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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레인저 Mar 20. 2024

아빠의 7글자 통장 육아 일기

     20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아내의 뱃속에 선물과도 같은 아이가 찾아왔다. 태명은 평소 아내와 아이가 생기면 해야 한다며 말했던 초롱이로 정했다. 먼저 태명을 정하고 의미는 나중에 생각해도 충분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뜻을 정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에 초롱이와 만나는 날을 적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초음파 앨범을 구매했다. 부모들의 로망은 단연 육아일기다. 초음파 앨범 첫 장에 초롱이라고 적고, 만난 날을 적었다. 평소에도 아이가 생기면 꼭 육아일기를 빠짐없이 적어, 성인이 되었을 때 '짜잔' 하며 선물로 주고 싶었다. 얼마나 감동받을까? 감기보다 더 독한 사춘기가 와도 사라질 거란 기대감으로. 산부인과에 가서 정기 진료를 받으며 초음파 사진을 받았다. 사진에는 콩만 한 초롱이가 보였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곰돌이 젤리라고 불리는 시기에는 진짜 사람이 됐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병원에서 다녀와서는 초음파 사진을 오려 앨범에 붙였다. 사진 옆에는 아빠가 하고 싶은 말,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곳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충만한 마음을 담아 글로 적었다.


  한 달에 한 번 가던 병원도 방문 빈도가 짧아졌다. 고로 초음파 사진도 많이 받았다. 전체적인 크기와 머리 크기, 손가락 발가락 개수 등 체크하며 아빠 됨을 실감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초음파 사진에 앨범에 붙이지도 못하고 껴 놓기 시작했다. 방학 내내 놀다 밀린 일기처럼 초음파 앨범도 밀리기 시작했다. 방학 숙제는 선생님께 혼날까 봐 낑낑대며 했겠지만, 초음파 앨범은 아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초음파 앨범은 완성되지 못한 채 옷장 맨 오른 쪽에 슬며시 올려 놓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다양한 방법들로 기록을 남긴다. 요즘 SNS만 봐도 그랬다. 유튜브, 쇼츠, 릴스, 웹툰, 육아일기 등 지나고나면 잊힐 순간들을 남긴다. 육아일기에 대한 갈증을 채우지 못했던 나에겐, 모든 것이 시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아빠들의 대단한 걸작들을 보면 더욱이 그랬다. 특별한 아빠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일하다 인터넷 한쪽에‘아빠의 사랑이 담긴…’이라는 글이 보였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이었는데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이 있었다. 2000년대 당시 올라온 글인데, 아빠가 아이 통장에 매일 1,000원씩을 입금하며 7글자의 글을 남겼다. 내가 통장에 돈을 입금하려고 갔던 적이 언제였을까? 지금은 인터넷 뱅킹으로 입금이 쉽지만, 당시에는 은행에 가야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것도 매일 매일 1,000원씩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내용은 더욱 가슴 뭉클했다. 그리고 나는 ‘이거다!’ 싶었다.


  은행에서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 3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주택 청약, 하나는 첫 적금 통장, 하나는 일반 입출금 통장이었다. 통장에 입금되는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희로애락을 모두 담았다. 단, 7글자. 육아 일기를 쓰기에 부담이 적었다. 부담이 없으니 솔직해졌다. 2년 넘게 통장에 7글자 편지를 썼다.축처음카시트탐, 90일축하해, 뒤집기성공!!, 카페에서똥쌈ㅋ, 손톱깎다피남흑, 사람같은똥쌈, 올두발로5초, 딸늦어서미안해, 400일축하해, 목욕하다똥쌈ㅋ, 새벽에방귀뿡뿡 등 말 그대로 순간을 기록했다. 통장 육아 일기는 차곡차곡 쌓여 벌써 통장이 5권이 되었다. 가끔은 실수로 아이 통장에 돈을 입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잘못입금함ㅠㅠ‘이라고 적어 보냈다. 내 돈.


  7글자의 짧은 글이 쌓이니 꽤 그럴싸한 육아일기가 되었다. 통장을 다 써갈 무렵 은행에 가서 재발급을 받았다. 은행 창구에서 통장을 새로 발급받고 있는데, 은행원께서 말을 걸어 왔다.


“와, 이걸 다 쓰신 거예요?”

“저도 아이 태어나면 해보고 싶었는데, 진짜 하고 계시는 분은 처음 봐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진짜 대단하세요. 조금 읽어 봐도 되요?”

“그럼요!!”


  이날도 통장에 일기를 썼다. 은행원분이 10000원, 통장일기보고 10000원, 칭찬해주심 10000원, 기분좋아져쓰! 10000원.


  특별한 아빠들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육아일기를 나만의 방법으로 써내려 가고 있다. 그럼 나도 이제 특별한 아빠가 된 것일까?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육아 일기 방법을 잘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2년 넘게 통장 육아일기를 쓰며 조금 더 아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이제는 통장 일기, 육아 에세이, 아이 생일에 찍는 사진 한 장, 1년 앨범 만들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육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7글자면 충분했다.



출처 : 아빠 앨범
출처 : 아빠 앨범
출처 : 아빠 앨범

* 인스타그램 paparang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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