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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레인저 Aug 22. 2024

새벽에 찾아온 손님

  새벽 3시, 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세히 들으니 곤충소리 같았다. 잠결에 집안을 돌아다니며 창문이 열려 있는지 확인했지만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침실에 소리는 계속됐고 불안한 마음에 구석구석 둘러봤다. 어? 옷장 위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점심때 청소하느라 잠깐 문을 열어 놓았는데 방충망 사이로 매미가 들어온 걸로 결론을 내렸다. 와 … 매미. 곤충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멘붕이 왔다. '매미가 침실을 날아다니면 어쩌지, 아이 입에 들어가면(?) 어쩌지, 거실로 날아가 숨어버리면 어찌하지'라는 오만 상상들을 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새벽 3시 50분이 되었다. 당장 매미를 포획하거나 사살(?) 할 용기는 없었다. 아내를 깨워볼까 생각도 했지만, 나보다 더 곤충을 무서워하는 사람이기에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우선 매미가 같은 장소에서 1시간 동안 우는 걸 보니 움직임이 많지 않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무슨 깡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5시 반에 아내와 함께 기상을 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 아내는 난리가 났다.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집에서 매미 포획하기’를 검색한다. 명쾌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창문을 열어두고 나가길 기다리란다. 네? 또 다른 생명체가 들어오면 어쩌죠? 그런데 분명 옷장 위에서 들리던 소리가 밑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옷장 쪽으로 다가가니 앞이 아니라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와. 침실에 건조해서 널어둔 수건에서 소리가 났다. 가까이 귀를 대보니 … 매미(?)가 이동한 듯했다. 침대에서 아이는 자고 있고, 우리는 먼발치 수건에서 떨어졌다. 아내는 뒤꿈치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걷더니 보자기를 가져왔다. 부모가 되면 어떤 상황이던 용감해진다. 처가에서 장인어른 가방에 함께 온 산 바퀴벌레를 발견했을 때가 떠오른다. 가방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엄지만 한 바퀴를 보자마자 옆에 있던 책을 던져 타격 -50을 주었다. 결국 주무시던 장모님을 깨워 소탕했지만 말이다. 아이를 공격(?) 할지 모르는 매미를 소탕하기 위해 아내와 힘을 모으기로 했다.


  아내와 보자기 양 끝을 잡아 수건을 걸어 놓은 행거로 다가갔다. 그런데 왠지 보자기를 두르다 푸더덕 날아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절. 대. 안. 돼. 집 주변 다른 도구를 찾다가 이불 포장 비닐을 발견했다. 매미를 사살하지 말고, 포획하여 집 밖으로 나가자는 계획이었다. 아내와 양 끝을 잡아 수건과 옷걸이 통째로 뒤집어 쌌다. “비켜, 비켜…!” 아침 6시 15분.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비닐을 벗기고 바닥에 옷걸이를 두었다. 발로 퍽퍽 행거를 찼다. 그런데 아침부터 울어대는 다른 매미 소리로 우리 집 아이는(?)는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순간 옷걸이와 수건을 다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용기를 냈다. 수건을 하나 들어 털었다. 없었다. 또 다른 수건을 하나 들어 털었다. 없네? 벌써 날아갔나. 그런데 수건 사이로 불청객의 모습이 드러났다. 매미가 아니라 귀뚜라미 었다. 귀뚜라미였다니. 살다 살다 귀뚜라미 소리가 이리도 큰지는 처음 알았다. 옷장에서 번지~해서 밑으로 내려온 건가? 수건을 탈탈 털어 귀뚜라미를 집으로 돌려보내주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날 새벽 우리 부부는 용감했다.  아니 아빠, 엄마는 용감했다. 하지만 조금 더 용감해져야 한다. 귀뚜라미 한 마리 깨달은 큰 교훈이다. 새벽에 마주한 보이지 않는 적(?)을 순간 판단하고 아이를 지켜내야 했다. 최근 친한 친구 어린이집에서 2세 아동을 선생님이 학대한 정황이 드러나 경찰 조사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TV에서만 볼 듯 한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쌍욕이 나온다.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철저한 현장 조사와 처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아이가 받은 상처와 부모의 잘못이 아님에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가해 선생님을 일벌백계함으로써 다른 아동들이 피해받지 않게 힘쓰고 있는 부모님들을 존경한다. 최근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라일리의 곁을 언제나 지킨 것은 부모님이었다. 아이의 희로애락에 똑같이 공감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동요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 뒤에서는 호들갑 떨며 잠 못 이룰 때가 많지만, 앞에서는 듬직한 아빠이고 싶다.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출처 : 아빠 앨범(잡았다. 요놈)

*인스타그램: papareanger_

*쓰레드: https://www.threads.net/@paparang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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