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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장면

죽기 전, 스쳐갈 장면들에 대하여

by 초희



죽기 전, 눈을 감기 직전.
살아온 삶의 장면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갈 것만 같다.

그리고 그 필름 속엔 화려한 이벤트들이 아닌

평소 겪어낸 사소한 일상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요즘 딸아이는 엄정화의 <페스티벌> 노래에 맞춰

줄넘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 노래는 내가 열 살 무렵에 세상에 나온 곡으로
그 시절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딸의 모습이
어쩐지 너무도 귀여웠다.





며칠 전, 남편과 딸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마이크를 꼭 쥐고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모니터 속 가사를 보며 어설프게 따라 부르는데

이제는 귀여움을 넘어 사랑스러움으로 커졌다.



나는 너무도 큰 목소리로
“오빠! 나 딸 낳길 진짜 잘했어!”라고 말했고,
남편은 행복한 웃음으로 '하하하' 웃었다.

작고 평범한 노래방의 순간이
어떤 대단한 사건보다도 더 강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죽기 전, 그 장면은
반드시 내 마지막 필름 속에 등장할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답게 정말 많은 여행을 다녔다.

그 많은 여행들 속 단연 기억될 장면,

아이가 일곱 살 때 괌 여행에서의 일이다.



나는 스노클링을 하며

갑자기 깊어지는 바닷속까지 들어갔다가
숨이 가빠져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모래사장을 향해 간신히 헤엄치고 있었지만
숨이 부족해 이제는 끝인가 싶었던 그 순간.

멀리서 남편이 딸과 튜브를 끌며 바다로 오고 있었다.



해맑게 손 흔들며 나를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여기로 오지 마! 위험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 남편과 딸이 나 때문에 위험해질까 봐서

정말이지 남은 힘을 짜내 다시 헤엄쳤다.



나와 가까워지자 남편은 하얗게 질린 나를 보고
아이를 모래사장으로 밀어 보내고 내게 헤엄쳐왔다.

남편이 해변까지 끌어당겨 겨우 올라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남편이 말했다.



“애가 너 살린 거야.

모래놀이에 심취해 있더니

갑자기 엄마한테 간다고 튜브 끌어달래서.”



난 대답했다.

나를 살린 건 나를 향해 다가오며 해맑게 웃던

오빠와 아이 때문이라고

두 사람까지 위험해질까 무서워서

나를 조금이나마 더 헤엄칠 수 있게 해 줬다고.



진짜로 그랬다.

해맑게 웃는 남편과 아이를 보니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다칠까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마지막 숨을 짜냈다.


가족이라는 말이 내 안 깊숙이 새겨지던 날이었다.

이 장면 역시 죽기 직전,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






결혼 11년 차.
수많은 다툼과 감정의 굴곡을 지나
가끔 떠오르는 웃긴 기억 하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여행 삼아 싱가포르로 출국하던 날,
여섯 살 많은 남편이 말했다.

“나, 와이프 잘 만나서 해외여행 자주 간다!”

출국장에서 '하하하' 소리 내 웃던 순수했던 그 웃음이

다시 되돌아봐도 유난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그 미소도
죽기 전 마지막 필름 어딘가에 조용히 등장할 것 같다.






이 글에 모든 순간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결혼, 출산처럼 거대한 이벤트보다

작은 웃음 하나, 조용한 일상이

더 선명한 걸 보면 기억이란 참 묘하다.



아마 앞으로도
내 마지막 필름 속에 들어갈 장면들은

하나둘 더 쌓이겠지.
또, 잊고 있던 기억들이 불현듯 스쳐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하나만큼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며 나이가 들다 보니

내 엄마에 대한 기억과 모습은 점점 흐릿해졌지만,

선명히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일이다.
그땐 우리 가족 모두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걸 몰랐다.

'병원을 다니고 약도 타다 먹으니 낫겠지' 하며

단순한 근육통으로만 알았던 그 시절,
엄마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앓고 계셨다.



그때 내 나이 철없던 20대 초반

연락 없이 외박을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
거실 바닥에 요를 깔고
불편한 자세로 새우잠을 자고 계시던 엄마를 보았다.



연락도 안 되는 나를 기다리다
그 차가운 바닥에서 잠이 드신 엄마.
그 장면은 지금도 기억 속에서 가장 선명하다.

엄마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저 딸이 걱정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지막 필름.
눈을 감기 직전 가장 마지막으로
조용히 재생될 장면은 바로 그때일 것이다.



사과를 할 틈도 치료할 시간도 없이

금세 돌아가신 엄마,

나는 오랜 인생의 끝에서 엄마를 다시 만나

오랜 시간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려 한다.



“미안해, 엄마. 정말 보고 싶었어.

많이 사랑해.”



그 말을 전할 수 있고 엄마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랑하는 내 가족과의 이별도

조금은 덜 아프게 느껴질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내 인생은 꽤 따뜻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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