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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Nov 10. 2021

착한 이별은 없다.

엄마와의 이별은 준비도 없이 이뤄졌다.

나 22살이 되던 해 1월

6살 어린 남동생과 빕스를 다녀와 배부르고 귀찮은 밤, 집안 분위기는 말도 못 하게 차가웠다.

요즘 엄마가 아파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우리 둘만 외식했다고 이러는 건가.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내 어린 동생 맛있는 것 사주고 왔는데' 라며 짜증부터 났다.


"아빠랑 술 한잔 해"


그날 밤 날 불러 낸 아빠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파트 뒤 상가 호프집으로 장녀인 날 불러 엄마의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모습은 수북이 쌓인 담배 재떨이 그 자체였다.


며칠 후 동생 모르게 엄마는 대학병원에 입원했고 입원한 지 고작 한 달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동생에게 비밀로 했던 건 나와 달리 여리고 우등생인 동생의 공부에 지장이 생길까, 견디지 못하진 않을까. 하는 엄마의 걱정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병원에 있던 한 달간 엄마는 여전히 내 아기인 16살의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차마 가늠할 수 없다.


입원 후 며칠의 시간이 지나 대학병원에선 이미 암이 퍼질 때로 퍼진 엄마가 가망이 없다 말했다. 아빠는 동생에게 엄마의 상태를 말해야 할 것 같다며 내게 부탁을 했고, 나는 낮술을 먹고 집에 들어갔다. 이미 이상한 눈치를 챘을 남동생을 식탁에 앉혀두고 진지하게 말을 꺼내다 펑펑 울었다.


"엄마가 입원했는데 사실 암이야.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그 당시 아빠는 얼마나 우리 곁에 있어줄지 모르는 엄마 옆을 지켰고 다음 날 아침 내 동생은 늘 그래 왔듯이 학원에 갔다. 그게 엄마가 본인에게 원하는 것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난 그다음 날도 낮술을 하고 들어와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며 펑펑 울었고 그날 동생은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란 걸 눈치를 챘다고 했다.


"괜찮아 누나. 괜찮아.

그리고 나도 엄마한테 데려가 줘"


몇 번의 유산 끝에 나보다 5살 어리게 태어난 남동생은 오히려 나를 달랬고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나를 따라나섰다. 야속하게도 동생이 나를 따라나선 그날부터 엄마는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태였고 하루 3번만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에 있을 때였다.


"엄마 사랑해"


나는 전 날까진 나와 수다 떨던 엄마가 하루아침 산소마스크를 끼고 중환자의 모습이 된 걸 보며 한마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또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를 직접 마주한 동생은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엄마에게 울며 마지막 말을 했다.


"엄마, 엄마 퇴원하면 말하려고 했는데

진짜 사랑해요"


신기하게도

엄마는 고개를 두 번 끄덕거렸다. 말을 할 수 없을 뿐 의식이 있었고 듣고 있었다.

이후 엄마는 1인실에 올라와 죽은 날만 기다리는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내겐 그 모습보단 엄마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고개를 두 번 끄덕인 모습이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되어있다.

그리고 이 기억은 내 엄마의 마지막 유언이다.

우리를 사랑한다는 그 말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을 전부의 말.




2월 초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전국 모의고사 1프로 안에 들던 내 동생은 그 달 중학교 졸업식 때 전교생을 대표해 성적 우수생으로 상을 받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철이 들었던 내 동생은 학부형들의 "쟤네 엄마래", "어휴 어떡해"라는 너무도 큰 수군거림을 못 들었다고 했다.


 그날 처음 본 내 동생의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나는 이미 어설픈 학부형이 되어있었다.

참으로 어설픈 게 난 내 동생에게 엄마도 되어주고 누나 노릇도 해주어야지 하면서도 늘 술 취해 집에 와 동생 침대 머리맡에 가서 원을 그리며 주정을 부렸다.



"야 여기 돈데크만 주둥이에서 나오는 (만화 시간탐험대) 시간터널처럼 구멍이 생기면 좋겠어,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면 모습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그 구멍 속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 대화 좀 하면 좋겠어. 엄마랑 너무 말하고 싶어" 


준비할 수 없었던 한 달만의 엄마와의 이별은 정말이지 착하지 못했다.

아직 할 말이 많은데 듣고 싶은 말이 많은데 엄마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 너무도 많은데

앞으로를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두려웠다.


늘 습관처럼 내게 말하던 엄마의 말

"엄마 때문이라고 해"라는 흔한 핑계도 댈 수 없게 되어버렸다.

늘 날 지켜줬던 엄마라는 방패가 사라졌다.




엄마는 입원 후 한 달 만에 죽은 것이지 갑자기 아파졌던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병원을 다니며 아팠고 앓았다.

단지 우리 가족에겐 엄마의 아픔이 가벼웠을 뿐이다.

큰 병원을 다니고 있으니까, 약도 먹으니까. 낫겠지, 좋아지겠지라며 무심했던 것뿐이다.


엄마가 죽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 내게는 '엄마를 더 살필 걸', '함께 있어 줄 걸'이라는 후회조차 어려울 정도로 이별 그 자체로 힘들었다. 그리고 기댈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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