상 비슷한 시간에 아기와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 커피 한잔과 육아에서의 쉼을 준 카페가 다른 부모들에게도 도피의 공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에는 없던 아기의자부터 작은 소품들까지 하나 둘 늘어났다. 처음 카페에 도피한 순간 두손 가볍게 내려가 시원한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카페마다 뷰가 참 좋은 곳이 있는데 도피는 공사장이 보였다. 주택을 짓다가 남은 폐기물과 자재도 함께 보였는데 이게 그렇게 재밌었다.(?) 만약 지금이라면 ‘이 곳은 뷰가 별로네’라고 생각 했겠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자유 시간 내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좋아보였고 의미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아내와 요일과 시간을 정해 카페에 갔다. 자유 시간이라고 준 것이지만 천상 아빠인 것이 두껍고 엄청 큰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을 자주 들고 내려갔다. 아기의 개월 수에 맞는 발달 과정에 형광색으로 줄을 긋고 이유식 초기, 중기 준비도 도피에서 했다. 이 순간들이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육아 에세이 <아무래도 잘한 것 같아>에서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날 닮은 너’ 처럼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매 순간이 새로운 순간임을 깨닫는 순간 달라져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3살까지는 최대한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자고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왕 함께 하기로 한 것 ‘좋은 아빠’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딸아이에 대한 기록을 결심한 순간 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자유 시간에 나와 가족 그리고 아이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한듯 하다. 이렇듯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나고 반복될 수록 육아 할 때 힘이 났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윤이가 첫돌이 될 무렵 카페 도피는 문을 닫게 되었다. 동업인과의 문제였다. 1년 이란 시간 동안 아늑한 공간을 마련해 준 곳이라 감사의 마음으로 작은 선물을 드렸다. 사장님께서도 감사했다며 덩달아 선물을 건넸다. 아마도 카페 도피가 없었더라면 육아를 시작했던 1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로도 자유 시간은 계속되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자유 아빠, 자유 엄마의 시간이 더욱 필요했다. 처음에는 30분, 1시간이었던 시간은 3시간으로 늘어났다. 주말에는 반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자유 시간을 갖는 날 아침엔 더 일찍 일어나 윤이의 아침을 준비했다. 주기적으로 나의 시간이 생긴다는 건 부모가 아닌 나로 살 수 있음을 의미했다. 주변 지인 중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가정이 있었는데 아주 솔깃한 자유 시간을 누리고 있는 분도 있었다. 1박2일 자유권이다. 아직은 상상도 못할 시간이지만 육아로 인해 못 가봤던 곳을 누비고 호텔에서 밀린 책을 실컷 본단다. 다음 날은 조식을 꼭 먹고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쓴다고 …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 가정에도 적극 도입하고 싶은 제도(?)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나를 위한 시간을 단 30분씩이라도 가져보기를 권한다. 가정에 화목의 바람이 불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