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클링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다.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처음 경험한 이후,
장호항, 오키나와, 발리, 괌, 코타키나발루 등
어느 바다든 스노클링 장비만은 꼭 챙겨 간다.
큰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 스노클링은
바다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체험이다.
귀를 감싸는 바닷속 고요한 소리,
줄 맞춰 총총 헤엄치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
햇살이 바닷 물결에 반사되어 따뜻이 닿는 느낌까지.
그 순간들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던 바다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2년 전 여름, 괌 여행 4일 차 아침.
이파오 해변에서의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진
'전면수경 스노클링 마스크'를 장만했다.
입에 무는 방식이 아닌,
얼굴 전체를 수경으로 덮는 타입이었다.
시야가 넓고 호흡도 편할 것 같아 기대가 컸다.
그때는 아이가 어려서 바다에 들어갈 땐
남편과 번갈아가며
한 사람은 늘 아이의 모래놀이를 함께 해야 했다.
그 사건이 일어날 때 나는 남편과의
바통터치를 하며 혼자 바다에 들어갔다.
새 스노클링 마스크는 기대 이상이었다.
얼굴형에 맞게 밴드를 조절하니
얼굴을 타이트하게 감싸 안정감 있었고, 시야도 탁 트였다.
열대어들을 따라 헤엄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조금 멀리까지 나아간 후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헤엄쳐도 자꾸만 뒤로 밀리는 기분이었다.
그 사이 내 발은 바닥에 닿지 않게 되었고,
몸은 점점 지쳐갔다.
더욱이 공포가 커졌던 건
마스크 안으로 물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수영선수가 아니기에
어떻게 헤엄친 건지 모를 정도로 고생하며
죽을힘을 다해 한 외국인 관광객 근처까지 헤엄쳤다.
도움만 받으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웃으며 어딘가를 향해 손만 흔들 뿐이었다.
내 얼굴이 마스크에 가려진 탓에
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 그 외국인의 손이 향한 곳이
내 가족이란 걸 알았을 때 절망이 몰려왔다.
(실제로 내가 이상한 것 같아 남편이
그 외국인에게 내 아내가 괜찮냐고 물었다고 한다)
저 멀리 남편과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얼굴로.
"엄마!!!", "초희야!!!" 하며,
나는 외쳤다.
“오지 마! 여기 위험해!”
하지만 그게 실제로 입 밖으로 나왔는지,
마음속 외침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금 여기서 사라지면 저 둘은 얼마나 슬퍼할까.’
그 생각이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슬퍼질 생각에 더 두려웠다.
기적처럼 마지막 힘이 났다.
그 순간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남편이 아이를 모래사장에 남겨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내 손을 끌어당겼다.
육지에 닿자마자 온몸이 굳고 편두통이 몰려왔다.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살았다'라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남편은 멀리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하얗게 질린 사람의 얼굴은 처음이었다고.
내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단박에 알았다고 했다.
내가 정말 죽을 뻔했다는 걸.
남편은 그날부터 아직까지
“너를 살린 건 다 아이 덕분이야.”라고 말한다
모래놀이에 심취해 있던 아이가
정말 갑자기 엄마한테 가보자고 해서
너를 살릴 수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늘 말한다.
“맞아, 아이 덕분이지.
하지만 내가 마지막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아이와 오빠가 해맑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야."라고
그래서 마지막 힘을 낼 수 있었다고.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편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렸고
트라우마로 바다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휴가로 대천해수욕장에 갔지만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를 내비치면
남편과 아이도 흥이 깨질까
조용히 아이와 함께 모래놀이만 하던
나를 조용히 보던 남편은
거창한 위로나 사소한 대화 없이
자연스레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계속 나를 달래고 어르며
다시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내가 신경 쓰면 더욱 스트레스를 받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문제의 스노클링 마스크 제조사에
정식으로 컴플레인을 넣었다.
몇 만 원짜리 장비를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또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고 싶었던 거다.
또 늘 그렇듯 '내 잘못이야.'라고
자책하던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그 일은 국가 안전기관으로까지 이어졌고,
스쿠버 다이버분들과 그 외의 수고해 주신 분들의
테스트 끝에 해당 제품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해당 제품에는 ‘사용 반경 경고 문구’를 크게
추가하라는 통지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죽을 뻔한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다시 바다를 좋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내가 내 잘못이라 취급해 자책감을 떠안을까
걱정한 마음으로 나를 모르게 해 준 일들.
정확한 문장들은 매번 대화마다 다르지만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라는 의미 속에 담긴 진심.
죽을 뻔한 나를 살게 한 건 결국 가족이었다.
해맑게 웃던 아이와 남편의 얼굴,
다급히 달려온 남편의 손길,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우리,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