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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Oct 25. 2024

괜찮은 게 불편한가요?

괜찮은 게 불편하니 병이다. feat. 정신과전문의

토토를 보내고 난 뒤, 내가 정신의학과를 찾은 건 가장 힘들었을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괜찮아졌다고 느꼈을 때였다. 처음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괜찮아진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토토를 잊어가는 것 같았고, 그게 너무도 불편했다.


“요즘 괜찮아졌어요.” 나는 진료실 의자에 앉아 깊게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말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상한 불편함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그 자체가 너무 평범하고 익숙하게 들려서 스스로가 어리둥절해졌다. 괜찮아졌다고? 그렇다면 왜 여기, 정신의학과에 와 있는 거지? 그 순간 깨달았다. 사실 내가 이렇게 진료실에 앉아 있는 이유는, 정말로 괜찮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내 안에서 뭔가가 정리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괜찮아서 오신 건가요?” 그 질문은 날카로웠다. 차분한 그의 말투 속에는 어떤 판단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저 괜찮은 게 왜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걸까?

“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해요. 이렇게 빨리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싶고…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입을 열자, 목구멍이 뻐근해졌다. 괜찮아졌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불편함은 단순한 표면적인 안도감이 아니라, 내가 그 슬픔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괜찮아지는 게 불편한가요?” 의사의 질문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왔다. 괜찮아지는 게 왜 불편할까? 그 질문은 나를 향해 거울을 비추듯이, 내 감정을 직면하게 했다. 나는 문득 내가 슬픔 속에 오래 머물러야만 토토를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지 깨닫게 됐다. 토토를 사랑했던 만큼, 슬픔도 길고 깊어야만 그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토토를 너무 사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만큼 슬프지 않아요. 그게 저를 불편하게 해요.” 나는 힘겹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의사는 여전히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차분했고, 마치 내가 스스로 알아내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듯했다.


의사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지는 과정은 당연한 겁니다. 우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에요. 매일 울고 괴로워해야만 토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랑은 슬픔의 크기로 증명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 안에서 토토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그 사랑의 한 방식입니다. 괜찮아진다는 건 사랑이 줄어든 게 아니라, 그 사랑이 더 깊고 건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괜찮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의사의 말이 꼭 정답일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조금은 안도감을 찾고 싶었다. 괜찮아지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토토와의 사랑이 내 안에 더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괜찮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런 대화가 무색하게, 그 후에도 몇 번이고 나는 통곡하며 토토를 떠올리던 날들이 있었다. 그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가라앉았고, 그러다 다시 괜찮아졌다가, 또 어느 순간 슬픔이 몰려와 나를 덮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울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리움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지만, 그리움이 삶을 잠식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렇게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답인 것 같다.


어쩌면 슬픔과 괜찮음이 반복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리움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지 몰라도, 그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면서 토토와의 기억을 내 안에서 더 소중하게 간직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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