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 나는 점점 더 못나지고, 못되지고, 속은 비어있으면서 겉만 잘난 척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나 자신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런 나에게 뜻밖의 위로를 건넨
10년 넘게 술잔을 나눠 온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자주 만나는 언니들은
2010년,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 입사한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건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중 한 언니와 지난주에 술을 마셨다.
언니는 10여 년 전, 엄마가 떠난 지 석 달 만에
취직해 처음으로 마주했던 ‘직속 사수’였다.
그땐 슬픔은 감추고 괜찮은 척하며 하루를 버텼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줄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던지라
여섯 살 차이의 직속 사수였던 언니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언니는
그 시절의 나를 많이 챙겨주려 애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젠가 언니는 그때 내가 꽤 까칠했다고 한다.
“너 나 엄청 싫어했었잖아?”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챙겨주는 모습이
내 슬픈 감정을 들킨 것 같아 호의가 불편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때 나는
가까운 친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으니
언니의 손길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시간이 흘러
나는 회사를 먼저 나왔고,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묘하게도,
같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단단한 사이가 됐다.
직장 사수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내 시간을 채워주는 관계.
그게 지금의 우리 관계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날, 언니와 어떠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언니가 멈칫하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원래도 주관이 강했는데
아이 낳고 키우면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색이 훨씬 또렷해진 것 같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10년 넘게 날 지켜봐 준 사람이 건넨 단 한 문장.
그건 날 칭찬하고자 격려하고자 한 말이 아닌
자연스러운 대화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 하나에,
‘나, 꽤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가 되었다.
나조차 희미해진 그 시절의 나부터
지금의 나까지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본 사람이 남긴 묵직한 감상평.
누군가의 오래된 시선이 내 삶의 거울이 된 기분.
나조차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를 오랜 시간 지켜봐 준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응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됐다.
흘러가는 시간 속,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부터 듣는 말 한마디는
어쩌면 내겐 가장 정확한 응원이었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좀 더 나답게
내 색을 또렷이 지켜내며 살아가고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