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퍼즐 다 맞췄thㅓ"
"아빠, 양치 했thㅓ?"
어느 날 아이가 혀를 날름 거리며 발음하기 시작했다. 34개월 아이의 발음이 얼마나 정확하겠느냐만은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안 그랬다. 아이 얼굴을 마주 하며 쌍시옷 발음의 조음(혀의 위치)을 가르쳐 주었다. 대충 따라 하는 듯하더니 '했thㅓ'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검지 손가락으로 아이의 윗니, 아랫 이를 막는다. 아이에게 우리말은 혀가 나오는 발음이 없음을 설명해 줬다. 하지만 발음 코칭의 효과는 순간이다. 일부로 '했thㅓ'를 반복하며 혀를 날름 거리는 아이를 보니 걱정 보다 웃음이 번진다. 부모이기에 앞서 스피치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이상하게 발음을 하는 아이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아빠의 직업병. 다른 건 몰라도 발음은 그랬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스피치를 가르친 지 9년 차가 되었다. 수업을 하기 전 아이와 개별 상담 후 부모와 수업 방향에 대해 의논한다. 스피치 학원에 방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발음에 대한 문제로 오는 경우도 많다. 특히 코로나19 1년 차 시절에는 마스크로 인해 올바른 발음을 습득하지 못한 미취학 아이들이 참 많이 왔었다. 선생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활동하니 한참 발음 방법을 배워야 할 아이들이 입을 볼 수 없으니 생기는 문제였다. 단순히 발음이 모음과 자음이 부정확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다의 문제가 아니다. 학원에 방문해서 아이들을 상담했을 때 발음으로 생기는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은 대화가 점점 줄어든 다는 점이다. 아이 스스로는 발음의 부정확함을 인지하지 못한다. 친구들과 주변 어른, 부모들의 지적과 놀림으로 인해 '내가 뭐가 이상한가?'라는 점을 깨닫는다.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발음이 부정확함을 느끼고 이내 꾹 삼키게 된다. 그러다 집에서 밖에서 자기표현을 하지 않게 된다. 자기표현을 못하게 되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했thㅓ'라는 발음이 자꾸 신경 쓰였다. 직업병이 육아를 하며 돋았다.(?)
예능 프로에서 발음은 개그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MBC 프로그램 <무한 도전>에서 멤버들이 노홍철의 발음이 그랬다. 무한도전에서 종종 멤버들의 소식을 뉴스 형태로 풀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노홍철이 중간에 외신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로 나왔는데, 전하려고 했던 뉴스 기사는 이랬다. '스티븐 시걸의 소울메이트라고 알려진 수사슴이 뉴욕 맨해튼에 센세이션..' 뉴스에 번데기 소리가 난무했을 듯하다. 2013년 <나 혼자 산다>에 노홍철이 출연했을 때 스피치 학원에 가서 발음 교정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이때 노홍철은 자신의 시옷(ㅅ) 발음이 아빠의 영향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노홍철의 부모님께서 첫째가 아들이니 간절히 딸을 원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노홍철이 태어났다. 노홍철은 집에서 귀여운 딸노릇 하느라 부렸던 과한 애교 때문에 시옷 발음이 번데기가 됐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직업이 육아에 꽤나 영향을 끼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하가 '지호는(유재석 아들 이름) 좋겠다. 태어나 보니 아빠가 유재석이라서'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웃자고 들으면 세상 부러운 일이지만, 유재석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들라진다. 유재석은 온 가족이 그 흔한 놀이동산이나 유명 관광지를 함께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본인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입고, 가족들도 온전히 즐길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학원에서 스피치를 가르치는 우리 부부가 딸이 태어나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이 '언어 표현'이었다. 아이가 병원,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에서 생활할 때부터는 대화를 많이 했다. 쌍방 대화라기보다 아이에게 주절주절 말을 걸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갓난아이와의 대화를 어색해하거나 어려워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게 일상이라 전혀 어색함 없이 꾸준히 눈 맞춤과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 현재 딸아이의 나이는 4살. 한참 모든 이야기에 '왜?'를 붙여가며 궁금한 걸 참지 못한다. 이때도 기량을 발휘하여 궁금함이 해소될 때까지 대화를 이어간다.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아이를 키우며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을 꼽자면 단연 '아이 말 잘하네요'이다. 최근에는 카페에서 대화를 하다가 사장님께서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한 마디 하셨다. "아이가 어린데 말을 엄청 잘하네요." 당시를 회상해보면 내가 아이가 먹던 빵을 몰래 빼앗아 먹다가 걸린 상황이었다. 아이는 바득바득(?) 아빠에게 따지고 있었다. 나름 논리적인 아이의 말에 사장님은 놀라셨나 보다. 종종 우리 부부도 여러므로 놀랄 때가 많으니까. 지금까지는 자기표현이 꽤 강한 아이로 잘(?) 성장해주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했어'가 '했thㅓ'로 신나게 말하고 있다. 손으로 윗니, 아랫니를 막아볼까 하는 충동이 있지만 내버려 둔다. 학원에서는 스피치 9년 차 원장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집에서는 육아 3년 차 초보 아빠니까. 아이 말에 더욱 경청하고, 반응해 준다. 발음 또박또박 한 것도 좋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행복하게 사는 노홍철처럼 살았으면 한다.
우리 딸 잘 했th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