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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들켜도 괜찮은 일기

by 초희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늘 무언가를 기록하며 살아왔다.
버디버디 홈페이지, 싸이월드, 싸이월드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까지.

내가 해왔던 SNS의 여정만 봐도
‘기록’과 ‘공유’는 내 삶의 일부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번은 남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가 사람을 좋아하는 ‘E’였으면 진작 인플루언서 됐을걸?”
그 말이 웃기면서도,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관심보다 축적되는 기록이 더 좋았다.

그래서 지금도 인스타그램은 친구 공개로 운영하고,
누구보다 ‘나’를 위해
기록하고 싶은 일상을 조용히 써 내려간다.



초등학생 시절, 숙제로 쓴 일기로 교외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에게는
친구들이 신기해하던 교외상보다
그 일기장을 돌려받지 못한 사실이 더 속상했다.



사춘기에는 더 자주, 더 깊이 일기를 썼다.
나만의 진지한 대화,
온갖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내 감정과 고민을 수십 권의 일기로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 일기장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는 재혼을 했고
낯선 여자 어른과 잠시 한 집에 살게 되었을 때
‘남’이 내 사생활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일기 전부를 찢어버렸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이상하게도 지금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그 글들 안에 담겼던 시간과 감정들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었고,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세상에 없는 그 일기장 중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페이지가 있다.

대학생이던 나는
‘서른 살이 되면 내 집을 마련하고,
내 차를 갖고, 박화요비 콘서트에 가겠다’
인생 목표를 써놓았었다.

그리고 매일 일기장을 보며
그런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한 목표가 참 순진했다.
하지만 그 시절엔 진심으로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내가 동경하던 부모님이

서른 살에 내 집을 마련했기에,

물질적 목표를 기록하긴 했지만 큰 목적은
'내 부모가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가자.'였다.
그렇게만 산다면

내 인생은 오답 없는 정답일 거라 믿었다.

그때의 나는 미숙했지만 단단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기억은 기록 없이도 내게 남아있다.



지금의 나도 여전히 기록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의 기록은 ‘나’보다는 ‘우리’로,
‘먼 내일’보다는 ‘지금 이 순간’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는 점이다.

투닥거리며 사는 남편이지만,

가볍고 즐거운 대화와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기록하고,
아이의 말투, 표정, 행동,

사소한 말 한마디와 웃음소리까지도 글로 남긴다.



어릴 적엔 고민과 상처,

그리고 미래에 대한 목표로 가득 찼던 기록들이
이제는 지나고 나면 흐려질 찰나의 순간들을
큰 아쉬움 될까 봐 두려워 붙잡듯이 기록한다.



그렇다고 미래를 완전히 놓은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상상한다.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내일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을,
지금처럼 깔깔 웃으며 옆에 있는 장면을.



예전처럼 감정에 기대어 쓰는 기록은 아니지만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짧게 적는다.
그저 하루의 기록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안다.

그 안에도 오늘의 내가 있고,
내일을 살아갈 원동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기록하고, 돌이켜보고, 축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내 자존감을 채우는 방식이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제는 이러한 나의 기록을 딸아이가 함께 읽는다.

언제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지 궁금해하고,
이번엔 무슨 이야기가 담겼을지 설레며 기다린다.

읽었던 글을 또 읽고,
한 문장 한 문장을 꼭 껴안듯 아끼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어릴 적엔 남이 볼까 두려워 찢어버렸던 일기였다면,

이제 나에게 기록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기 위해 쓰는 것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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