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레인저 Feb 21. 2024

굳은살과 뱃살

        손바닥 곳곳에 굳은 살이 생겼다. 우연히 클라이밍(실내 암벽 등반)에 대해 알게 되었다. 20대 초 처음 클라이밍을 배우기 위해 갔던 당산의 암장에서 김자인 선수를 보았다. 실제 스파이더맨이 존재 한다면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센터를 소개 받으며 한 바퀴를 돌고 있었는데 머리 위로(?) 김자인 선수가 지나갔다. 작은 체구였지만 홀드를 잡고 있던 팔과 다리는 근육 그 자체였다. 그날 김자인 선수에게 반해 등록한 암장은 집과 거리가 멀다는 변명으로 몇 번 가질 못하고 관두게 되었다. 결혼 후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 고민 없이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볼더링(보조 장비 없이 팔과 다리로 암벽을 오르는 일)을 하며 손에 굳은 살이 생기기까지 여러 번 피도 보았다. 1년 동안 클라이밍을 하며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겼고 스파이더맨까진 아니더라도 거미 정도 될 무렵 아이가 태어났다. 나의 어설프게 거친 손이 아이에게 닿을 때 아플까 걱정되 클라이밍을 쉬게 되었다. 금세 손바닥에 굳은 살은 사라졌고 대신 볼록한 뱃살이 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취미는 현재 자신의 상황에 따른 관심사를 반영한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부쩍 요리에 관심이 많아졌다. 식습관은 어릴 적에 완성 된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부모가 작으니 아들도 키가 작을까 걱정되어 무엇이든 해먹이었다. 배달이나 외식 문화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음을 감안 하더라도 치킨, 피자, 탕수육 등 온갖 것을 다해주셨다.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첫 이유식을 할 때부터 유아식까지 직접 만들어 먹였다. 요즘은 유튜브나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어 따라만 해도 반은 성공이다. 각종 채소를 사서 삶고 갈아 냉동실에 얼려두고 이유식을 만들 때 사용했다. 재료 손질에만 1~2시간이 걸렸지만 꿀떡꿀떡 잘 먹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세상 행복했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가장 걱정인 것을 꼽자면 단연 (         )이다. 가로에 들어가는 답은 ‘밥’이다. 삼시세끼 이 세끼(?)를 해 먹이는 게 주 양육자들의 가장 큰 걱정이란다. 아직 아이가 학교에 가진 않았지만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넘어가며 큰 고비가 있었다. 각종 채소를 넣어 죽밥(?)을 해주는 것과 유아식이라고 불리는 일반식은 달랐다. 말 그대로 밥과 국, 반찬이 필요했다. 무엇이든 재미가 있으려면 숙련될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유식을 먹던 아이는 새로운 식감과 맛에 잘 먹을 때도 있었지만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단호박 수프가 그랬다. 단호박을 찐 후 곱게 갈아 보글보글 끓이다 우유와 소금을 살짝 넣어 수프를 완성했다. 예쁜 그릇에 담아 바삭한 빵도 올렸다. 단호박 수프를 식힌 뒤 아이에게 주었고 한 입 먹자마자 뱉었다. 그리고 손으로 주물 주물 하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쳐 졌다. 처참한 상황에 헛웃음이 났지만 남은 단호박 수프는 아내가 맛있게 먹어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에게 밥 해주는 것이 재미가 붙을 무렵 인스타그램의 예쁜 그릇에 담긴 밥과 반찬을 보았다. 나도 나름 한다고 했는데 사진 속 밥상을 받는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순간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책처럼 모두가 사진처럼 밥을 해먹이진 않을 거라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되었다. 그냥 나만의 요리를 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새벽에 요리를 하고 일하면서 새벽 배송으로 재료를 주문했다. 주말 같이 시간이 더 많을 때는 인스타그램의 사진처럼 예쁘게 담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함께 요리 할 때이다. 어느 순간 요리를 하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맡기기 시작했다. 두부를 자른 다거나(자른다기보다 으깨지만), 야채를 뜯고 다듬었다. 이왕이면 아이가 손질한 재료를 사용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요리는 아빠가 했는데 완성된 것을 보고 '내가 요리했어'라며 신나 했다. 어느 순간 나와 아이가 함께하는 취미가 된 것 같았다. 자주 아이와 함께하다 보니 요리 할 때면 굳이 아빠 품에 꼭 안겨 구경한다. 그리고 갓 요리한 음식의 맛을 보고 품 안에서 떠난다.

아이를 키우는 대략 30개월 시간 동안 다양한 취미가 생겼다. 요리, 동화책 읽기, 아이 옷 쇼핑 그리고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싫어하던 공놀이도 아이랑 하니 마냥 즐거웠다. 오랜 시간 항상 함께하던 아이가 곧 어린이집에 가게 된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온전한 나의 시간이 생기니 벌써부터 설렌다. 이사 온 집 앞에 큰 공원이 있는데 아내와 산책부터 해야겠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여유가 되면 클라이밍 센터도 등록 할 생각이다. 다시 뱃살을 돌려주고 손바닥 굳은살을 돌려받아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출처 : 아빠 앨범(아빠의 요~리)








이전 05화 긴급 구조 11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