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한국의 자전거 문화와 연대
지난해 11월 업무차 독일로 취재를 다녀왔다.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 알텐부르크 세 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지역소멸’이 주요 주제였지만 독일에서 내 눈길을 잡아 끌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전거다.
일단 첫 번째로 도로에 있는 자전거 도로가 인상적이었다. 라이프치히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도로는 자전거용으로 보이는 신호도 있었다. 와우! 자동차 우선주의적(?)인 서울에서 온 나에겐 좀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차선이 많은 도로의 경우 인도에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독일에 도착하고 얼마되지 않아 인도를 걸을 땐 몰랐는데,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침범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캐리어를 끌며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독일인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눈짓으로 나에게 니가 서있는 곳이 자전거 도로임을 알려줘서 ‘아하!’하면서 비켜서 걸었다. 그리고 인도와 차도의 자전거들은 정말 쌩쌩 달려서 치이면 심각하게 다칠 수준으로 보였다. 암묵적인 룰과 인식이 있기 때문에 자전거가 이렇게 달릴 수 있었던 거 같다.
두 번째는 가족 전체가 각각 개인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자전거 도로를 보면서 ‘와 여기는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정말 잘 사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또 통역을 해준 또래의 통역사와도 ‘자전거를 타는 성인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터여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성인 직장인이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에 그런데 나보다 작은 아이들을 포함에 온 가족이 개인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자전거라는 도구가 안전한 이동수단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건장한 남자 두 사람이 자전거 가게 통유리창에 진열된 자전거와 관련 용품을 홀린 듯 바라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나의 경우 주로 외제차, 악세서리, 패션잡화 등을 홀린 듯 바라보는데 무려 자전거를 홀린 듯 바라보다니. 독일에는 자전거가 이동수단을 넘어 어떤 문화로 깊숙이 자리잡은 듯해 보였다. 독일에서 몇 가지의 자전거 충격을 받은 후 ‘한국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한국은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타기 호락호락한 도시는 아닌 듯 하다. 자주 걷게 되는 거리에 자전거 도로를 보고 독일에서의 추억과 함께 반가움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들은 자전거 도로를 인지하고 있지 못함을 느꼈다. 버스를 기다리며 자전거 도로에 서 있는 사람, 자전거 도로를 밟거나 아슬아슬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사람 등등. 더 놀라운 건 길 하나를 건너니 갑자기 자전거 도로가 사라지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자주가는 길 하나의 상황만 본 거지만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는 문화가 생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한국의 상황에서 자전거를 타자고 외치거나, 자전거 타는 문화를 위해 자전거를 무료나눔 하거나, ‘하하 내가 자전거의 짜릿함을 보여주지!’라고 외치며 인도에서 자전거를 쌩쌩 탄다면? 아찔하다. 외침은 공허하게 울려퍼질 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기대보다 많지 않을 것이며 자전거로 누군가를 살해하게 될 수도...?
어째, 우리가 고민하고 부르짖는 연대가 처한 환경과도 비슷한 듯 하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 우리는 학교 교육부터 경쟁하는 법을 배운다. 시험성적으로 1등부터 꼴등이 매겨진다. 학생들이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받고 줄세워 지지만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1등을 하고 싶은데, 1타 강사의 출제 예상문제를 공유하는 건 바보다. 결국 연대와 협력보단, 각자도생과 경쟁이 답이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비슷하다.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경쟁은 기본이다. 어학이나 각종 대회의 수상 같은 스펙쌓기도 연대와 협력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사회적경제도 똑같다.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도 좋은 일 하는 기업을 경쟁시키는 방식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설핏 연대처럼 보이는 컨소시엄도 있지만, 컨소로 함께하는 단체도 협력하기 보단 서로 경쟁한다. 기업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아이템이나 주제로 사업을 하지만 협업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연대와 협력 외에도 사업적 협업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사회적경제와 비영리를 지원하는 큰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들도 각자 경쟁한다. 오랜 시간 A사업을 담당하던 조직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나서서 돕기보다 경쟁하고 있는 동일 사업 용역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기회라고 느끼는 사람이나 조직이 더 많다.
결론적으로 인생은 경쟁 그 잡채(?)다. 우리는 연대보다 경쟁이 익숙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전거를 타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자전거 도로에 널린 사람들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자전거로 사람을 치거나, 갑자기 자전거 도로가 사라져서 난처함을 느낀다면. 누가 자전거를 탈까. 일단 난 안탈 듯.
우리는 연대를 외친다. 그리고 개인은 연대를 위한 활동들을 조금씩 조금씩 이어간다. 그렇지만 연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좌절하거나 좌절에 조금 더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대부분은 연대 실패의 원인을 곰곰이 자신의 궤적에서 찾는다. 물론 자아성찰은 필요하다. 나 자신만 바라봐서 뭔가 뾰족한 해결점이 나타난다면 좋겠지만, 보통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그저 나 자신만 지속적으로 살피는 건 성찰이 아니라 매몰에 가까운 듯 하다.
그러니까, 연대를 더 잘하기 위해선 해야하는 걸 묵묵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게 필요한지도 살펴야 한다. ‘연대를 하자!’고 외치니 누가 관심을 보이는지 또는 듣는 사람이 있었는지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경쟁이 만들어 내는 문제를 지적하는 활동이나 교육일 수도 있고. 경쟁체제에 균열을 내는 방식을 공부해야 할 수도 있다.
앗 또, 결론이 없는 글 한 편이 완성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연대가 잘 작동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도 꽤 흥미로운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